구영배 큐텐(Qoo10) 대표가 계열회사인 티몬과 위메프의 지급 불능 사태(티메프 사태)와 관련해 그룹에서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800억원이나 이를 즉각적으로 미지급금 정산에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자신이 가진 큐텐 지분 전부를 사태 해결을 위해 동원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티메프 사태로 인한 소비자·판매자·금융기관의 피해 추정액이 약 1조원인 데다, 큐텐이 금융감독원과 맺은 경영개선 업무협약 역시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않아 사태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현장에서 구 대표를 ‘양치기 소년’에 빗대며 검찰 수사에서 진상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구 대표는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티메프 지급 불능 사태 후 22일 만에 직접 입장을 밝혔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구 대표,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뉴스1

◇ 구영배 “큐텐 시재 800억원·지분도 다 내놓겠다”

30일 구영배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메프 사태 해결을 위해 큐텐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800억원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러 가지 규제 사항으로 인해 해당 자금을 판매 대금 정산 등에 당장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구 대표는 전날(29일) 자신의 재산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사태 수습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제가 가진 큐텐 지분은 38% 정도”라면서 “제가 가진 100% 모든 것을 동원하겠다”고도 말했다.

구 대표는 이날 큐텐의 기업 가치에 대해 “이전에 5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고 했다. 큐텐의 기업가치가 그대로 유지됐다는 것을 가정하면, 구 대표의 지분의 가치는 1900억원가량이다. 큐텐그룹의 시재(時在) 800억원과 더하면 약 2700억원을 사태 해결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구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모든 비판과 책임, 추궁, 처벌도 당연히 받겠다”면서 “회의장에 계신 분들을 비롯해 국민의 단 한 분도 믿지 않으실 수 있지만, 저는 티몬과 위메프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도 했다.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보인 자료 화면. 큐텐의 계열회사 인터파크쇼핑에서 이날 오전 결제가 이뤄진 모습. /유튜브 캡처

◇ 피해 보상 위한 판매 대금 쟁점… ‘1兆 어딨나’

구 대표의 의지 표명에도 질의에 참여한 의원들과 티메프 사태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에서는 구 대표에 대한 큰 불신을 표했다. 그러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상품 판매 대금의 행방과 큐텐그룹의 재무구조 등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큐텐이 ‘양치기 소년’과 같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티몬과 위메프는 정산 지연 사태의 일차적 책임자인데, 미정산금을 지급할 재원이 없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사재를 털어 변제를 하겠다고 했는데 불과 8시간 뒤에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구 대표는 자금 경색으로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란걸 알고 있었음에도 입점 업체와 계약을 하고 물품 거래를 했다”면서 “의도된 사기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체 피해 금액이 1조원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티몬과 위메프는 물론 큐텐의 계열 회사인 위시플러스와 AK몰도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전 각 판매 채널에서 실제로 물건을 구매한 뒤 이를 토대로 “큐텐은 지금도 돈을 벌고 있다”며 “이 대금들은 지금 어디에 있냐”고 했다.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는 프로모션을 하고 수수료만 받는다. 판매대금은 판매자가 받는다”면서 “현재 현금은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판매자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는데 그 자금은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았겠냐”고 재차 물었지만, 구 대표는 “그 부분은 손실이다. 프로모션 비용”이라고 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은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된다. 그것은 어디에 있냐”면서 “회사에 자본이 없다면 큐텐이 위시를 인수하고 큐익스프레스를 키우기 위해 회사 자금을 유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냐”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 자금과 물품 정산 대금을 혼재해 관리하고, 고객에게는 카드사를 통해 2~3일 안에 결제를 받고 정산 주기는 40~80일로 늦추면서 그 공백 기간 동안 자금을 유용한 게 아니냐”라며 “그 돈을 썼기 때문에 정산을 못 해준 게 아니냐”라고 했다.

구 대표는 “정확한 것은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면서도 “티몬·위메프를 인수할 때부터 구조적으로 (적자가) 누적돼 온 게 있다”고 했다. 구 대표는 위시 인수에 판매 대금이 일부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위시 인수와 이번 사태는 관련이 없다. 차입 이후 한 달 내에 상환했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 이복현, 구 대표에 “불법 행위·양치기 소년 같아”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감독기관의 해태에 대한 지적도 이뤄졌다. 김 의원은 “티몬과 위메프는 몇 년 전부터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면서 “금감원은 회사와 경영개선 양해각서를 체결해 관리를 해왔는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냐”고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미상환금이나 미정산금을 별도로 관리해달라 요청했고 추가적인 유입자금을 관리해달란 요청을 했지만, 건건이 하겠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이행이 안 됐다”고 했다. 김 의원은 “조금 더 적극적인 감독을 했어야 했다”면서 “자율규제라는 규제 사각지대를 방치해왔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자산 건전성이나 이런 것도 전혀 규율하지 않은 정부 실패”라고 했다.

이 원장은 구 대표가 ‘양치기 소년’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금융감독기관이 사태 해결을 위해 자금을 추적해 피해 해결을 위한 출연이 이뤄지도록 해달라’는 윤한홍 위원장의 말에 “회사로도 개인으로도 자금 조달 계획이나 담보 제공 여부를 여러 차례 구했으나 양치기 소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도 했다.

이 원장은 “큐텐 측의 말을 신뢰하지 못해 지난주부터 자금 추적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금 추적 과정에서 강력한 불법 행적을 발견했다”며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를 말하긴 어렵지만,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해놓은 상태다. 주요 인물에 대해 출국금지 등을 요청했다”고 했다.

큐텐은 재무 구조 역시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큐텐은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한 이후 재무·개발 등의 기능을 계열회사인 큐텐테크놀로지로 옮겼는데, 구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나온 재무상황 관련 질의에 ‘재무 본부장이 총괄하고 있어서 모른다’는 취지로만 답했다.

구 대표는 이날 정무위 회의가 정회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큐텐그룹 투자 유치 가능성에 대해 “상황이 유동적이지만 지금 제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무너지고 있음에도 저는 기회가 있다고 본다”며 “내 말이 헛소리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셀러(판매자) 등을 100% 구제하겠다는 게 실현 가능하겠냐고 질의하자, 구 대표는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당장 현실로만 보면 근거 없는 비즈니스 플랜이자 전략인 것 같지만, 인터넷 사업이 가진 특성을 잘 살리면 기회가 열릴 거라고 확신한다”면서도 “책임 추궁부터 다양한 형태의 형사적 처벌도 당연히 받겠다”고 했다.

구 대표는 셀러의 미정산금 지급 시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정산금 지급을 빨리해야 하지만, 지금은 불가피하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죄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