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기반 전자 상거래 플랫폼 큐텐(Qoo10) 그룹이 국내 1세대 전자 상거래 플랫폼 티몬을 인수하기 직전 누적 손실액이 4억1800만싱가포르달러(약 4313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티몬은 완전 자본 잠식 상태였다. 큐텐은 2022년 티몬 인수 후 경영실적을 공시하지 않았다. 미국 나스닥 상장에 매몰된 큐텐이 본사 경영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자 기업 티몬을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손민균

29일 싱가포르 기업청(ACRA)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큐텐의 2021년도 누적 손실액은 4억1800만싱가포르달러(4313억600만원)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누적 손실액 규모는 커졌다. 2019년과 2020년 큐텐의 누적 손실액은 각각 1억1050만싱가포르달러(1140억원), 2억1360만싱가포르달러(2205억원)였다.

티몬을 인수하기로 2022년 직전 해인 2021년도 큐텐의 현금 유동성은 바닥 상태였다. 2021년도 싱가포르 기업청 경영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 활동에서의 현금 유동성(Net cashflow from operating activities)은 -8400만싱가포르달러(-865억원)였다. 투자 활동에서의 현금 유동성(Net cashflow from investing activities)도 -1억400만싱가포르달러(-1071억원)였다.

2021년도 큐텐의 현금 유동성 비율(Current ratio)은 0.28이었다. 2019년 0.82에 머물렀던 현금 유동성 비율은 2020년 0.54로 떨어졌다. 현금 유동성 비율은 회사가 단기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1 이상일수록 부채 상환 능력이 좋다는 의미다. 티몬을 인수하기 직전 큐텐은 유동 자산이 유동 부채의 30%도 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는 파산 직전의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큐텐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함구한 채 티몬 인수 작업에 착수했다. 다만 큐텐은 현금 유동성이 떨어지는 만큼 현금 지급을 하지 않는 지분 교환 방식으로 티몬을 인수했다.

문제는 당시 티몬도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였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티몬의 2022년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본 총계는 -6386억원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같은 기간 티몬의 유동 부채는 7193억원, 유동 자산은 1309억원이었다. 유동 부채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고, 유동 자산은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다. 유동 부채가 유동 자산보다 크다는 건 당장 유동 자산을 현금화해도 빚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로 소비자들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티몬은 올해 4월이 기한인 2023년도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는 것은 재무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티몬은 해당 보고서에서 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받기도 했다.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한 큐텐은 본격적으로 국내 1세대 이커머스 인수전(戰)에 돌입했다. 2023년 3월에 인터파크쇼핑을 인수하고, 같은 해 4월 위메프도 인수했다. 올해에도 2월엔 북미·유럽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플랫폼 위시플러스(Wish+)를 인수했고, 올 3월엔 인터파크쇼핑을 통해 AK몰도 인수했다.

티몬 인수 후 큐텐은 싱가포르 기업청에 경영실적 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았다. 그간 누적 손실액이 증가하더라도 2019년도 감사보고서에 이어 근 3년간 경영실적 보고서를 공시한 것과는 다른 행보다. 이에 업계에서는 티몬 인수합병 후 연달아 추진한 이커머스 인수에 경제적 차질이 생길까 봐 일부러 공시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싱가포르 법인인 큐텐은 사모 회사에 해당해 경영 실적 보고서 공시 의무가 없다. 싱가포르 회계법상 사모 회사는 공기업·상장 회사와 달리 내부 주식 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만큼 경영 운영이나 재무 정보 등을 대중에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업계 관계자는 “앞서 큐텐은 올해 10월 반드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겠다고 했다. 큐텐이 이번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보상안에도 언급할 정도로 상장 의지가 컸다”며 “인수 후 경영난이 더욱 심각해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영배 큐텐 대표의 ‘지마켓 성공 신화’라는 후광효과를 무조건 믿은 게 불황기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했다.

한편 티몬과 위메프는 이날 오후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을 신청했다. 티몬·위메프 사태는 지난 8일 위메프가 셀러(판매자)에게 판매 대금 정산을 지연하면서 불거졌다. 정부는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규모를 약 21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