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본사가 있는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플랫폼 큐텐(Qoo10) 그룹의 계열사 위시플러스(Wish+)와 위메프에서 발생한 셀러(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가 또 다른 계열사인 티몬으로 번지면서 큐텐그룹이 생존 기로에 놓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한 대표 여행사와 유통업계 등 대형급 셀러들은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일부 셀러들은 큐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 보관 중이던 상품 회수에 나섰다. 셀러 이탈 소식에 신용카드 결제를 대행하는 PG사(결제대행업체)들까지 발을 빼면서 티몬·위메프의 현금 흐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소비자들은 신규 결제도, 환불도 제때 받지 못하게 됐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제2의 머지 포인트 사태’ 재현을 우려하고 있다.

24일 서울 강남구 티몬 실무진이 있는 건물에 불이 모두 꺼져 있다. 티몬 정문(오른쪽) 안쪽에는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쳐진 채 굳게 닫혀 있다. /민영빈 기자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큐텐그룹 산하 계열사인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확산되자, 일부 입점 셀러들 사이에서 경기 김포·이천·인천 영종도 등에 위치한 큐익스프레스 물류 창고에 보관 중인 상품 회수 신청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한 국내 셀러 A씨는 “판매 중단까지 한 마당에 굳이 물류 창고에 상품을 보관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창고 이용료라도 안 내야 덜 억울할 것 같다”고 했다.

현재 티몬·위메프는 신용카드 거래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들 플랫폼의 결제 승인·취소를 대행하는 PG사는 전날부터 기존 결제 건에 대한 취소, 신규 결제를 모두 막았다. 여기에 티몬 캐시의 페이코 포인트 전환과 해피머니와의 거래, 포인트 전환도 전날부터 중단된 상태다.

특히 티몬·위메프 입점·제휴 셀러들이 대규모로 이탈하면서 해당 셀러의 가맹점 ID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소비자가 결제를 시도해도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올라·페이코 등 핀테크 서비스 거래도 중단되면서 현재 결제를 하면 ‘가맹점 ID가 유효하지 않다’는 알림이 떴다.

24일 티몬 캐시 포인트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알림창이 떠 있다(왼쪽). 티몬 주문 결제에서 카드 등 일부 결제 방식이 막힌 상태다. /독자 제공 및 커뮤니티 갈무리

티몬·위메프와 제휴한 여행사를 포함해 백화점, 홈쇼핑 등 유통업계도 모두 판매 중단에 들어간 상태다.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GS리테일 등은 상품 판매를 철수했다. 현대홈쇼핑·신세계라이브홈쇼핑·공영홈쇼핑·GS홈쇼핑 등이 모여 있는 홈쇼핑 관에는 판매 게시물이 전부 내려갔다.

모두투어·하나투어·노랑풍선 등 국내 여행사의 상품은 이미 지난 22일부터 판매가 중단됐다. 이들은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티몬의 정산 지연 사태로 인해 부득이하게 해당 상품 판매를 철회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여행업계는 오는 25일까지 티몬·위메프의 정산 기한을 통보하고 기한 내 정산금을 받지 못하면 내용 증명·계약 해지를 조치할 방침이다.

소비자 B씨는 “위메프에서 800만원까지 유럽 여행패키지 상품을 큰 마음 먹고 샀는데, 어제(23일) 여행상품 취소 문자가 왔다”며 “가족 여행을 위한 것인데 환불도 불확실해졌다”고 말했다.

티몬·위메프 셀러들의 미정산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요 은행도 선정산대출 실행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은 전날부터 티몬·위메프에 대한 선정산대출 실행을 멈췄다. 선정산대출은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셀러가 은행에서 판매 대금을 먼저 지급받은 뒤 정산일에 이커머스가 정산금을 은행에 상환하는 것을 말한다.

티몬·위메프는 셀러의 대규모 이탈을 막고 미정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날 이들은 공지를 통해 제3의 금융기관에 셀러 정산금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이번과 같은 정산 지연 사태의 반복을 막겠다고 했다. 기존의 결제 대금을 큐텐그룹 자체 보관이 아니라 제3의 금융기관을 통해 정산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티몬 관계자는 “현재 정산 사태부터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내부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큐텐그룹 산하 또 다른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AK몰 등은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불똥이 튈까봐 선을 긋고 있다. 이들은 전날 공지를 통해 “당사의 정산 시스템은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큐텐그룹 관계자는 “미지급된 정산금 규모나 피해 규모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면서도 “정산과 환불 절차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큐텐그룹이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보다 더 최악의 상황을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플랫폼 중 알리·테무 등 중국발(發) 이커머스를 제외하면 티몬과 위메프는 각각 국내 이커머스 이용자 순위 4·5위에 위치하고 있다. 와이즈랩 리테일 굿즈에 따르면 티몬·위메프의 하루 평균 결제액은 각각 210억원, 93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1개월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결제 추정액은 각각 8398억원, 3082억원이다.

특히 티몬·위메프 최근 선불충전금(티몬 캐시)과 상품권 할인 공세·선주문(선결제 후 한 달 뒤에 상품권 발송) 형태로 판매해왔다. 최대 10%까지 할인·적립금 형식의 캐시 충전도 이어졌다. 이른바 ‘머지포인트 사태’를 연상케 하는 판매 방식인 것이다.

지난 2021년 8월 불거진 머지포인트 사태는 머지플러스가 금융위원회에 등록하지 않고, 판매대행사를 통해 온라인 판매 채널에서 모바일 상품권인 ‘머지 포인트 상품권’을 발행가액 대비 20%가량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하다 돌연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축소하면서 ‘환불 대란’이 발생했다. 피해액만 10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티몬과 위메프의 상반기 거래액 규모로 살펴보면, 미정산된 지급금만 해도 조 이상은 될 것”이라며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충당해야 하는데, 셀러 대규모 이탈 등으로 현금 유동성이 경색된 만큼 이조차도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큐텐그룹의 규모로 보면 머지 사태 그 이상의 후폭풍이 예상된다”며 “오는 10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해 몸집 불리기에만 초점을 맞췄던 행보가 탈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