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팝·드라마 등의 인기로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지만, 국내 면세점 실적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주 고객인 유커(중국 단체관광객)나 다이궁(보따리상)의 유입이 적어진 탓이다. 이에 따라 중소면세점부터 대기업 면세점까지 시내 면세점 몸집 줄이기에 한창이다.

그래픽=손민균

10일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340만3000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 3월 국내 면세점을 방문한 외국인 수도 74만 명으로 전년 동기(31만 명) 대비 약 2.4배 늘었다. 하지만 매출액은 9326억원으로 9%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유커나 다이궁 등 단체 관광객보다 개별 관광객이 더 많아졌다”며 “과거 같은 소비 효과는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중소·중견면세점들은 시내면세점을 끝까지 운영할지를 고민 중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시내면세점을 운영하는 중소·중견면세점은 8곳이었지만 현재 중소·중견면세점은 ▲동화면세점(서울) ▲그랜드면세점(대구) ▲부산면세점(부산) ▲진산면세점(울산) 등 4곳만 남았다. 경기 유일의 시내면세점이었던 앙코르면세점(수원)은 현재 휴업 중이다.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은 토지와 건물 매각으로 시내면세점 규모를 줄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화면세점은 방문객 감소로 인한 영업실적 악화로 지난 2019년부터 5년째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은 90억원이었지만 결손금은 1100억원을 웃돌았다. 자산총액을 초과한 부채총액도 870억원에 달한다. 매출도 전년 대비 약 60% 감소했다.

동화면세점은 지난해 383억원가량의 토지 자산과 79억원 규모의 건물 자산을 정리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 위치한 동화면세점 점포의 지하 1층(연면적 2646.93㎡)은 오라이언자산운용에 매각했다. 해당 자리엔 연내로 건강검진센터 KMI한국의학연구소가 들어올 예정이다. 한때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모두 시내면세점으로 운영했던 동화면세점은 현재 지상 2~4층만 이용하고 있다. 하나투어 자회사인 에스엠면세점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시내면세점을 영업 종료했다. 경복궁면세점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점을 철수하고 현재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입점한 상태다.

대기업 면세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팬데믹 직전 연도인 2019년 25조원에 육박했던 매출이 지난해 13조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국내 1위 롯데면세점은 올 1분기 실적에서 2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다. 특히 유커와 다이궁의 감소로 영업 상황이 어려운 부산·제주 등 시내면세점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일부는 시내면세점 공간을 탈바꿈하고 있다. 2021년 7월 시내면세점 영업을 종료한 신세계백화점은 해당 공간(강남점)에 ‘하우스 오브 신세계’라는 이름의 미식 공간을 열었다. 이 장소는 한때 유커와 다이궁 등 단체관광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 면세 물품을 휩쓸어갈 정도로 잘 됐던 곳이었다. 한화그룹도 지난 2019년 9월 마지막 영업을 끝으로 문을 닫은 갤러리아면세점 자리인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 미술관 퐁피두센터를 열기로 했다. 한화그룹 측은 “퐁피두센터 오픈은 내년 말 정도로 예정돼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유커·다이궁에만 의존했던 시내면세점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팬데믹 후 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즐기는 방식이 변했다. 가성비 쇼핑 중심이 아니라 체험하고 힐링하는 관광을 추구한다”며 “면세점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체험·힐링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니즈(수요)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며 “동남아나 남미 등 새로운 지역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는 전략도 고려해 봄 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