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도 장인(匠人)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게 없었어요. 장인이 그릇에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는데, 전율이 일더군요.”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야외 잔디광장에 세워진 박스형 전시장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날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 팝업 전시회에 입장하기 위한 인파였다. 관람을 마친 강혜원(59)씨는 “에르메스라고 하면 ‘명품 끝판왕’이라고 하지 않나. 괜히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강씨의 남편 박강수(60)씨는 “아내가 같이 가자고 할 때 요즘 유행하는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에서 가방 하나 사달라는 말인가 해서 겁나기도 했다”며 “그런데 장인들의 작업을 직접 보면서 매료됐고, 비싼 가격대도 이해가 됐다”고 했다.
팝업 전시는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 특정 전시를 일정 기간만 진행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그간 에르메스는 미술관 등을 대관해 주로 VIP를 위한 행사와 패션쇼 등을 선보여 왔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도 여럿 진행해 왔으나, 이번처럼 한국에서 선보인 팝업 전시는 덴마크, 미국, 멕시코, 일본, 태국 등에 이은 10번째다.
입장 예약은 전 시간대가 매진된 상태였다. 이날 총 11회(1회당 최대 130명 동시 입장 가능) 입장이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최대 1400여 명이 전시회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 예약도 가능했지만, 기존 사전 예약에서 취소 표가 있어야만 할 수 있었다.
오후 4시 입장 예약 시간에 맞춰 전시회에 들어갔다. 내부에는 장인 11명이 각자 부스에서 작업하면서 관람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프랑스·스위스 현지에서 온 장인 옆에서 통역사들이 관람객들의 질문과 장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40대 여성 황모씨가 “정교한 작업이 인상 깊다”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스카프에 그림을 넣는 작업을 하던 장인은 미소로 화답했다.
장인들의 작업은 다채로웠다. 가죽 재단부터 시계·보석 세공,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염색, 말 안장·장갑 제작, 포슬린(도자기) 페인팅, 수선 작업까지 각자의 전문 분야를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했다.
특히 켈리백·버킨백 등 시그니처 명품 가방이 유명한 만큼, 관람객들은 가방에 쓸 가죽을 재단하는 부스 앞을 가득 채웠다. 장인은 재단한 가죽에 뾰족한 못을 박고 이 못을 둥글게 다듬는 기술을 선보였다.
확대경을 낀 다이아몬드 세공 장인은 특정 작업을 할 때 어떤 도구를 쓰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도자기 그릇에 그려진 표범 모양을 페인팅하는 장인은 얇은 붓으로 무늬를 하나씩 찍어나갔다.
에르메스코리아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장인을 양성하기 위해 매년 공방을 하나씩 더 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60여 개의 공방과 작업장, 교육시설을 운영 중이다. 에르메스 소속 장인은 7300명이다. 에르메스 가방은 100% 프랑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이는 기욤 드 센느 에르메스그룹 부회장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 센느 부회장은 에르메스 생산·투자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이날 전시회에 앞서 사전 초청 대담회를 진행했던 드 센느 부회장은 “장인 정신에 깃든 까다로움과 엄격함이 187년 간 에르메스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인기다. 에르메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 7972억원, 영업이익 235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2.6%, 12% 증가한 규모다. 2019년 매출액이 3618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드 센느 부회장은 이날 대담에서 한국을 ‘정말 중요한 시장’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 곳곳에는 관람객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가죽 냄새를 맡거나 촉감을 느껴볼 수 있도록 A4용지 크기로 자른 가죽들을 설치대에 걸어두거나 가죽에 바느질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스카프나 옷감에 색을 입히는 실크 스크린 작업을 할 수도 있었다. 박현민(35)씨는 “보기만 하는 것보다 장인들의 작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지영(24)씨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꿈을 갖고 있다”며 “장인들의 작업을 보며 공부가 많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