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시몬스 부사장.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초록색 투명 아크릴 가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침대 회사 시몬스가 꾸린 전시장이다.

침대 없는 광고를 만들고, 청담동 주택을 개조해 그로서리 스토어(식료품점)를 여는 등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를 줄 세운 시몬스는 이번 페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다소 진지한 주제를 들고나왔다.

부스에 설치된 32대의 스크린에서는 22명의 ESG 전문가가 생각하는 인터뷰가 반복해서 상영됐고, 한쪽에는 시몬스의 ESG 침대를 체험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행사가 열린 5일간 4만 명의 방문객이 부스를 찾았고, 5억5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김성준 시몬스 부사장은 “엔데믹(감염병의 일상화) 이후 리빙 시장이 침체했고, 당분간 이런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미래 세대를 위해 앞으로 리빙 브랜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업(業)의 진정성’이라는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 볼 것을 제안했다”라고 설명했다.

◇'침대 없는 광고’로 MZ 사로잡은 시몬스... ESG를 말하다

시몬스는 ‘건강한 삶의 에너지’를 목표로 다양한 ESG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 이천에 복합문화공간 시몬스 테라스와 생산시설 시몬스 팩토리움을 세워 지역 사회를 위한 사회 공헌을 진행하는가 하면, ESG 침대 ‘1925′를 출시해 매출의 5%를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출시한 ‘1925′는 작년 말까지 2000개 이상 판매되며 누적 기부금 4억원을 달성했다.

2024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시몬스 부스 전경.

김 부사장은 “원래 침대를 직접 기부하려고 했지만, 병원과 의논해 해보니 환우들에게 침대는 ‘지옥’과도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펀딩 방식의 기부를 택했다”면서 “회사 차원에서 매년 3억원을 기부하고, 추가로 판매 금액의 일부를 적립해 기부하고 있다”라고 했다.

국내 업계 최초로 비건 인증을 받은 비건 매트리스 ‘N32′도 내놨다. 원단과 패딩에 생분해가 가능한 아이슬란드 씨셀과 리넨을 적용한 제품이다. 아이슬란드 씨셀은 생분해돼 자연으로 환원되는 소재로, 아이슬란드 청정지역의 유기농 해조류와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를 함유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시몬스는 지난해 조선비즈와 에프앤가이드가 주최하는 ‘2023 THE ESG’ 시상식에서 사회 부문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올해 1월에는 난연 매트리스 제조공법 관련 특허를 공개했다. 시몬스는 2018년부터 국내 최초·유일하게 가정용 매트리스 전 제품을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 매트리스로 생산하며, 2020년 난연 매트리스 제조공법 특허를 취득한 바 있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는 “겨울철 잇따른 화재로 인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결과 난연 매트리스 제조공법 특허 공개를 결심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 설립... ESG 브랜딩 선도

지난해 12월 안 대표는 사재를 출연해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ESG 브랜딩 컴퍼니를 세웠다. 기존에 공간팀, 아트팀, 브랜딩팀이 주축된 디자인 스튜디오를 법인화 했다.

회사 대표를 맡은 김 부사장은 “침대를 팔면서 생긴 마케팅 재주로 세상을 이롭게 하면서 이윤도 창출하자는 게 설립 취지”라며 “신규 법인을 통해 다양한 브랜딩 사업과 교육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몬스의 ESG 침대 ‘1925’와 비건 매트리스 'N32'를 체험하는 관람객들.

보통 신사업 하면 기존 사업과 유사한 상품군으로 확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시몬스는 침대를 팔면서 생긴 주특기를 살려 ‘ESG 브랜딩’을 주제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광고를 외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제작하는데, 개성있는 광고로 주목받다 보니 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외부 요청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부사장은 “단순히 광고 회사를 만드는 건 우리의 방향성과 거리가 멀다”며 “이로운 일을 멋지게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시몬스답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 세대인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에 출생한 Z세대와 2010년 이후 출생한 알파(α)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는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했다”면서 “이들이 우리 제품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동안 시몬스가 다양한 브랜드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 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처음 그로서리 스토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침대 회사가 왜 쓸데없는 일을 하냐’며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그로서리 스토어를 운영하는 동안 시몬스의 매출은 20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로 올라섰다.

◇ “ESG 브랜딩도 힙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지속가능성은 민감한 주제로, 소비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가치다. 파타고니아, 프라이탁, 러쉬 등 친환경 지향 브랜드들이 꾸준한 사랑 받고 성장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말 이천 시몬스 테라스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은 사람들. /조선DB

그러나 ESG는 어렵다.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모호할 수 있다. 김 부사장은 “기존에 기업들이 선보인 ESG 활동은 딱딱하고 고객에게 와닿지 않는 면이 있었다”면서 “우리는 ‘마케팅 잘하는 회사’라는 우리의 장기를 살려 보다 힙하고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ESG를 즐기게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는 앞으로 ESG 브랜딩 사업과 기업대기업(B2B) 교육 사업 등을 펼칠 방침이다. 2025년 완공 예정인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센터의 공간 컨설팅도 준비 중이다. 아픈 사람만 가는 병원이 아닌 일상의 공간으로, 지역민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선보인다는 게 회사의 구상이다. 더불어 ‘이천시 공공디자인 진흥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의 도시 디자인을 향상하는 데도 이바지할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친환경 침대를 만들고, 시몬스 테라스와 하드웨어 스토어, 그로서리 스토어 등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하면서 ‘ESG는 진화하는 것’이란 걸 깨우쳤다”면서 “많은 회사가 이윤 추구를 위해 애쓰지만, 돈을 벌기 위해선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 시몬스 디자인 스튜디오를 통해 ESG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선순환 모델을 선보이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