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이 지속하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유통업체들이 올해 이사진 연봉 총액 감축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당장의 실적도 문제지만, 여러 악조건 속에서 경영 효율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했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생활건강(051900)은 오는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줄어든 이사의 보수 최고한도액을 의결한다. 지난해 보수 한도 80억원을 60억원으로 줄이는 내용이다. 해당 안건이 의결되면 LG생건은 법인 분할 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이사 보수 한도가 줄게 된다.
LG생건의 이사 보수 한도는 LG의 생활용품 및 화장품 사업부문이 분할돼 법인을 설립한 첫 해인 2001년 15억원이었다. 이후 점차 늘어 2019년부터 80억원을 지켜왔다.
LG생건이 이사 보수 지급 총액을 줄이는 것은 부진한 실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LG생건은 지난해 매출 6조8048억원과 영업이익 487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5.3%, 31.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LG생건이 이사진에게 지급한 보수 총액은 2022년 53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엔 29억원으로 줄었다.
11번가의 최대주주(지분율 80.3%)인 SK스퀘어(402340)도 오는 28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한도액 감소안을 의결한다. SK스퀘어는 2021년 11월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 설립한 이후 이사 보수한도액을 120억원으로 유지해왔으나, 지난해 적자전환하면서 3년 만에 이사 보수를 줄이는 것이다.
SK스퀘어는 지난해 2조2765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전년 대비 4% 줄어들었고, 영업손실 2조3397억원을 기록해 적자전환했다. SK하이닉스 등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의 실적이 좋지 않아 2조526억원의 지분법손실이 영업손실에 반영됐다.
신세계푸드(031440)도 오는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전년 대비 줄어든 이사의 보수 지급 한도액안을 의결한다. 올해 보수 한도액은 지난해 39억원에서 약 5.1% 감소한 37억원으로, 신세계푸드가 이사진 연봉 한도를 줄였던 2022년 이후 또 한 차례 연봉 한도 축소에 나서는 것이다.
신세계푸드는 앞선 두 회사보다 실적이 양호한 편이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1조4889억원의 매출액과 26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업계는 이러한 현상이 실적 악화에 따른 것도 있지만, 경영 효율화에 대한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사의 연봉 한도가 줄더라도 실제 연봉은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경영 상황이 불확실한 만큼 이사진도 불황에 대비한 경영 효율화에 일조하겠다는 의지적인 표현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