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시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선불충전금 규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10만원으로 고정된 쿠팡의 선불충전금액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쿠팡은 약 1100억원의 선불충전금을 은행에 신탁하거나 예금으로 예치해 뒀다.

선불충전금은 소비자가 해당 플랫폼에서 쓸 금액을 미리 충전해 두고 현금처럼 쓰는 것으로 충성고객 지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카페, 배달, 쇼핑 플랫폼 등은 선불충전금 이용 시 결제금액의 1~3%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적립해 주면서 고객들을 유인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13일 각 사의 선불충전금 운영 현황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선불충전금 잔액 규모는 카카오페이 5217억원, 네이버페이 1160억원, 쿠팡 1098억원, 토스 1070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쿠팡은 지난해 상반기 처음 선불충전금이 1000억원을 넘었다. 연말까지 덩치를 더 키워 4분기엔 3분기 대비 선불충전금 규모가 9.3% 증가해 토스를 제쳤다. 쿠팡은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을 1000만 명 이상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가 편의점, 온라인몰 등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용페이’인 반면 쿠팡페이는 자체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자체페이’인 점을 고려할 때 쿠팡의 선불충전금 잔액은 상대적으로 큰 규모다.

◇1000원 부족해도 10만원 충전… 고객 묶어두는 ‘락인효과’

쿠팡의 선불충전금 ‘쿠페이 머니’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충전금액 단위가 10만원으로 고정된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쿠페이 머니를 이용하기 위해선 5000원을 결제하더라도 10만원을 충전해야 사용할 수 있다.

네이버, G마켓 등 타 플랫폼에선 충전 단위를 1만원으로 둔다. 예를 들어 5000원을 결제하고자 하면 1만원, 1만1000원을 결제하고자 하면 2만원을 충전해 사용하는 식이다.

쿠팡의 충전 금액 단위가 높은 이유는 ‘락인효과(Lock-in effect)’를 내기 위해서로 추정된다. 락인효과란 소비자가 어떤 제품·서비스를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제품·서비스로 전환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뜻한다.

충전해 둔 돈의 환불을 원할 때 환불이 가능한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선불충전금을 이용한 간편결제 서비스로 고객을 묶어두는 효과를 낸다.

쿠팡은 유료 멤버십 와우 회원은 쿠팡을 자주 이용하는 충성 고객이기 때문에 결제하고 남은 금액을 다음에 사용할 생각으로 남겨두는 편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선불충전금은 환불이 가능한 시스템이지만 ‘돈이 들어있으니 이왕이면 저기서 사지’라는 생각을 하는 고객들을 묶어두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선불충전금을 이용하는 업계에서 10만원 고정 충전금액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간편결제는 소비자들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1000원이 부족하더라도 10만원을 충전해야 하는 시스템은 소비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100억 중 88% 신탁, 12% 예금… 신탁 이자 3.5%대

금융감독원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은 선불충전금 100%를 은행에 신탁해야 한다. 다만, 불가피한 사유로 선불충전금 중 일부를 신탁하지 않고 직접 운용할 경우 운용 대상 금액에 대해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쿠팡은 1098억원 중 965억원(88%)을 우리은행에 신탁하고, 나머지 133억원(12%)은 예금으로 예치해 뒀다. 이에 따라 쿠팡이 선불충전금을 은행 예금에 넣으면서 발생하는 이자수익도 막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은행의 특정금전신탁(MMT) 이자율은 약 3.5%대로 알려져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2개월 예금 금리는 3.55~3.9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고객 중엔 넣어뒀던 선불충전금을 까먹고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잠자고 있는 금액도 그만큼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연히 1회 충전 금액이 클수록 그 머물러 있는 금액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쿠팡 측은 선불충전금 중 133억원을 예금한 것에 대해 회사 자체 운용 목적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쿠팡 관계자는 “예금 예치 이자수익은 일반 예금상품 수준이나 예금 전액에 대해 쿠팡페이가 지급보증보험료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신탁 수익에 비해 오히려 수익률이 낮다는 점에서 운용 목적으로 예치한 것이 아니다”라며 “쿠팡페이는 고객 경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최소 충전 금액을 설정해 운영 중이며, 고객들은 선불충전금 사용 시 1% 포인트 적립 혜택을 누리고 언제라도 충전금 잔액을 즉시 환급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선불충전금이 많이 이용되면 카드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미래의 매출을 미리 현금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다만 선불충전금이 규제 대상이 돼야 할지, 자유롭게 시장에 맡겨야 할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며 “기업들의 선불충전금이 수천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사실 소비자도 포인트 지급 등 원하는 혜택을 보고 자발적으로 선불충전금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