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곰 캐릭터인 벨리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 수가 160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다.

2018년 롯데홈쇼핑의 사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벨리곰은 출시 이후 3년간 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21년 대형 벨리곰 조형물 전시 때는 35만 명을 롯데월드타워로 불러들였다. 올해엔 국내 인기를 발판 삼아 일본, 태국, 베트남 등 해외에 본격 진출할 예정이다. 벨리곰은 롯데그룹의 최대 효자 중 하나로 꼽힌다.

편의점 GS25는 올해 신년 첫 사업으로 자사가 개발한 티베트 여우 캐릭터인 ‘무무씨’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를 서울 성수동에 열었다.

GS리테일(007070) 측은 “유통업계 캐릭터 IP(지식재산권) 전쟁에 출사표를 던졌다”라며 “앞으로 무무씨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고, 외부 제휴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롯데홈쇼핑이 미국 뉴욕 맨해튼 '피어17' 야외 광장에 15미터 높이의 초대형 벨리곰 조형물을 내세운 '어메이징 벨리곰' 공공 전시를 진행했다./뉴스1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IP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홈쇼핑, 편의점, 백화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자체 캐릭터 개발에 나섰다.

포켓몬이나 산리오 등 국외 인기 캐릭터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협업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IP를 소유한 캐릭터를 성공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캐릭터’는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콘텐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포켓몬 빵·진로 두꺼비… “잘 키운 캐릭터가 연예인보다 낫다”

잘 키운 캐릭터 같은 IP 하나가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보다 파급력이 훨씬 더 큰 세상이다. 일례로 한국의 더핑크퐁컴퍼니가 개발한 IP인 ‘핑크퐁 아기상어’는 전 세계 유튜브 최다 조회 영상 1위를 넘었고, 세계 최초로 조회수 100억 뷰를 돌파했다. 핑크퐁을 개발한 더핑크퐁컴퍼니는 상장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2년 전국을 달궜던 포켓몬빵 구매 열풍도 콘텐츠와 캐릭터의 힘을 보여준다. 이후 산리오나 핑크퐁, 티니핑 등 다양한 캐릭터와 협업을 통해 재미를 본 유통업체들은 한 걸음 나아가 자체 IP 개발을 노리고 있다.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자체 상품 판매로 수익까지 거둘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란 판단에서다.

더현대서울에 설치된 15m 대형 '흰디'. /현대백화점 제공

캐릭터가 생기면 제품 홍보 활용뿐만 아니라 세계관 구축 및 스토리텔링 효과까지 가져갈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트진로(000080)의 푸른 두꺼비 캐릭터다. 주류 업계 최초로 IP를 개발해 진로 이미지를 리뉴얼(재단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004170)그룹은 여러 계열사가 자체 캐릭터를 키우며 IP 활용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 캐릭터인 ‘푸빌라’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닮은꼴’로 알려진 신세계푸드(031440)의 ‘제이릴라’, 이마트24의 ‘원둥이’ 등이 고유 IP다.

현대백화점(069960)도 IP 사업팀을 운영하며 지난해 월트디즈니컴퍼니와 ‘디즈니 스토어’의 운영권 협업 계약을 체결, 디즈니 공식 스토어를 판교점 등에 열었다. 2019년 자체 개발한 강아지 캐릭터 ‘흰디’도 팝업스토어 운영 등을 통해 지속해서 알리고 있다.

BGF리테일(282330)은 ‘CU프렌즈’를 개발해 이를 CU의 자체 브랜드(PB) 상품 디자인이나 웹툰 및 이모티콘, 대고객 프로모션, 사회공헌 알리미 등에 활용하고 있다.

단순 캐릭터를 넘어 연예 콘텐츠 IP 확보에 나선 기업도 있다. 의류 회사인 F&F(383220)는 드라마 제작사 빅토리콘텐츠를 인수하고,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 아이돌을 만들었다. 자사 기획사가 만든 아이돌을 플랫폼으로 활용해 자사 의류 제품을 홍보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내수시장 정체에 의류 소비 증가에도 한계가 오자 그룹의 차기 먹거리를 콘텐츠 IP 시장으로 설정한 것이란 평가다.

◇캐릭터는 ‘팬덤 소비’ 이끌어… 브랜드 옹호자 역할까지

유통업계가 자체 캐릭터 등 IP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IP가 가진 구매력에 있다. 같은 상품도 캐릭터가 붙어 있으면 팬덤(fandom) 소비가 일어난다. 캐릭터를 통해 세계관이 확장되면 브랜드에 대한 애착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애정이 소비를 부르고,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낳는 것이다. 팬덤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동을 뜻하는 ‘팬덤 이코노미’다.

그래픽=정서희

자체 캐릭터 개발은 충성도 높은 팬 고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까지 이해하며, 브랜드나 제품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브랜드 옹호자’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콘텐츠 산업백서에 수록된 ‘캐릭터 이용자 실태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인 3500명의 소비자 가운데 64%가량이 “상품 구매 시 캐릭터의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고, 53%는 “캐릭터 상품에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쿠팡 등 이커머스 부상도 영향을 미쳤다. 백화점 등 기존 유통업체들은 이커머스에 대응하기 위해 점차 콘텐츠를 활용한 IP를 개발하고 협업 상품 발매, SNS 이벤트, 팝업 스토어 전개 등 입체적이면서도 소비자 체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자) 소비가 많은 더현대서울의 지난해 팝업스토어 매출 2위는 유튜브 애니메이션 빵빵이 팝업스토어(12억8000만원)였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에 잘 만들어진 B급 유머에 10~20대가 열광했다. 콘텐츠 IP는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한 MZ세대를 끌어들일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 20조… “오래가는 IP 개발 고민 필요”

국내 캐릭터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를 보면 지난 2005년 2조700억원대였던 캐릭터 시장은 2011년 7조2000억원, 2019년 12조5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정체기를 거쳐 2022년엔 20조원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홈쇼핑의 경우 벨리곰 상품 판매 누적 수익만 50억원에 달한다.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 지하 1층에서 진행된 100만 구독 인기 유튜브 캐릭터 '빵빵이' 1주년 기념 팝업스토어./현대백화점 제공

캐릭터 IP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캐릭터가 단순히 MZ세대를 넘어 4050세대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X세대’는 건담이나 스타워즈 등으로 대표되는 실질적인 IP 소비 1세대다. IP는 세대를 막론하고 소구력을 가졌다. 벨리곰은 실제 ‘벨리맘’으로 불리는 4050세대가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체들도 캐릭터 생성을 넘어 세계관을 만들고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캐릭터들의 친구들이 생기고 애니메이션, 유튜브 등 다양한 2차 콘텐츠 생산이 일어난다.

예컨대 벨리곰은 유령의 집에서 탄생한 곰이라 사람을 놀라게 하고 행복을 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현대백화점의 흰디 역시 외계 행성에서 지구로 와 젤리씨앗단 친구들을 만나 여행을 한다는 세계관이다.

전문가들은 유통업체들의 IP 활용 전략이 정교해졌다고 진단하면서도 지속성을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팝업스토어 등으로 경험을 쌓은 유통업체들이 IP 사업 전개를 예전보다 더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라며 “콘텐츠 IP에는 이야기 확장의 축과 경험 확장의 축이 있는데 백화점 등 기존 유통업체들은 공간을 활용해 경험의 축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유통업체들이 자체 IP 개발에 나선 것은 X세대부터 MZ세대까지 소비 주력층이 모두 IP 소비에 익숙하고 우호적이라는 데서 기인한다”며 “다만 오래가고 지속적인 콘텐츠와 IP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자사 IP를 통해 어떤 스토리텔링과 세계관을 만들어낼지가 관건”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