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골든글로브를 받으면 더 많은 신발을 팔 수 있을 겁니다.”
2016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 베조스는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사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프라임 비디오’가 활성화하면, 유료 멤버십 회원이 늘고, 상품 판매도 더 많이 일어날 거라는 의미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2006년 시작됐다. 아마존은 2010년 자체 스튜디오를 세워 오리지널 콘텐츠(자체 제작물)를 만들었고, 2014년에 게임 스포츠 동영상 등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트위치를 9억7000만달러(1조2688억원)에 인수했다.
2021년에는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작사이자 4000여개의 영화를 보유한 MGM을 95억달러(약 12조4308억원)에 인수했다. 이듬해 9월엔 제작비 4억6500만달러(약 6085억원)를 들여 만든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시즌1을 240개국에 공개해 첫날 2500만명의 시청자를 모았다.
◇콘텐츠로 돈 안 번다... OTT에 진심인 아마존·쿠팡
아마존이 콘텐츠에 투자하는 이유는 콘텐츠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핵심 사업인 커머스(상거래)를 잘하기 위해서다. 콘텐츠는 고객들이 프라임 멤버십에 가입하고, 플랫폼을 이탈하지 않고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다.
이른바 ‘록인(Lock-in) 전략’이다. 아마존은 OTT 외에도 음원, 도서, 프라임데이 등을 유료 회원에게 번들(묶음) 형태로 제공, 고객을 묶어둔다.
제프 베조스는 이를 ‘플라이휠(flywheel)’로 설명한다. 저가 정책으로 고객을 사로잡고, 이를 통해 번 돈은 다시 고객 경험과 신사업에 투자해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선순환 효과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Statista)가 미국 아마존 프라임 회원을 대상으로 가입 이유를 조사한 결과 89%는 하루 배송을, 57%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꼽았다. 맥킨지 조사에서 아마존 프라임 고객은 온라인 상품 가격이 오프라인 매장보다 더 비싸도 상관없다고 답하는 비율이 일반 소비자보다 높았다. 아마존에 따르면 프라임 고객이 비회원보다 아마존에서 4배가량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한다.
이 충성 고객들은 아마존이 2022년 월 회비를 12.99달러(약 1만7000원)에서 14.99달러(약 1만9000원)로 인상했을 때도 이탈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프라임 회원 수는 전 세계에 약 2억명으로 추정된다.
이제 아마존은 OTT 플랫폼에 ‘광고’를 도입해 신규 수익까지 창출할 태세다. 아마존은 다음 달 프라임 비디오에 광고 요금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멤버십만 있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지만, 광고형으로 전환되면 광고를 보길 원치 않는 프라임 회원은 월 2.99달러(약 4000원)의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손흥민 경기 독점 중계한 쿠플... 국내 OTT 1위 사업자로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국내 이커머스 4쿠팡 역시 핵심 사업을 키우는 수단으로 콘텐츠를 택했다. 2020년 12월 출범한 OTT ‘쿠팡플레이’는 쿠팡의 로켓와우 회원에게 콘텐츠를 무료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쿠팡플레이는 ‘SNL코리아’ 1개 시즌 제작에 120억원을 쓰고,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영국 구단 토트넘 홋츠퍼FC를 100억원 들여 초청했다. 그리고 초정 경기 티켓을 구매할 자격을 로켓와우 회원들에게만 줬다.
자체 제작한 드라마 ‘안나’ ‘미끼’ ‘소년시대’ 등도 인기를 끌었다. 내친김에 쿠팡은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고 방송인 신동엽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쿠팡 역시 2022년 멤버십 가격을 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72% 올렸으나, 고객이 이탈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쿠팡에 따르면 와우 회원 수는 지난해 1100만명을 돌파했다. 시장에선 멤버십 회원들에게 제공되는 로켓 배송과 OTT 혜택을 회원 수를 유지하는 주요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쿠팡플레이는 OTT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쿠팡플레이는 티빙, 웨이브 등 토종 OTT를 제치고 넷플릭스에 이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2위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쿠팡의 실적도 안정화됐다. 쿠팡은 2022년 3분기 창립 이래 첫 흑자를 기록하고, 2023년 1분기엔 이마트(139480)의 매출을 제쳤다. 지난해엔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도 2022년 9월부터 파라마운트와 손잡고 유료 멤버십 ‘월마트 플러스’ 회원에게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 12.95달러(약 1만7000원)의 회비를 내면 ‘파라마운트 플러스 에센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업계는 월마트의 이런 전략이 아마존에 맞서기 위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편이자, 유료 멤버십 회원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청자를 팬으로... 기업 오리지널 콘텐츠도 성행
OTT 플랫폼까지 운영하지 않더라도, 유통업계엔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에 채널을 개설하고 고유의 콘텐츠를 만드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빙그레(005180)는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2020년부터 ‘빙그레 왕국’이라는 세계관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빙그레우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빙그레우스는 세계관·캐릭터·부캐 마케팅 열풍을 주도하며, 빙그레라는 브랜드를 영상 세대에게 각인시켰다.
그런가 하면 대상(001680)은 ‘65년째 감칠맛을 담당하는 미원의 서사’를 담은 B급 감성의 영상을 선보여 한 달 만에 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편의점 CU의 자체 웹 드라마 ‘편의점 고인물’의 경우 공개 40여일 만에 1억명 이상이 봤다.
이같은 콘텐츠는 그 자체가 광고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이 자연스레 브랜드를 소비하게 만든다. 게다가 TV 광고보다 제작비가 저렴한(?) 데다 생명력이 긴 것도 장점이다. CU 측은 ‘편의점 고인물’의 광고 효과를 33억원 이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자사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웹툰 플랫폼 ‘만화경’을 선보인 배달의민족은 출범 4년 9개월 만인 올해 5월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만화경은 10~20대 독자층에 인기를 얻어 회원 수 40만명을 모았으나, 회사 측은 “기존 웹툰 플랫폼으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 돼 시장 창출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과 아마존은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콘텐츠 전략을 시도할 수 있지만, 모든 기업이 그럴 순 없다. 또 자본을 투입해도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나는 경우도 있다”라며 “기업들은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고 새로운 관점으로 콘텐츠 커머스 전략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