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탠리의 '퀜처'를 받는 영상을 공유한 틱톡 사용자들. /그래픽=정서희

지난해 연말, 미국 10대 소녀들이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스테인리스스틸 보온병 브랜드 스탠리의 40온스 텀블러 ‘퀜처’다.

1913년 등산객과 캠핑족을 위해 출시된 이 보온병이 110년이 된 지금, 젊은 여성들이 갖고 싶은 아이템이 된 이유는 틱톡 덕분이다. 틱톡은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소셜미디어(SNS)다.

스탠리는 틱톡에서 기존의 투박한 녹색 병이 아닌, 파스텔 색상의 텀블러를 언박싱(쇼핑한 것을 개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하는 숏폼(short-form 짧은 길이의 영상 콘텐츠)이 번지며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틱톡에서 #StanleyTumbler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9억 회 이상 조회됐을 정도다. 게시물 중엔 차량 화재에도 얼음이 담긴 음료를 그대로 보존한 그을린 스탠리 텀블러 영상도 있었다. 덕분에 2019년 7000만 달러(약 911억원) 수준이던 스탠리의 연 매출은 지난해 4억200만 달러(약 5230억원)로 급증했다.

제임스 코든 '카풀 가라오케'에 출연한 팝 스타 아델이 스탠리 퀜처를 이용하는 모습. /유튜브

◇콘텐츠 커머스 이끄는 잘파세대

콘텐츠 커머스를 이끄는 건 디지털 원주민인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다. 잘파세대란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태어난 Z세대와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를 통칭하는 단어다. 유년 시절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접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선호하고,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소비한다.

메타버스나 인공지능(AI)에도 익숙하다. 장난감을 소개하는 10살 유튜버 라이언 카지는 연간 3000만 달러(약 390억원) 이상의 수익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높은 구매력으로 소비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잘파세대는 이미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잘파세대 인구는 2025년이면 세계적으로 22억 명을 돌파해 조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를 추월할 전망이다.

<잘파가 온다>를 쓴 황지영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잘파세대를 ▲2025년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성을 갖고 있고 ▲나이에 비해 막강한 자본력을 갖췄다고 진단했다.

콘텐츠 시장에서 60초 안팎의 짧은 영상인 숏폼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도 잘파세대다. 특히 10대의 영향력이 컸다. 디지털 마케팅 기업 메조미디어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하루 평균 숏폼 채널 이용 시간은 63분으로, 전 연령대 평균인 35분을 웃돌았다. 유튜브 동영상 길이 또한 10대는 13분으로 연령대 중 가장 짧은 시간 영상을 봤다.

황 교수는 “Z세대의 주의 집중력은 8초, 알파세대는 3초다. 밀레니얼 세대가 20초인 것과 비교하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뒀다가 거두는 시간이 크게 짧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집중하는 시간이 짧기에 가볍고 단편적인 소비를 선호한다. 기업들은 가볍고 짧은 문법으로 소통해 소비자들의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서비스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잘파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취향이다.

지난해 유튜브 조회수 1위를 기록한 토크쇼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 에스파 카리나 편'. /유튜브

지난해 11월 외교부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특별 연설자로 나선 래퍼 이영지(22) 씨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장차 문화를 이끌 것”이라는 그의 당찬 발언에 대중은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2002년생인 이 씨는 ‘고등래퍼’,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랩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교복 차림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힙합 씬을 점령한 그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잘파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지난해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를 끈 영상도 그가 진행하는 토크쇼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차쥐뿔)’의 에스파 카리나 편이었다. 국민 MC 유재석이 진행하는 뜬뜬(DdeunDdeun) 채널의 ‘설 연휴는 핑계고’는 3위를 차지했다.

◇취향 맞는 콘텐츠 추종하는 ‘디토소비’도

앞선 스탠리의 사례처럼, 잘파세대의 구매 결정에는 소셜미디어(SNS)가 큰 영향을 미친다.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28~29세 중 40% 이상이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를 통해 상품을 구매했다. 특히 젊은 여성의 경우 그 비율이 50%에 달해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그래픽=정서희

유명인을 추종해 소비하는 현상은 어느 세대나 있었다. 그러나 잘파 세대의 추종 소비가 다른 점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특정 콘텐츠에 신뢰를 느끼고 추종하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깐깐하게 정보를 탐색하는 대신 특정 사람과 콘텐츠, 커머스가 제안하는 선택을 추종하는 소비가 부상하고 있다”라며 올해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디토소비’를 꼽았다.

디토는 ‘나도(ditto)’라는 뜻으로, 스타나 인플루언서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대상을 찾고 그 의미를 해석해 받아들이는 주체적 추종의 모습을 띠는 소비를 의미한다. 과거엔 다수가 좋아하는 유명 스타를 찾아 몰렸다면, 디토소비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디토 소비자는 처음엔 사람을 추종하다가, 이어 콘텐츠를 추종하고, 마지막으로 커머스를 추종하는 양상을 보인다. 인플루언스의 스타일을 따라하다가, 웹툰 주인공의 라이프스타일을 흉내 내고, 고유한 취향이나 안목으로 특정 카테고리의 상품을 판매하는 전문몰(버티컬 커머스)을 추종하는 식이다.

여행 숙소 예약 플랫폼 스테이폴리오의 경우 숙소를 먼저 체험한 뒤 그 정서를 큐레이션 해 추종자를 모은 사례다.

김 교수는 “유통 채널이 다양해지고 품질도 상향 평준화되며 선택의 어려움과 실패의 두려움이 증가했다”라며 “브랜드 충성도가 현격히 떨어진 시점에서 제조사나 브랜드를 따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콘텐츠·커머스를 추종하는 것이 훨씬 만족할만한 의사 결정이 됐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