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136480)이 선박회사 HMM 인수에 뛰어들면서 하림의 기업 지배구조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림이 편법 승계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으로 공정거래위원회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가운데, 오너 2세가 운영하는 여신전문금융회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을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들이 매수에 나서서죠.

이야기의 핵심에는 김홍국 회장의 장남인 김준영씨가 있습니다. 준영씨는 하림 지배구조의 정점인 육류가공업체 올품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하림의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습니다.

하림지주는 지난해 12월 기준 김홍국 회장이 22.1%로 최대주주에 올라가 있습니다. 뒤를 이어 한국바이오텍이 16.69%, 올품 5.78%, 김 회장의 배우자인 오수정 여사가 2.5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 올품은 김준영 씨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 회사나 다름없습니다. 올품은 한국바이오텍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올품과 한국바이오텍이 보유한 하림지주 지분을 합치면 22.47%로 김 회장보다 많습니다. 최대주주보다 지분이 많은 사실상 진짜 최대주주는 준영씨란 뜻입니다.

그래픽=정서희

이번엔 준영씨의 든든한 주머니를 담당하는 에코캐피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회사는 올품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코캐피탈은 하림그룹 계열사와 연계한 축산업 관련 법인·개인사업자 대출 등을 취급하는 여신전문금융회사로, 주로 회사채나 CP를 발행해 돈을 버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상당히 알짜입니다. 에코캐피탈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약 54억원. 2020년 당기순이익 59억원에서 2021년 당기순이익 7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에코캐피탈은 지난해 순이익 54억원 중 45억원을 준영씨가 지분 100%를 가진 올품에 배당금으로 지급했습니다. 2021년에는 순이익 약 74억원 중 4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고, 2020년에는 순이익 약 59억원 중 35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습니다.

이 배당금은 지분을 100% 소유한 올품으로 가게 됩니다. 3년간 올품이 에코캐피탈을 통해 받은 배당을 다 합하면 12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1년간 올품은 38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지만, 하림그룹 전체 당기순이익은 50억원인 것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래픽=정서희

장사를 잘하는 알짜 기업을 두고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전자공시시스템의 공시 상으로 에코캐피탈이 발행한 CP를 매수한 곳들이 주로 하림 계열사이고, 이들 계열사들의 사정이 썩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3년간 하림 계열사 중 에코캐피탈 CP를 사준 곳은 하림푸드, 하림펫푸드, 한강식품, 글라이드 등입니다. 3년 동안 4건에 걸쳐 560억원의 CP를 매수한 한강식품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손실 22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하림펫푸드는 2020년에 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가 2021년부터야 흑자를 봤습니다. 지난해 13억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결손금이 아직 225억원가량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글라이드는 지난해 93억원, 2021년 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림 측은 단기 투자 자금 마련을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율 등에서 시중은행이나 타사와 거래하는 것보다는 계열사 간 CP를 거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에코캐피탈이 지난 7월 31일 글라이드와 거래한 내역을 보면 5.3%의 할인율이 적용됐습니다. 에코캐피탈의 신용등급은 AAA입니다.

하지만 계열사 간 금융 상품 거래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의 거래를 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됩니다. 한 기업지배구조 관계자는 “손실을 본 계열사에 어음을 매도하면 부당거래 행위로 의심받기 쉽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하림 측은 공정거래법에 맞게 이율을 설정하고 있고, 시중은행보다 유리한 것은 캐피탈사가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특수관계자 간 거래만 공시하다 보니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비중은 15% 정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도 계열사 간 CP 거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계열사 간 거래는 자금 지원 형식으로 시장 금리보다 낮게 조절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금리를 감안했을 때 7월에 5.3%로 거래했다면 일반적인 다른 곳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유리한 조건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상장 회사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CP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기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 간 CP 거래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국내 기업들이 그룹을 만드는 이유 역시 하나의 업종이 어려울 때 계열사끼리 도움을 주고받고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부분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림은 거듭된 인수합병으로 재계 순위를 차근차근 끌어올린 회사입니다. 하림의 오너인 김홍국 회장은 어린 시절 병아리 10마리를 선물 받아 18세의 나이에 닭 5000마리를 보유한 농장을 세웠고, 이 농장을 시작으로 하림식품의 오너가 된 자수성가 신화로 유명하죠.

이번 HMM 인수에 성공하면 하림의 재계 순위는 27위에서 13위까지 뛰어오르게 됩니다. 12위인 신세계그룹과 어깨를 견주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하림은 성장 과정에서 공정위와 여러 차례 부딪혀 왔습니다. 지난 2021년에는 하림 계열사들이 올품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2021년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 및 과징금 48억8800만원을 부과받았습니다.

이에 하림은 공정위를 상대로 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등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공정위는 “기업 2세의 지배회사에 대한 지원 행위를 통해 승계자금을 마련하고 그룹 지배권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유인구조가 확립된 뒤 행해진 계열사들의 지원 행위”라는 입장입니다.

하림의 CP 매도와 관련해서 공정위는 “하림 관련 조사가 이뤄진 2019년에는 에코캐피탈 관련은 검토하지 못했지만, 2020년부터 계열사 간 CP 거래가 활발해진 것을 확인했다”라며 “거래 비중, 거래 조건 등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아 향후 살펴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정거래법상 공정위 처분에 대한 불복 소송은 서울고등법원에서 관할하는데요, 서울고등법원이 입증이 부족하다는 하림과 승계를 위한 지원행위라는 공정위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쏠립니다. 자수성가로 일군 기업인만큼 그간의 행보가 일반적인 승계기업의 모습이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