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속 주인공인 듯한 복장으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붉은 건물과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룬 거리. 10m도 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와 회족(回族·이슬람교를 믿는 소수 민족)들이 모여 양꼬치 등을 파는 상점가.

동쪽으로는 병마용갱(兵馬俑坑)으로 유명한 시황제의 무덤과 무협지에 등장하 화산파의 본산인 화산(花山)이 있고, 서쪽으로는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된 법문사 있는 곳. 섬서성의 성도로 한나라, 당나라를 비롯해 13개 왕조의 수도 역할을 해온 중국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중국 섬서(陝西)성 시안이다.

중국 섬서성 시안의 대당불야성의 모습. /양범수 기자

◇ “평일 관광객만 2만명”… 불야성 이루는 시안 시내

지난 달 찾은 시안은 도심과 외곽을 가릴 것 없이 관광지라면 어느 곳이든 인파로 가득했다. 이 도시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 금지가 내려지기도 하면서 한동안 거리가 한적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시안 시내 남쪽에 있는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은 글자 그대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달 17일 저녁, 평일인 화요일이었음에도 길이 약 1.5㎞, 폭 30m 거리에는 수천명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안탑부터 당성벽유적지공원을 잇는 길인 대당불야성은 쇼핑·외식·엔터테인먼트·관광·숙박 등을 결합한 복합관광문화지구인데, 당(唐)나라 문화와 건축물을 모방해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콘서트홀·미술관·영화관 등의 대형 건물이 그러한 양식으로 지어져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리 중간 중간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설치돼 연극이나 버스킹 등이 열렸고, 말을 타고 행진하는 당 태종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과 당나라 시절 장안성에 있었던 함원전(含元殿)의 모습을 복원한 조형물 등이 곳곳에 놓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탕후루 등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었고, 기념품을 파는 점포들도 많았다.

중국 섬서성 시안 대안탑이 보이는 광장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한푸' 차림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양범수 기자

길가에는 두터운 화장에 한푸(漢服·중국 한족의 전통 복장)를 입고 가채까지 쓰고는 조명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안탑과 당나라 초기 고승인 현장삼장(玄奘三藏)이 보이는 장소에는 승려 분장을 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내 다른 도시 사람이라고 한다. 국내 관광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낮에는 시안성벽이나 종루와 고루 등 시내 다른 유적지를 보고 숙소와 가까운 이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인 김금연씨는 “요즘 평일에도 2만명의 사람이 도시를 찾고 주말에는 2배인 4만명씩 온다”면서 “성수기인 7~9월에는 주말마다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김씨는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여행 산업이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섬서성 시안에 있는 화청지 내 양귀비 석상의 모습. /양범수 기자

◇ 당 현종·양귀비 이야기부터 병마용갱까지 볼 수 있는 역사 관광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와 얽힌 관광지들도 시안의 주요 관광 자원 가운데 하나다. 특히 당나라 황제들의 별궁인 화청지는 양귀비와 당 현종이 온천욕과 서봉주를 즐기며 겨울을 보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궁 내에 들어서자마자 큰 연못이 펼쳐져 있고, 양귀비의 모습을 본떠 만든 석상과 온천수가 솟는 분수가 눈에 들어왔다. 궁 내 여러 채의 건물 안에는 각각 양귀비가 사용하던 온천의 터, 당 현종이 사용하던 온천의 터 등이 남아 있었다.

화청지는 낮 시간에는 유적지로 관광객을 받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대형 야외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지은 서사시를 기반으로 한 연극인 ‘장한가’ 공연이 이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중국 섬서성 시안의 화청지에서 열리는 '장한가' 공연의 일부. /양범수 기자

하루에 3차례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공연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비극을 주제로 한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조명이 특징으로 화청지 뒤 여산에 조명 장치를 하나하나 설치해 밤하늘의 별을 표현하는가 하면, 양귀비를 죽음으로 몰아간 안녹산의 난을 재연할 때는 연못에서 불이 치솟고 폭죽이 터지기도 한다.

한 회차 공연에 22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데, 공연을 관람한 지난 달 18일에는 비가 내렸음에도 만석을 기록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성수기인 7~9월에 표를 구하려면 두 달 전부터 예매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공연이다.

중국 섬서성 시안의 병마용갱의 모습. /양범수 기자

하지만 시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자면, 시황제의 무덤 가운데 발굴 작업이 이뤄진 병마용갱이다. 1974년 현지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가 발견돼 발굴 작업이 이뤄진 곳으로, 현재까지 병사와 말 등의 테라코타 모형이 8000점 발견됐다.

병마용갱 가운데 1~3호 갱은 관광객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보게 되는 1호갱에 들어서자 관람로 아래로 10개의 구덩이에 3~4개씩 줄을 맞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 있는 테라코타 모형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가장 많이 복원된 갱으로 이 곳에만 3000개의 테라코타 모형이 자리해있다.

1호갱 곳곳에는 부숴진 테라코타 모형을 수리하거나, 흩어져있는 테라코타 모형의 조각을 모아 복구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보존 상태가 훌륭해 해외 전시 등에 보내기 위한 테라코타를 따로 모아두기도 했다.

박물관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수학여행 등으로 찾은 학생들과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중국의 명절인 중추절·국경절 연휴 기간에는 하루 6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병마용갱을 찾는다고 한다.

중국 섬서성 시안에 있는 병마용갱 모습. /양범수 기자

◇ 코로나 전 내국인 방문만 7.2억명… “회복도 빠를 것”

섬서성은 성도인 시안에 있는 문화재들을 자원으로 한 관광 산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는 매년 섬서성 방문객 수가 늘면서 연간 내국인 방문객만 7억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타격 이후 급격히 꺾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섬서성국민경제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섬서성을 찾는 중국인 수는 2018년 6억2600만명, 2019년 7억200만명을 기록했으나, 2021년 3억90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관광산업의 총생산도 큰 타격을 받았다. 2018년 5995억위안으로 전체 성 GDP에 24.5%를 차지한 관광산업 규모는 2021년에는 3434억위안(전체 GDP 대비 12%)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관광산업 회복세가 빠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시안은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역사 관광 도시”라며 “다수 민족인 한족(漢族)이 자신들의 정통문화라고 생각하는 한·당나라가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던 서안을 찾고자 하는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