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2형 당뇨를 앓고 있는 이모(70)씨는 최근 치아의 절반 이상을 발치하고 임플란트 시술을 해야해 섭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작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라 죽 등 유동식을 대체해 섭취하고 있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는 이씨 아내가 매번 장을 봐서 식사를 준비하기가 어려워 힘에 부치는 상태다.

고민하던 이씨의 자녀는 최근 한 식품업체가 내놓은 ‘고령화 친화 식품’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저당·저염식인데다 씹기 편하게 개발된 제품이라 이씨가 먹기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씨는 “부드러워 입에 잘 녹는데 일반식에 가까운 맛이라 만족스럽다”면서 “마트로 장을 보러 가기가 어려운 노인들에게 배송을 해주니 편리하지만 딸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그린푸드 그리팅 신장질환식단./현대그린푸드 제공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국내 식품기업들이 케어푸드(care-food)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유소년층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케어푸드는 원래 음식물 섭취와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이 대상이지만 최근엔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은 젊은층이나 영양 관리가 필요한 임산부 등 수요층이 늘면서 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

국내 케어푸드 시장규모는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케어푸드 시장규모는 ▲2014년 6526억원 ▲2017년 1조1000억원 ▲2020년 2조원 등 급속히 증가했다. 오는 2025년에는 3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케어푸드 시장의 급성장 바탕에는 고령인구의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전체 인구에서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7.5%에서 2030년 25.5%, 2050년 40.1%, 2070년 46.4%로 갈수록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65살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초고령 사회’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래픽=정서희

◇요양원 납품 노하우로 식자재 기업이 선점… hy·풀무원 등도 가세

케어푸드 사업으로의 진출은 CJ프레시웨이, 현대그린푸드, 신세계푸드, 아워홈 등 요양원·병원 납품으로 노하우를 쌓아온 식자재 기업들이 가장 빨랐다.

CJ프레시웨이(051500) 케어푸드 브랜드인 ‘헬씨누리’는 요양원·복지관 등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했고, 신세계푸드(031440)는 ‘이지밸런스’ 브랜드를 운영 중이며, 아워홈도 국내 최초로 효소로 개발한 연하식 제품을 2017년 출시한 바 있다.

현대그린푸드(453340)도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인 ‘그리팅’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팅몰에서는 케어푸드 간편식 300여종을 판매 중이며, 1~2주 단위로 보내주는 케어푸드 정기구독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암 수술 후 회복을 돕는 ‘암환자식단’을 비롯해 ‘당뇨식단’ ‘신장질환자식단’ ‘고혈압식단’ 등도 판매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최근에는 hy, 풀무원건강생활 등 다른 식품기업들도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케어푸드 제품군 확대에 나섰다. 이들 업체는 공통적으로 케어푸드를 고령 친화식뿐 아니라 다이어트, 건강 식단 등으로 확대해 대중성을 높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노화로 인해 인두·식도 근육이 약해져 삼킴 장애가 있는 고령자를 위한 연하식이나 이가 튼튼하지 않아 씹는 것이 어려운 것을 보완해주는 저작식 등이 케어푸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식품의 물성을 조절해 치아가 약해도 쉽게 씹거나 삼킬 수 있으며 필요한 영양 성분을 충분히 담는 형태로 제조·가공된 것이 특징이다.

고령자 만성 질환을 고려한 저염·저당 식품,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는 메디(medi) 제품, 쉽게 움직이기 힘든 시니어 층을 위한 식재료·식사 배달 서비스도 모두 포함된다.

◇고령층 타깃 놓고 방향 고민… 일반식 유사도가 관건

다만 케어푸드 제품 브랜딩과 개발 방향을 두고 식품업계의 고민이 크다. 고령층에 특화된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면 시장에서의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가구 단위 소비가 많은 마트나 젊은층 소비가 많은 이커머스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는 고령친화식의 수요가 적다.

올해 우리나라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900만명을 넘었는데, 특히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를 중심으로 한 장년층에는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유통 전문가들은 이들의 특징을 ‘네버랜드 신드롬(Neverland syndrome)’이라고 요약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소설 ‘피터 팬’의 주인공 피터 팬이 사는 가상의 나라 네버랜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네버랜드에서는 아이들이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들지 않은 것처럼 소비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학부 교수는 “노인이라고 해도 활동성이 있고 건강이 유지되는 상태라면 일상식을 더 선호하고, 노인 전용 식품에는 거부감을 갖는다”며 “식품 기업에서 상정한 노인의 필요와 요구와 실제 노인들이 갖고 있는 요구는 명백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매일유업(267980)의 단백질 제품인 셀렉스가 재빨리 노선을 선회한 대표적인 사례다. 당초 셀렉스는 2018년 고령층 및 중장년층을 위한 식사대용식으로 출시됐다. 분말·음료 두가지 형태로 출시됐는데 고령층을 타깃한 분말 제품 매출은 정체된 반면, 음료 형태 제품이 체중관리를 하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끌자 아예 이미지를 바꿔 다이어트 제품군을 더 확대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 역시 고령친화식 시장의 첫번째 고민이 일반식과의 유사성을 높이고 고령층만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었다.

2002년 설립된 일본 개호식품(곁에서 돌봐주는 음식이란 의미) 협회는 고령자 혹은 환자들이 먹는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개호식품 대신 UDF(Universal Design Food)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고령인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자는 취지다.

◇돈 드는 케어푸드… 요양원 등 실수요층은 비용 민감

연하·연화 기능을 더한 고령친화식의 소비가 아직 요양원이나 병원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도 식품기업들의 고민을 키운다. 이 때문에 고령친화식의 몸집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개발비용 등 들어간 투자에 대비해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수요자가 많은 요양원이나 병원 등 시설에서는 품질보다 비용에 더 민감하다. 케어푸드 시장이 발달해도 건강이 좋지 않은 사회취약계층 노인은 그 혜택을 보기가 힘들다.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 지원 등이 없다면 구매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위해 고령친화식의 품질을 높일 유인이 떨어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요양원, 무료 급식소 등의 노인 급식 지원 단가는 여전히 4000원 미만에 머문다. 올해 전국 15개 지방자치단체(강원, 충북은 지원사업 없음)별 노인 급식 지원 단가 평균은 3873원으로 집계됐다. 8000원대인 결식아동 급식비의 절반 수준이다. 케어푸드 시장이 확대되도 사회 취약계층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화식을 제작하는 식자재 업체 관계자는 “시장은 커지고 있어도 비싸면 안팔리니 문제“라며 ”시설에 들어가 있는 분들이 주 수요층인데 이분들은 경제적인 주권이 없는 경우가 많고 자녀들도 비용이 비싸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을 하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마트 등 다른 채널에서는 팔리지도 않는 제품을 계속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고령친화식이 정말 필요한 곳에 가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