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로벌 생산기지였던 베트남이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1억명, 경제 활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으로 구성된 베트남은 연 6% 이상의 경제성장률로 구매력을 높여가고 있다. 조선비즈는 베트남 소비시장을 이끄는 Z세대의 새로운 소비 문화를 진단하고, 국내 유통기업의 베트남 시장 공략 방안을 모색한다.

하노이의 대표적 쇼핑 거리인 장띠엔 거리를 걷는 베트남 젊은이들. /김은영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1시 30분, 베트남 하노이 구시가지에 위치한 레스토랑 ‘땀비(Tầm Vị)’.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었지만, 식당은 1·2층 모두 빈자리 없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노이 가정식을 판매하는 이곳은 지난 6월 베트남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끈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식당 내부는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커플과 가족 단위 고객들로 가득했다. 직원에게 추천받은 넴란(짜조)과 곁들임 반찬, 음료 등을 주문하니 40만 베트남동(VND, 약 2만2000원)가량이 지출됐다. 베트남 근로자 월 평균 소득이 800만 동(약 44만원), 베트남인이 식사로 주로 먹는 쌀국수 한 그릇이 2000~4000원인 걸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생산기지였던 베트남이 세계가 주목하는 소비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가 1억 명을 육박하는 데다, 연 6%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구매력이 향상하고 있어서다.

특히 소비력을 갖춘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약 1500만 명으로, 총구매력은 3400억 달러 수준이다. 이는 2023년 베트남의 총소비자 지출 금액의 14%에 해당한다.

◇ Z세대가 주도하는 베트남 소비시장

전 세계 소비시장이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에게 주목하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Z세대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더 젊고, 더 크고, 더 강하다.

그래픽=정서희

한국의 신입사원 평균 연령이 28세 정도인 데 반해 베트남은 경제활동 인구의 51%가 25세 미만으로, 경제 주권을 빨리 갖는다.

아울러 선진국에 비해 전체 연령 구간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선진국의 Z세대가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라며 좌절하는 것과 달리, 베트남 Z세대 82%(2015, 디시전 랩)는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기대한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업 닐슨은 “2025년까지 Z세대가 베트남 노동력의 25%를 차지할 것이고, 이는 1500만 명의 잠재 소비자를 의미한다”라며 “일용 소비재(FMCG) 브랜드가 Z세대로 초점을 옮겨야 할 때”라고 했다.

◇ 200만 명 찾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35세 미만이 절반

베트남 Z세대의 영향력은 지난달 22일 하노이 서호(西湖, West Lake) 인근에 정식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는 35만4000㎡(약 10만7000평) 공간에 마트, 호텔, 아쿠아리움, 영화관 등을 조성한 초대형 상업 복합단지로, 몰링(Malling)형 쇼핑 공간을 지향한다. 한국에선 이런 쇼핑 공간이 보편화 됐지만, 베트남에선 처음 선보이는 업태다.

지난달 정식 개장한 하노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 /김은영 기자

정식 개장을 이틀 앞두고 찾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는 초대형 예술작품 ‘헬로맨’이 설치된 입구부터 명품 매장과 카페, 서점에 이르기까지 ‘잘 차려입고’ 인증 사진을 찍는 베트남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쇼핑몰 내에서 결혼사진을 찍는 예비부부도 있었다

최용현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점장은 “주중엔 패셔너블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들이 많이 온다”며 “심지어 휴대용 피팅룸까지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분들도 많다”라고 했다.

롯데쇼핑(023530)에 따르면 지난 7월 선 개장(프리 오픈)한 이 쇼핑몰은 두 달간 200만 명이 넘는 고객이 방문했다. 하노이 인구가 약 84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하노이 시민 5명 중 1명이 찾은 셈이다. 방문객 절반 이상은 35세 미만이었다. 한국 백화점과 쇼핑몰의 주 소비층이 40~50대인 것과 대조적이다.

쇼핑몰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공간은 단연 먹거리 공간이다. 4층 식당가에 위치한 경주의 명물 ‘십원빵’ 가게 앞엔 수십 명의 줄이 세워졌고, 뷔페식 떡볶이집 ‘두끼’는 객단가 7000원으로 월 매출 1억7000만원을 벌어 들이고 있었다.

하노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4층에 있는 '십원빵' 매장 앞에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 10원짜리 동전 모양을 한 이 빵은 '치즈 코인 케이크'라는 이름으로 하나에 3만5000동(약 2000원)에 팔린다. /김은영 기자

지하 1층 롯데마트의 조리식품 특화 매장 ‘요리하다 키친’과 빵집 ‘풍미소’에도 사람이 모여들었다. 박창열 롯데마트 베트남 법인장은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며 “김밥집의 경우 하루에 김밥 1000개를 만다”고 말했다.

◇체험 찾는 Z세대... ‘십원빵’부터 파인다이닝까지

하노이 도심에서도 한국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점이 위치한 서호 인근에는 3층 건물 전체가 떡볶이집인 곳도 있다.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네컷사진’도 이곳 Z세대가 즐기는 필수 코스다.

한국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하노이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히엔 팜(32)씨는 “5~6년 전만 해도 한국 식당에 가면 한국 주재원들만 있었지만, 지금은 현지인이 절반 이상”이라며 “젊은 친구들, 특히 학생들에게 한국 음식 체험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류에 대한 관심이 Z세대에 이르러 ‘체험 소비’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희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동남아지역본부장(하노이 무역관장)은 “예전에도 한류가 있었지만, 이전에는 드라마만 있었다면 지금은 K팝부터 넷플릭스 드라마, 예능까지 콘텐츠가 다양하고 전파 속도도 빨라졌다”라며 “문화를 받아들이는 범위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라고 했다.

지난 6월 미쉐린 1스타 식당으로 선정된 ‘땀비(Tầm Vị)’에서 젊은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자국 인프라 없는 소비시장, 글로벌 유통기업 주목

1인분에 십만원이 넘는 파인다이닝 식당(최고급 식당)도 인기다. ‘땀비’와 함께 올해 미쉐린 1스타(별)를 단 레스토랑 ‘쟈(Gia)’는 셰프가 베트남 전통 요리를 재해석해 계절별로 다른 코스 요리를 내는데, 하루 24인분만 판매한다.

봉사료(7%)와 부가세(8%)를 제외한 저녁 코스 1인분 가격이 289만동(약 16만원)부터 시작한다. 베트남보다 평균 임금이 8배가량 높은 한국(약 330만원) 기준으로 봐도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최소 2주 전에는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메뉴판을 본 한 30대 베트남 여성은 “비싸 보이지만 메뉴를 보면 적당한 가격”이라며 “한 번쯤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샘 트란(40) 셰프는 “새로운 맛을 체험하려는 고객들이 레스토랑을 찾고 있다. 내외국인 고객이 다양하게 온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자 글로벌 유통업체들은 베트남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베트남은 구매력이 급부상하는 데 반해 자국 인프라가 얕은 점이 기회 요인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경우 롯데그룹을 비롯해 GS리테일(007070), CJ제일제당(097950), 대상(001680), 오리온(271560), 하이트진로(000080) 등이 진출해 사세를 넓히고 있으며, 일본 이온그룹, 프랑스 명품 업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도 점포를 확장하고다. 또 스타벅스, 맥도날드, 자라, 유니클로, 무인양품 등 글로벌 브랜드도 베트남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희상 본부장은 “아직 베트남을 소비시장으로 보긴 어렵지만, Z세대가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고 디지털을 이용한 쇼핑이 활발해지고 있다”라며 성장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