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배 주류담당 MD. /세븐일레븐 제공

"주류수입사가 주문을 너무 많이 해서 남으면 어쩌냐고 걱정할 정도였는데 다 팔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12월 한 달간 3만병 수량의 연말 기획 와인 8종으로만 매출 30억원을 기록했다. 재작년 연말 주류수입사로부터 업계 최초로 1만병의 와인을 주문해 완판시킨 와인 상품기획자(MD)가 지난해에는 수량을 늘려 역대급 와인 실적을 낸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주로 취급했던 와인이 '편의점 대표 상품'이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만원 이내의 가성비 와인을 취급하면서도 고급화된 와인 마니아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품군을 다양화했다. 소주, 맥주가 대다수를 채우던 편의점 주류 매출 중 한 자릿수였던 와인 매출 비중을 10%대까지 끌어올렸다.

조선비즈는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본사에서 와인과 위스키 등을 담당하는 송승배(31) 주류 MD를 만났다. 그는 4년 차로, 유통업계에서는 가장 젊은 주류 MD에 속한다.

◇"소믈리에 자격증 따면서 공부…이달의 와인 믿고 마셔도 돼요"

송 MD는 2021년 4월 소믈리에 자격증(WSET)을 취득하고 매달 '이달의 와인'을 기획하고 있다. 자격증을 딴 해 연말에는 편의점업계에서 최초로 샴페인 행사를 기획해 1만병의 준비수량을 전량 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달의와인'에 힘입어 편의점 업계에서 와인 매출을 기준으로 1위 판매량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송 MD가 주류 MD를 맡은 후 세븐일레븐 와인 매출은 136.1% 신장했다.

송 MD는 프랑스산 와인인 파이퍼하이직, 도츠, 페리에주에 그랑브뤼 등을 선보였다. 와인 커뮤니티 등에서 편의점에 어느 와인이 입고되는지 정보가 공유될 정도로 송 MD가 고른 와인들은 모두 팔렸다.

세븐일레븐의 PB 와인인 '앙리마티스 와인' ./송승배 MD 제공

◇디자인부터 직접 맡은 PB 와인, 출시 후 와인 매출 10위권 밖 넘어간 적 없어

송 MD가 특히나 애착을 가진 와인은 1만원대 자체 제작(PB) 와인 '앙리 마티스' 와인이다. 출시(2021년 9월) 이후 꾸준히 주류 매출 A군(상위 10위 내)에 속한 와인으로, 세븐일레븐에서만 단독 판매한다.

그가 우연히 갔던 앙리 마티스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병 라벨 제작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밝혔다. 앙리 마티스 와인은 투명색 병에 여성의 얼굴과 남성의 얼굴이 심플하게 선으로 그려져 디자인적 요소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

그는 "와인의 빈 병도 인테리어적 요소로 활용하면서 한식을 포함한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무겁지 않은 와인을 요청했다"며 "최근 레스토랑 등에서 앙리 마티스 와인병을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의도가 딱 맞아떨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와인 초보자에게 해석하기 어려운 정보 전달을 하기보다는 눈에 띄게 하면서 접근성을 높이고, 세련된 라벨을 통해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 것이다. 앙리 마티스 와인은 여성의 얼굴이 그려진 화이트 와인 '나디아'와 남성의 얼굴이 그려진 레드 와인 '카티아'로 구분된다.

송 MD는 "레드와인이 보통 화이트와인보다 인기가 많은데 이상하게 앙리마티스 와인은 '나디아'가 인기가 많다"면서 "두 와인의 공통점은 마실 때 바디감이 세지도 않고 어느 음식이랑 먹어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나디아(화이트 와인)의 경우 소비뇽 블랑을 50% 비율로 넣어 상큼하고 프루티한 향이 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카티아(레드 와인)의 경우 블랙베리·모카·초콜릿 등 검붉은 과일 향을 넣어 피노누아를 닮은 맛으로 블렌딩했다.

그는 "두 와인 모두 치즈나 과자 한 봉지를 안주 삼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면서 제육볶음과 같은 한식과도 조합이 잘 맞는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니콜라스 뿌이아트 벚꽃 에디션'을 든 송 MD. /이신혜 기자

◇주류수입사에 직접 제안하는 역발상, "국내 미수입 와인 들여올 때 좋아"

편의점 주류 MD 중에는 제일 어린 축에 속한다는 그에게 "나이가 어려 어려운 점은 없었냐"고 묻자 "오히려 좋았다"고 답했다.

통상 MD는 주류수입사에서 보내는 제안서를 보고 판매할 와인을 고르지만, 그는 직접 특정 시기에 특정 와인을 받고 싶다고 제안하는 등 다양한 시각에서 주류산업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송 MD는 지난해 9월 프랑스 뽀므리 와이너리에 가서 국내 미수입된 와인을 들고 왔다며 직접 특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 개화기인 3~4월에 맞춰 니콜라스 뿌이아트 벚꽃 에디션을 국내 최초로 3000병 정도 확보했다"며 "아마 이번달부터 이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이달의 와인'으로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이 맛있는 와인으로 꼽은 텍스트북을 포함해 이니스프리, 서브미션 등 나파 와인 3대장을 꼽기도 했다. 이중 텍스트북이 가장 잘 팔렸다고 덧붙였다. 텍스트북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한 와인으로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다만 그에게도 어려운 점은 있었다. 와인이 대부분 수입산이다 보니 4~5개월 전에 미리 발주 주문을 마쳐야 하고 선적, 통관, 준비 과정이 완벽히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4월에 이탈리아산 와인 행사를 하면서 '신퀀타 꼴레지오네'라는 와인이 코로나 때문에 선박 운항이 지연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4월 행사임에도 이 와인만 일주일 늦게 행사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가장 잘 팔렸다고 한다.

송 MD에게 마지막 포부를 묻자 "프랑스 출장에 가서 국내 미수입 와인 등을 가져와 좋은 결과를 낸 만큼 스페인 보히가스, 뉴질랜드 베비치 등 각국 주요 와이너리에 가서 좋은 상품을 많이 들여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