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9년 7월.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해지자 일본 정부가 초강수를 뒀다.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에 한국 소비자들은 반일 감정을 드러내며 유니클로와 아사히 등 일본 상품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불매운동이 거세게 시작된 것이다.

#2. 일본 상황도 비슷했다. 한국인 관광객의 사랑을 받았던 후쿠오카의 한 덮밥 식당은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일본인들의 움직임을 손쉽게 알 수 있는 인터넷 웹상에서도 반한 감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본 땅에 한국인을 들이지 말자”는 극단적인 표어가 등장하는 한편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도 나왔다.

가장 난감한 건 한국과 일본에서 소비자와의 접점이 가장 컸던 소비재 회사들이었다. 닛산자동차는 한국시장 철수를 공식 발표했고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은 텅텅 비어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사랑을 먹고 사는 유통기업 입장에선 한 순간 소비자들이 돌아서는 것이 가장 두렵다”면서 “예상치 못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시작되면 정말 당혹스럽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기업이 위기관리에 실패하거나 국가간 외교갈등이 불거지면 발생하는 불매운동. 이 때 유통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창주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유통기업의 명운이 불매운동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 브랜드와 온라인 유통망을 강화하는 데 힘쓰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또 사전에 사회공헌활동(CSR)을 하는 것으로 불매운동의 기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유통시장과 소비자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한·일 유통업계 전문가로 최근 한·일 불매운동과 관련한 논문 네 편을 국제 학술지(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 등)에 게재했다.

김창주 리츠메이칸대 교수

① 꾸준한 사회공헌활동(CSR)이 불매운동 기세를 잠재운다

김 교수가 한·일간 불매운동에 대해 연구한 결과 한국과 일본 소비자들의 반응이 각자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간 외교 분쟁 등 문제가 있을 때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감정이 소비재 구매량에 영향을 미쳤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상황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애착이 형성된 경우 불매운동을 하는 감정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김 교수는 사회공헌활동의 중요도를 밝혀냈다. 사전에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브랜드와 소비자간 애착도를 높일 경우 불매운동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기업이 받는 타격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공헌활동의 범위는 다소 넓게 적용할 수 있다. 자선과 기부만을 사회공헌활동이라고 보면 안 되고 기업이나 소속 임원의 발언이나 행동도 포함될 수 있다.

사회공헌활동은 하고 있지만 하도급에 대한 갑질을 한다거나, 소속 임원의 개인적 일탈로 분란을 만들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19년 8월 유니클로의 경우 재무 담당 임원이 “한국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불매운동을 더 강하게 만든 바 있다.

② 온라인 채널이 잘 구비돼 있으면 불매운동 타격 줄일 수 있어

불매운동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브랜드 파워가 강한 유통기업의 경우 타격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온라인 유통채널에서 쇼핑을 할 경우 불매운동이 유통기업에게 주는 타격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롯데쇼핑(023530)이 운영하는 유니클로가 지난 한·일 불매운동 당시 보여준 전략이기도 하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실적을 보여주는 2020 회계연도 유니클로의 영업손실은 884억원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불매운동은 정점에 치닫을 때였다.

하지만 2022 회계연도(2021년 9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영업이익은 1148억원을 기록, 흑자로 돌아섰다. 유니클로가 수익이 나지 않는 오프라인 매장을 2019년 190개에서 126개까지 줄이고, 소비자 접점도 감소했는 데 나온 결과다.

당시 유니클로 관계자는 “온라인 쇼핑을 강화하면서 나온 결과”라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불매운동이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부담이 큰 데 반해 온라인 쇼핑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실제 논문에서도 이런 관계가 입증됐다”면서 “기업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의 한정 판매에 나서고 다른 회사의 인기 브랜드와 공동 브랜딩하는 것(콜라보래이션)은 대상 고객을 온라인 판매 채널로 끌어들여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 전반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③ 강한 브랜드가 불매운동의 편차 가른다

브랜드 파워가 강할 수록 불매운동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논문을 통해 실증됐다. 대체 불가한 브랜드를 구축하라는 뜻이다.

한·일 불매운동이 유니클로엔 큰 상처를 입혔지만 모든 일본 기업이 모두 불매운동에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회사 닌텐도나 의류회사 꼼데가르송, 소니·니콘과 같은 일본 카메라 회사는 불매운동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지속성장했다.

백화점 업계 한 관계자는 “시세이도 같은 화장품 브랜드나 꼼데가르송과 이세이미야케 등도 한참 불매운동이 일어나던 때에는 10~20%씩 매출이 줄기도 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진 않고 금세 회복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소비자 불매운동에 직면한 기업들은 차별화되고 대체 불가능한 제품으로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