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인서리공원 전시장에서 김경화 작가의 작품 앞에 선 박소연 아트앤에디션 대표. /이신혜 기자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인서리공원. 연면적 1584㎡(약 480평) 규모의 부지에는 한옥 카페와 문화창고, 한옥 독채 등이 골목마다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광양시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된 광양읍 도시재생 한옥 거점 공간이다.

공원 초입 전시관에는 김경화 작가의 ‘온기를 전하는 풍경’ 전시전이 진행 중이었다. 삭막했던 창고를 봄 내음 물씬 나는 꽃 그림들의 향연으로 바꾼 주인공은 박소연 아트앤에디션 대표다. 전시 뿐만 아니라 마을 기획 사업 전반을 맡아 작년말 광양에 새로 터를 잡았다.

박 대표는 바른손카드의 창업자인 박영춘 회장의 딸이다. 현재 원화부터 프린팅 작품까지 유명·신진작가의 원화부터 프린팅작품까지 판매하는 그림닷컴, 바른손카드의 인쇄 특허 기술을 바탕으로 판화 공방을 운영하며 작가들의 한정판 판화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앤에디션을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를 합친 매출은 약 50억원(2022년 기준). 카드 시장 전성기 바른손의 매출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박서보 작가의 한정판 판화를 전시한 모습. /아트앤에디션 제공

외환위기(IMF) 이후 사장(死藏)된 카드 시장에서 아버지의 ‘바른손 카드’ 철학을 이어 ‘예술의 대중화’로 연결시킨 박소연 대표를 지난 15일 전남 광양 인서리 마을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 대표와 일문일답.

바른손의 카드 사업에서 디지털 판화 사업까지 확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바른손카드는 금박·형박 등 고급 인쇄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카드였다. 잘될 때는 연 50억원 매출을 낼 정도로 잘 됐지만, 지금은 카드 시장이 너무 축소됐다. 카드 사업 외 신사업을 고민하다가 바른손카드의 기술을 반영할 수 있는 사업 중에 디지털 판화를 생각하게 됐다. 카드는 단가가 작지만 팔리는 수량이 많은 게 매출 요인이었는데, 사업을 시작할 때 많은 아파트를 떠올리고 인테리어 요소로 판화 작품 하나씩만 걸어도 성공하리라 판단했다.

카드를 만드는 비결을 가지고 원화와 거의 유사한 정도의 프린트 작품도 만들어내고, 작가들의 인사이트가 있는 친필 사인과 에디션 번호를 부여함으로써 디지털 판화 역시 ‘한정판’으로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업을 확장했다.”

아트앤에디션이라는 명칭의 의미도 궁금하다

“아트앤에디션은 단어 그대로 예술 작품을 넘버링(번호 부여)해서 인쇄형식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다. 전부 다 넘버링이 있는 한정판 작품들이다. 해외 같은 경우 디자이너들이 작가로 많이 승격되고 한정판 빈티지 가구 같은 경우 수천만원대로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 않나. 그것처럼 우리나라의 능력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의 가치도 인정하면서 소비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예술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원화가 아닌 판화 작품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

“15년 전에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내 생각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음악’으로 비유했다. 예전에는 음악을 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해서 들었다면, 세상이 변화하면서 매체가 달라지고 CD, MP3 플레이어, 플랫폼 스트리밍 등으로 변화하지 않았나.

단순히 차익 실현을 위한 투자 수단뿐 아니라 집에서 가끔 바라보며 미술을 감상하는 접근성 좋은 그림에 대한 수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화하며 미술도 음악처럼 쉽게 다가가고 쉽게 구매해 감상하는 시대가 올 거라 생각했다.“

박소연 대표가 기획한 예술문화 공간 '갑빠오의 집' 갑빠오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신혜 기자

여전히 그림은 어렵고 비싸다는 생각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림닷컴에서 판매하는 프린트 작품의 경우 10만원 전후다. 그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이 끌리는 작품이 있다면 싼 가격의 작품부터 고르길 추천한다. 싸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그게 좋은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취향이 빈티지 취향이라 집이나 방을 그렇게 꾸몄는데, 그림을 잘 아는 친구가 모던 취향을 가지고 있어 추천한 작품을 사게 되면 자신의 공간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투자수단이 아니라면 취향으로 보고, 음악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분야가 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고 접근하기 시작하면 좋겠다.“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어떤 기준을 갖고 고르는 게 좋은가

“취향을 넘어서 그림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림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면 어떤 작가에게 투자하는 게 투자 가치가 높은지는 말해줄 수 있다. 쉽게 말해 다작을 하고 오래 사는 작가가 좋다.

주식과 비교하면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안전하다고 보지 않나. 오래 그릴 작가, 많이 그릴 작가를 선택하는 게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박서보 작가님도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는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유명하시지 않은가.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일찍 돌아가시면 조명받기가 쉽지 않고 리스크가 크다. 능력이 출중한데, 쉽게 잊혀지고 인정을 못 받는 작가가 많다.“

최근에 판매된 작품은

“며칠 전 그림닷컴에서 송지호 작가의 700만원짜리 토끼 그림이 팔렸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을 느꼈다. 작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700만원짜리를 사지는 않을 것 아닌가.

젊은 작가의 작품은 저렴하게는 20만~30만원에도 팔린다. 원화뿐만 아니라 아트앤에디션에서는 박서보 작가님의 판화 작품도 많이 팔렸다. 박 작가님의 판화 작품은 비싸게는 2000만~3000만원대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에서 아트앤에디션 전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현대백화점 목동점과 무역센터점에서 전시했는데 모두 반응이 좋았다. 올해에도 현대백화점 5개 점포에서 전시 제안이 왔는데 우리는 온라인 중심이라 1~2가지 전시만 진행하게 될 것 같다. 지난해 현대백화점 목동점의 수익은 기부했다. 단순히 그림 판매뿐만 아니라 우리의 브랜드를 알리고, 판화 공방이 있는 정통 판화 판매 회사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광양 인서리공원의 다경당. 관광객을 위한 한옥숙소로 운영 중이다. /이신혜 기자

전라도 광양에 도시재생 한옥 거점 공간을 조성한 이유는

“일이라는 게 연초에 사업계획을 세우고 실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은 즉흥적인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번 광양 한옥 거점 공간 사업도 그렇다. 육십 평생 광양을 처음 와봤는데 이 공간이 너무 좋고, 지역 예술가와의 교류를 통한 연대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을 봤다.

7개의 전시 공간을 카페, 라이브러리 카페, 제빵실로 개조해 손님들을 맞는다. 차고를 개조해 지역에 있는 젊은 공예가들에게 빌려주고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다. 이 밖에도 큰 창고에 불과했던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3월 매화 축제 기간에 맞춰 새로운 전시도 계획 중에 있다.

현재 우리는 3개의 한옥 공간을 스테이(숙소)로 운영하면서 광양의 멋진 한옥을 알리고 있다. 특히 3곳의 한옥 중 ‘다경당’은 100년이 넘은 고(古)택으로 최근 돌잔치가 열릴 정도로 큰 규모의 저택이다

관광객에게 개방하는 갑빠오의 집은 서울에 있던 작가들이 놀랄 정도로 멋지게 꾸며놨다. 단순히 수익 창출만을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쉽게 예술에 접근하고 지역을 알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추후 계획이나 목표는

“사업은 어디에서나 1등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림닷컴은 그림 온라인 시장에서 1등인데 아트앤에디션도 1등 할 수 있도록 할 거다. 광양을 조명하면 다른 지역의 재생사업을 하는 것에도 기회가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작가들과 연대해 그들에게 돈을 벌어줄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

올해에는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 채널에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협업도 계획하고 있는 단계다. 작가들이 예술 욕구에 한계를 짓지 않도록 디자이너 프로젝트, 한지 활용 프로젝트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