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신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 김혜주 롯데멤버스 대표이사 전무, 이창엽 롯데제과 대표이사 부사장(위 왼쪽부터),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이훈기 롯데지주 ESG 경영혁신실장 사장,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아래 왼쪽부터).

재계 5위 롯데그룹이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안정'보다 '쇄신'을 택했다. 롯데건설로부터 시작된 유동성 위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인사는 예정보다 보름이나 늦어져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롯데그룹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2023년 정기 임원인사'를 확정했다.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은 '인사 폭'이었다. 경쟁사인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이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택한 만큼, 롯데 역시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거란 관측이 우세했다.

아울러 지난해 신동빈 회장이 파격 인사를 단행한 것도 이번 인사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또 한번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그룹 전반에 퍼진 위기감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신상필벌과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신사업군을 중심으로 외부인사 영입도 이뤄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엔 우려를 불식시키고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신동빈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면서 "실력을 입증한 사람, 큰 그림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중심으로 인사가 짜여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 35년 정통 롯데맨 송용덕·김현수 퇴장…위기 타개 위한 '인적 쇄신'

롯데그룹에서 인사와 노무, 경영개선 업무 등을 담당해 온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은 이번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입사한 지 35년만이다. 아울러 롯데렌탈의 김현수 사장도 회사를 그만둔다. 김 대표는 롯데물산 대표를 거쳐 렌탈 대표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 부회장과 김 사장의 빈 자리는 아직 미정이다. 다만 롯데렌탈 대표직은 이승연 상무가 업무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두 분의 빈 자리를 채울 인물을 물색하고 있다"고 했다.

안세진 호텔롯데 총괄대표는 롯데그룹의 씽크탱크라고 불리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그룹의 장·단기 계획과 경영 효율화, 승계를 모두 아울러 방향을 제시할 조직이 빈약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롯데 관계자는 "안세진 대표가 신동빈 회장의 '귀' 역할을 도맡았다는 평이 돌 정도로 세간의 경영 움직임을 직보고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최근 롯데미래전략연구소도 과거와는 달리 산업전략 분야 등에서 컨설턴트 역량을 출중하게 갖춘 인재 풀을 확대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했다.

안세진 대표가 비운 자리에는 이완신 롯데홈쇼핑 대표가 이동했다. 이 대표의 새 보직은 롯데그룹 호텔군 총괄대표로 백화점 출신이 호텔롯데 수장에 오르는 첫 사례다.

◇ 지주 경영개선실장에 고수찬...신상필벌 원칙 재확인

박현철 경영개선실장이 롯데건설 대표로 이동하며 공석이 된 지주 경영개선실장에는 고수찬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이 임명됐다. 그룹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가 맡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주 커뮤니케이션실 내부 승진도 검토했지만 신유열 상무의 한국 활동 확대와 맞물려 지주 커뮤니케이션실 강화를 위해 이갑 부사장을 임명하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동으로 공석이 된 롯데면세점 대표 자리엔 김주남 롯데면세점 한국사업본부장이 선임됐다. 기존에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을 이끌었던 이강훈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면서 롯데자이언츠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석환 롯데자이언츠 대표는 고문으로 물러난다.

실적 부진 계열사에 대해선 신상필벌 원칙에 따라 인사가 이뤄졌다. 남창희 롯데슈퍼 대표가 롯데하이마트 대표로 이동했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72억원의 영업손실(3분기 누적 기준)을 기록 중이다. 기존 황영근 롯데 하이마트 대표는 회사를 떠난다.

남창희 대표의 이동과 롯데마트의 롯데슈퍼 조직 흡수가 겹치면서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가 마트와 슈퍼를 모두 맡아 운영한다.

신상필벌 원칙 속에서도 나영호 롯데온 대표는 자리를 지켰다. 롯데온은 올 들어 37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롯데쇼핑 주요 사업부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대안이 크게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감안됐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롯데 문화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나 대표을 다시 신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 또 깨진 순혈주의…LG생건·신한銀 출신 외부인사 영입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외부인사 영입이 이뤄졌다. 이창엽 전 LG생활건강 사업본부장과 김혜주 현 신한은행 상무가 롯데제과와 롯데멤버스의 대표이사로 각각 내정됐다. 롯데그룹 모기업인 롯데제과의 대표이사 자리에 외부인사가 온 것은 창사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진성 롯데제과 대표는 고문으로 물러났다.

신임 롯데제과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창엽 부사장은 한국과 북미 회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다. 1993년 한국P&G를 시작으로 Hershey(허쉬) 한국 법인장, 한국코카콜라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에게는 롯데제과의 해외 사업확장이 과제로 맡겨졌다.

롯데멤버스의 첫 외부 여성 대표로 내정된 김혜주 전무는 금융, 제조, 통신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풍부한 데이터 분석 경험을 보유한 빅데이터 전문가다. 삼성전자, KT를 거쳐 현재 신한금융지주 빅데이터부문장·마이데이터유닛장 상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