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최근 네이버가 운영하는 오픈마켓 ‘스마트 스토어’에서 명품 가방을 구매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100% 정품’을 장담하는 구매대행 판매자로부터 240만 원에 구매한 가방은 대표 무늬가 정품과 크게 다르고 냄새도 심했다. 개별 확인 끝에 해외 현지 구매처 영수증이 조작된 사실을 알게 됐다.
발뺌하던 판매자는 증거를 내밀자 환불을 약속했으나 즉답을 회피해 이 과정에만 수 일이 걸렸다. A씨는 가품 판매자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시간적·정신적 피해도 보상 받기 원했지만, 정작 운영사이자 모기업인 네이버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했다. 결국 100% 자비(自費)로 법적 분쟁을 진행키로 했다.
#대학생 B씨도 스마트 스토어에서 산 고급 향수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정가보다 7만원 가량이 저렴해 의심하면서도 ‘네이버가 운영하는 국내 최대 오픈마켓’이라는 점을 믿고 결제했다. 도착한 상품은 노즐이 심하게 휘어있고, 잔향도 없는 전형적인 가품이었다.
이 상품은 얼마 후 ‘판매 금지’ 상태로 바뀌었으나, 판매자는 같은 상점에 동일한 제품을 가격만 바꿔 또다시 올렸다. B씨가 업체로부터 환불을 받은 뒤 해당 페이지에 가품 피해를 알리는 후기를 올리자 “구매 내역이 없으니 실제 구매한 업체에 문의하라”는 답글이 달렸다. 몇 일 뒤엔 이마저 돌연 삭제됐다.
◇타사 가품 공개 저격...스마트 스토어 가품 문제엔 “판매자 책임”
최근 ‘가품 논란’이 명품 플랫폼 시장 최대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네이버가 운영하는 국내 최대 오픈마켓 스마트 스토어에서 가품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자인 네이버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분쟁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거래 당사자 간 알선을 대가로 수수료를 취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비자에 고시만 하면 된다.
네이버는 오픈마켓 외에도 계열사인 ‘크림’(Kream)을 통해 한정판 명품 의류·신발·시계 등의 개인 간 재판매(리셀·Resell)를 중개하고 있다. 중고 명품거래 커뮤니티 ‘시크먼트’ 기반의 ‘시크’(CHIC)도 운영한다. 시크는 크림의 자회사 팹이 지난 6월 출시한 개인 간 명품 거래 지원 플랫폼이다.
크림과 시크는 공식 홈페이지에 ‘100% 정품 유통’과 ‘정확한 검수 능력’을 내세워 고객을 유치하는 한편, 경쟁사에 대한 공세도 적극 펼치고 있다.
올 초에는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서 수입·판매한 티셔츠를 가품이라고 공개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반면 자사 상품은 전문 인력을 갖춘 검수 센터를 필수로 거친다며 정품이 아닌 경우 3배를 보상한다는 규정을 뒀다.
문제는 정작 모기업인 네이버가 직접 운영하는 스마트 스토어의 가품 문제에 대해선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자가 가품을 팔다가 운영을 중단한 경우, 고객은 교환 및 환불 등을 문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발생하는 가품 판매의 모든 책임은 100% 판매자에 있다는 게 네이버의 기본 입장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분쟁조정센터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구매자 본인이 브랜드사 또는 특허청에 정품 검수를 의뢰하고 판단 자료를 받은 뒤 네이버 측에 제출해야 한다. 해당 자료가 없으면 사실상 조치가 불가능하다. 구조상 스마트 스토어 차원에서 판매자 입점 시 정품 여부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명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스마트 스토어 관련 피해 사례가 잇따르는 이유다. 구매 후 가품 사실을 확인했지만, 해당 사이트가 폐쇄돼 환불을 못 받았다는 후기도 적지 않다.
◇'통신판매중개자’ 지위로 책임 회피, 가품 판매 1위 오명
지난해 말 기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입점 업체는 49여만개다. 한국 대표 플랫폼 기업이 운영하는 곳인 만큼 고객은 물론 판매자 역시 국내 최대 규모다. 동시에 가품 유통 업계 1위라는 불명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올해 7월 특허청 자료를 근거로 발표한 ‘오픈마켓 가품 유통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의 가품 적발 건수는 16만6544건으로 조사 대상 19개 업체 중 가장 많았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지식 검색 서비스에도 일일 수십 건의 가품 의심 및 신고 게시물이 올라온다. 최근에는 나이키 한정판 스니커즈가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10만원 대 매물로 버젓이 올라와 빈축을 샀다. 공식 발매가만 270만 원 수준인 해당 상품의 리셀 시세는 900만 원에 달한다.
최근 네이버는 가품 판매 비율이 높은 패션의류와 잡화, 화장품 등에 대해 중국 및 홍콩 거주 사업자의 입점을 차단하는 등 대처에 나서기도 했다. 또 ‘미스터리 쇼퍼’ 활동으로 가품 판매를 방지하거나 사기 업체에 대해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강화하는 등 조치를 취한다는 게 네이버 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가품 유통과 소비자 피해에 대해선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한 명품 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스마트 스토어가 폐점하면 고객은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기 어렵다”며 “다른 플랫폼이나 업체들은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국내 최대 오픈마켓인 스마트 스토어는 가품 차단 노력이나 책임 있는 자세도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중개 플랫폼에 대한 법적 의무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 피해가 급증해 규정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서다. 지난해에만 5건의 관련 개정안(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접수됐지만, 아직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법안들은 통신판매중개업 플랫폼의 개념과 규정을 한층 세분화하고, 분쟁 발생시 이들이 공적 조정 기구에 관련 데이터를 적극 제공하거나 일부 연대 책임도 지우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업계 반발은 물론, 규제의 정도를 두고 여야 간 논의도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많이 생겨나고 판매중개업 부문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며 “문제는 정작 이들을 정당하게 규제할 전자상거래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 의원은 오픈마켓 사업자가 중개업자라는 사실만 고지하면 사실상 가품 피해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할 수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정부도 법적 필요성을 느끼고 안을 만들고 있다”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가품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인지하고, 입점 제한 및 감정 업체와 협업 확대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스마트 스토어는 판매 중개를 하기 때문에 가품 문제는 상표권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부분인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