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도서기업 교보문고가 경영권 매각을 추진중인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도서유통기업에서 예술문화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왓챠 같은 플랫폼 기업과 시너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내부 검토 끝에 결국 안하기로 결론 냈지만 본업인 도서문화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왓챠 투자를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가 출판업계에선 화제가 됐다.

그동안 교보문고가 투자나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선 적이 없는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현금 여력도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창립 42주년을 맞은 교보문고가 새로운 공간 기획과 디지털 전환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모회사인 교보생명이 작년 유상증자로 1500억원을 수혈해주며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교보문고의 매출은 2019년 6100억원에서 2020년 6942억원, 작년 7909억원으로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019년 56억원, 2020년 6억원에 이어 작년 1750만원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예스24(053280)는 티켓과 전자책 사업을 키우며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이 회사는 작년 매출 6537억원으로 전년 대비 6.7% 늘었고 영업이익은 24% 늘어난 1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년 간 영업이익 격차가 확 벌어진데다 매출도 빠르게 추격 당하고 있다.

교보문고 측은 “성장을 위한 물류, 디지털 투자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기존 경기도 파주 부곡리 제1물류센터를 증축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시스템 투자에 자금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보는 인구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전자책 시장이 성장하면서 리디, 밀리의서재 등 교보문고와는 다른 DNA를 가진 신흥 플랫폼 기업들이 경쟁사로 떠오르는 것도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 교보생명 디지털 전문가 안병현 대표, 데이터 활용 신규 비즈니스 추진

교보문고는 지난해 취임한 안병현 대표 지휘 하에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안 대표는 1996년 교보생명에 입사해 디지털 사업 부문에서 주로 근무해왔으며 DT(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 추진실장을 지냈다.

안 대표는 작년 6월 2025 비전선포식을 열고 “전사적인 디지털 전환을 통해 2025년까지 도서유통사업을 넘어 지식 및 예술문화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이후 기존 DT추진실에 데이터 분석, 활용을 담당하는 데이터인텔리전스팀을 신설하고 교보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환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현재 교보그룹의 DT 전략은 올해 입사한 신창재 회장의 장남 신중하 차장이 관여하고 있다. 신 차장은 2015년 교보생명 자회사 KCA손해사정에 입사한 뒤 작년 IT 자회사 교보정보통신과 손자회사 디플래닉스에서 디지털 사업 관련 업무를 맡았다.

교보문고의 디지털 전환은 교보생명이 추진중인 신사업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의 성공 여부와 연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보생명은 작년 7월 생보업계 최초로 금융위원에서 마이데이터 사업 본허가를 취득했다.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전경. /교보생명 제공

마이데이터는 은행, 보험, 카드사 등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신용정보를 한 곳에 모아 스스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허가 받은 업체는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상품 추천, 투자자문, 대출 중개 등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비(非)금융기관, 특히 유통업체가 보유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으면 고객 이해도가 높아지고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커머스 중 11번가도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중이다.

◇ 메타버스 속 교보문고 구축...스타벅스와 첫 협업 매장 열어

교보문고는 지난 1980년 설립된 후 온라인 누적 회원 수 2007만명, 연간 페이지뷰 12억건에 달하는 국내 도서 판매 1위 회사다. 연령별 많이 읽는 책, 베스트셀러 등 수십년 간 확보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활용해 카카오뱅크, 나이스평가정보와 신규 데이터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교보문고는 플랫폼과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소설, 에세이, 시 등 문학 장르 창작 지원 플랫폼 창작의날씨를 개설했다. 카카오페이지, 리디, 네이버시리즈를 필두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웹소설 시장에 출사표를 낸 것이다.

작년 말에는 컴투스(078340)가 개발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컴투버스에 교보문고 쇼핑몰을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곳에서 실제 오프라인 지점과 같은 도서, 문구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새로운 공간 기획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달 초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새단장해 문열면서 콘텐츠 복합문화공간을 개장했다. 기존 학습코너와 푸드코트에 예술 콘텐츠를 전시하고 작가를 소개,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로 스타벅스와의 협업 매장도 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입점한 스타벅스 매장에 월별로 주제를 정해 큐레이팅한 도서를 전시하고 유명 작가의 작업 공간을 재현한 작가의 책상을 마련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어선 서점 공간과 협업한 형태의 스타벅스 매장/ 교보문고 제공

GS건설과 협업해 충북 음성군에 분양 예정인 음성자이 센트럴시티에 작은 도서관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커뮤니티센터 내에 조성되는 작은도서관에는 입주민의 취향과 최신 트렌드에 맞게 교보문고가 엄선한 책이 채워지고 교보문고를 연상케 하는 향기와 조명이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