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포항과 경주, 울산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힌남노는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초강력 태풍’이 된 기후변화의 산물이다.

태풍은 수증기가 응결(수증기가 물이 되는 현상)할 때 나오는 잠열을 에너지원으로 하기 때문에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인 곳에서 발생하며 온도가 올라갈수록 힘이 세진다.

힌남노가 지난달 28일 태풍으로 발달한 일본 남쪽 해상까지 북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현재 29~30도로 높고 우리나라 남해상 해수면 온도는 26~28도로 평년 온도를 1도 정도 웃돈다.

강력해진 태풍과 이례적인 폭우, 대규모 산불을 자주 목격하며 자란 지금의 10~30대는 그 어느때보다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이들은 혼자 걱정하는 것을 넘어 기업에 친환경 활동의 진정성을 따져 묻고 개선을 요구한다.

지난해 이니스프리가 플라스틱병에 종이 포장지를 씌워 ‘종이병’이라고 표기했다가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스타벅스가 친환경 기업을 자처하면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기획상품(MD)을 자주 출시하는 것도 질타를 받았다.

지난달 한국딜로이트그룹에 합류한 영국 ESG 전문가 니콜라 위어 수석위원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전 세대는 최근의 극심한 홍수나 전세계적인 화재, 산불 위험을 자주 겪지 않았지만 요즘 세대는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며 “소셜미디어 발전에 따라 최소한 자연재해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ESG 전문가 니콜라 위어 수석위원이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위어 연구위원은 “기후위기, ESG 경영에 힘을 쓰는 기업을 선호하고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 환경주의) 기업 제품을 불매하게 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밀레니얼(1980년대 초반~1990년대 초반 출생자)과 Z세대가 주도할 소비자 지출은 2030년까지 32조달러(4경40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이 환경, 인권문제가 있는 기업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변할 수 밖에 없고 글로벌 가치사슬 전반에 ESG가 스며들 것이라고 위어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그는 한국 역시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으며, 세계적 콘텐츠로 발돋움한 한류를 활용하면 ESG를 전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어 연구위원은 “BTS 뿐 아니라 글로벌 영향력이 큰 한류스타가 많은데 젊은층에 ESG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위어 연구위원은 영국 더럼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20년 이상 세계 각국 기업의 운영 혁신을 돕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온 전문가다. 다음은 위어 연구위원과 일문일답.

-딜로이트에서 ESG와 관련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아시아태평양 지속가능성·기후 대내 리더를 맡고 있다. 주요 과제는 넷제로(net zero·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다. 2025년까지는 협력사의 탄소 배출량을 67%까지 저감하고 2030년까지 여행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딜로이트 스스로도 2030년까지 모든 사업장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수급하는 것이 목표다.”

-영국과 유럽에서 ESG 관련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면.

“청정에너지 도입이 최대 화두다. 작년 10~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계 각국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선진국은 2025년까지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2배로 확대하기로 하는 ‘글래스고 기후조약(Glasgow Climate Pact)’이 채택됐다.”

-주요국 정부는 기업의 ESG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했나.

“작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기업에 ESG 관련 목표와 정책을 세부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발표했다.

앞서 지속가능성 관련 비(非)재무적 보고 지침(NFRD·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을 도입했지만 500명 이상의 상장사나 은행, 보험사에만 적용되고 보고 내용이 더욱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올해 10월부터 도입되는 CSRD는 근로자 수 250명 이상이거나 역내 순매출이 2억5000만유로(3500억원) 이상인 기업이 대상이다. 기업에 장기적 ESG 목표 및 정책과 기업이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했다.

한국도 금융위원회가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인 코스피시장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 하고 2030년부터는 지속가능리포트를 발간하도록 할 방침이다.”

-소비자 인식 변화도 기업의 ESG 경영에 주요 동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심에 밀레니얼과 Z세대가 있다. 아시아태평양의 밀레니얼과 Z세대가 주도할 소비자 지출은 2030년까지 약 32조달러(4경40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미래 소비를 주도할 세대가 환경, 인권문제 등의 문제가 있는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글로벌 가치사슬 전반에 ESG가 스며들도록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Z세대는 왜 기후변화에 민감할까.

“실제로 그들이 직접적인 기후변화 영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 그리고 그 이전의 세대는 기후위기에 대해 특별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전 세대는 최근의 극심한 홍수, 혹은 전 세계적인 화재, 산불 위험을 많이 겪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바로 자신 주변에서 홍수 피해, 화재, 산불 등 자연재해를 겪는 일이 많아졌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전 세계의 자연재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위기, ESG 경영에 힘을 쓰는 기업을 선호하고 그린워싱 기업의 제품은 불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기업들이 ESG 정책을 추진할 때 신경써야 할 리스크 요인이 있다면.

“그린워싱에 대한 리스크가 가장 크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소비자들을 비롯한 그 누구나 기업의 친환경 정책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감시할 수 있다.

이탈리아 석유회사 에니(Eni)는 광고에서 팜유 기반 디젤이 ‘친환경(green)’이라 주장한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지속가능성 인증을 보유 중인 이케아도 우크라이나의 불법 벌목과 연루됐다는 시민단체 주장이 있다.

이렇듯 그린워싱을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구매를 원하지 않게 되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ESG 정책을 수립하고 지켜 나갈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질적인 ESG 정책을 추진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기업으로선 고민이 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이해하지만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단기 실적을 신경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어질수록 중장기 성장 동력을 잃고 지속가능 경영은 더욱 어려워진다

ESG 경영 우수사례로 꼽히는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Unilever)의 폴 폴먼 전임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취임 후 ‘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생활계획 (the 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이라는 10년 비전을 발표했다.

환경오염을 최소화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회사 수익은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ESG 성과가 중장기적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단기성과에 치중하지 않도록 분기별 실적 보고서와 수익 공시를 폐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장의 뭇매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10년 재임기간 동안 매출과 이익이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유니레버의 주가는 200% 이상 올랐다.”

-한국에서 ESG 경영은 이제 막 시작단계인데 조언을 한다면.

“개인적으로 한류에 관심이 많다. BTS가 평균 5조5600억원 규모의 경제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BTS 뿐 아니라 전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한류스타가 많다. 이들이 입는 옷 브랜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 그들의 연설 모두 파급력이 굉장하다. 젊은층에 영향력이 높은 한류를 활용해 한국이 ESG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한국딜로이트그룹에 지난달 왔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한국은 탄소배출 저감 등 ESG와 관련해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다. 기후위기 대응과 전방위적인 ESG 환경 변화에 의미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싶다. 한국 딜로이트그룹 ESG센터의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기관과 사회 전반에 걸친 ESG 경영을 지원하고, ESG 환경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업들이 한국딜로이트그룹과 협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나.

“회계감사, 세무자문, 재무자문, 리스크자문, 컨설팅까지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협력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딜로이트는 글로벌 기업이므로 전세계 150여개국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딜로이트 글로벌 차원에서 주요 멤버들이 TCFD(국제결제은행 금융안정위원회가 만든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 GRI(미국 환경단체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등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관련 규제나 권고사항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문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