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채용 플랫폼은 구직자에게 제한된 정보를 준다. 당연히 알아야 할 기본적인 근무조건도 100% 속속들이 알기 어렵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정보, 조직문화나 업무 분위기, 구체적인 복지 수준 등은 깜깜이다. 일단 들어왔다가 마음에 안들면 나가라는 식의 채용 과정은 기업에게도, 구직자에게도 마이너스다.
2013년 설립된 잡플래닛은 이런 구직시장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재직자가 직접 기업을 리뷰하고 별점을 매기도록 했다. 가령 쿠팡을 검색하면 ‘미래지향적이고 젊은 마인드의 회사(별점 5점)’라는 리뷰와 ‘매일 매일 동료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놓여있음(별점 1점)’이란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이렇게 쌓인 기업 리뷰가 약 530만개. 잡플래닛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구직자 맞춤형 채용 서비스 ‘프라이빗 채용관’을 지난 3월 선보였다. 사람인, 잡코리아, 인쿠르트 등이 주축인 HR 플랫폼 시장에 본격 도전장을 낸 것. 평점 3.0 이상 우수 기업 중에서 개인의 이력이나 취향에 맞는 기업 공고를 모아 보여준다.
약 5개월 간 1000개의 채용공고를 통해 2만3000여명이 회사에 지원했다. 월별 이용자 수는 3월 30만명이 늘었고 증가 폭이 5월 50만명, 7월 70만명으로 확대되고 있다. 채용 첫 단계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면접 후기나 연봉 협상 가이드를 제시하는 등 채용 과정 전반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황희승 브레인커머스(잡플래닛 운영사) 대표는 평점 3.0 이상인 좋은 회사의 특징으로 ‘우수한 동료’와 ‘평가·보상 시스템’을 꼽았다.
그는 “동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있느냐, 본인과 시너지를 내면서 함께 상승할 수 있는 조직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가·보상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은 회사 직원들은 자신이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봉이 결정되다 보니 ‘회사 대표랑 친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며 “리뷰에서 사내 정치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회사가 별점이 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황 대표는 “어떤 사람이 맛집에 갔다가 서비스를 잘 못 받아 앙심을 품고 별점 테러를 할 수도 있다. 식당은 한번 가는 것이지만 직장은 그보다 긴 시간을 보낸 곳”이라며 “개인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명확하게 쓴다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직자나 퇴사자가 기업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보니 불편함을 표하는 회사 대표나 임원들도 있다고 한다.
황 대표는 “우리는 유저(이용자)가 더 중요하다”며 “결국 회사에 대한 평가는 대표이사의 책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고민을 하고 고치는 회사들은 평점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 “복지 혜택 상세히 쓰는 회사 지원율 높아”
잡플래닛은 올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매스(대중) 마케팅을 준비중이다.
잡플래닛이 만든 세계관 속 주인공 JP요원을 등장시킨 광고를 만들고 있다. 우주인 복장을 한 JP요원은 지구 옆 잡플래닛이란 행성에 살면서 지구인들의 이직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3월 선보인 프라이빗 채용관을 시작으로 채용 중개 플랫폼으로서의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달 기업 비교 서비스도 시작한다.
황 대표는 “잡플래닛은 타 플랫폼과 달리 ‘기업 리뷰’라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며 “구직자가 원하는 직군, 직무를 단순 추천하는 것을 넘어 구직자가 전에 몸담았던 회사를 기준으로 연봉이 더 높거나 워라벨이 좋은, 궁합이 맞는 회사를 찾아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잡플래닛의 수익 40%가 기업에서 나오는 만큼 황 대표는 수많은 기업 인사 담당자와도 소통한다. 요즘 인사 담당자의 고민은 어떻게 회사에 맞는 직원을 잘 뽑아 오래 다니게 할 것인가, 공백이 생기면 어떻게 빨리 채울 건가다.
그는 “요즘 구직자들은 복지를 비롯한 혜택을 상세히 쓰는 회사에 대한 지원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 “이르면 내년 증시 상장...해외 HR 회사 인수할 것”
잡플래닛은 지난 3월 미래에셋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해 이르면 내년, 혹은 내후년 국내 증시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공모자금을 이용해 해외 채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다. 다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최적의 시기에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상장하기로 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 황 대표는 ‘현금 흐름에 집착하는 CEO(최고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투자자들이 “왜 이렇게 돈을 안 쓰냐”고 얘기할 정도다.
지금 스타트업이 겪고 있는 투자 혹한기를 지난 2016년 한차례 겪으면서 직원 25%를 내보내고 사업모델을 다시 정의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그는 “당시 자금을 빠르게 수혈 받아 전세계에 (서비스를) 퍼뜨리고 매출은 나중에 만들어내는 전략을 썼는데 해외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당시 경영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알뜰하게 경영한 덕분에 작년 회사 설립 이후 최초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황 대표는 “매출이나 외형을 키우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탄탄한 기업을 만들어야 장기적으로 오래 간다”고 강조했다.
요즘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창업자들에게는 “회사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건 창업자 자신”이라며 “주변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주관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맞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