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올해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한다. 적자를 내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된 가운데 기업가치 2조원을 사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컬리의 주권 상장예비심사 결과 요건을 충족해 상장에 적격한 것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컬리는 작년 거래소의 상장 규정 완화에 따라 ‘시가총액 단독요건’을 충족해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하는 첫번째 사례가 될 전망이다.
거래소는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이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의 국내 증시 입성을 유도하기 위해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 완화에 나섰다.
다른 재무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이 가능하게 하고, 기존 ‘시가총액 6000억원·자기자본 2000억원 이상’ 요건도 ‘시총 5000억원·자기자본 1500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이른바 ‘유니콘 특례 상장’에 따라 상장한 첫번째 기업이 차량 공유 업체 쏘카다. 쏘카는 컬리처럼 적자를 내고 있지만 자기자본이 충분해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 및 자기자본 1500억원 이상’ 요건으로 거래소에 심사를 청구했다.
◇ 쏘카, 시총 1兆 달성 실패...컬리, 매출·충성고객 수 많지만 적자도 커
쏘카의 사례에서 보듯 현재 적자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는 좋지 않다. 쏘카는 작년 연결 기준 매출 2890억원, 영업적자 210억원을 냈다.
당초 공모가 3만4000원~4만5000원, 시총은 최대 1조5944억원으로 제시했으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56.07대1에 그치자 공모가를 2만8000원으로, 시총은 9666억원으로 낮췄다. 공모 물량도 455만주에서 364만주로 20% 줄였다.
그럼에도 일반 청약 경쟁률이 14.40대1에 그쳤고 이날 주식시장에서 공모가 대비 6.07% 하락한 2만6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쏘카의 경우 올해 2분기 영업이익 14억원을 기록하고 올해 연간 기준으로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만9000대에 이르는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컬리는 쏘카보다 매출, 거래액(작년 기준 2조원) 규모는 훨씬 크지만 그에 비례해 영업적자도 막대하고 회사 측에서 예상하는 흑자 전환 시점이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늦다. 유형자산은 967억원에 불과하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컬리가 가진 최대 장점은 충성고객 수”라며 “충성고객이 탄탄하게 유지되고 증가할 수록 마케팅 비용이 줄고 변동비가 감소한다”고 말했다. 컬리에 따르면 누적 가입자 수는 작년 말 기준 1000만명을 넘었고 월 15만원 이상 구매하는 컬리 러버스 고객 수는 2016년 이후 매년 2.8배씩 늘었다.
◇ 추정 시가총액 최대 2兆...쿠팡·오카도 등 비교기업 제시 가능성
증권업계에서 추정하는 컬리의 상장 후 기업가치는 최대 2조원이다. 작년 말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에서 4조원으로 인정 받았지만 올해 장외시장에서 거래된 주가 기준 시총은 1조5000억원~2조원에 그친다.
회사 측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공모가, 시가총액을 제시할 전망이다. 통상 흑자 기업은 EBITDA(이자비용·세금·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기업가치(EV)를 토대로 공모가, 시총을 제시하지만 적자 기업은 다르다.
쏘카는 매출 대비 기업가치 배율을 토대로 했다. 쏘카와 비슷한 사업모델을 가졌다고 판단한 우버, 리프트 등 10개 회사의 매출액 대비 기업가치 배율이 7.7배라는 점을 고려해 작년 1분기~올해 1분기 매출 3065억원에 7.7배를 곱한 뒤 순차입금 등을 제하고 48.0%~31.1%를 할인했다.
컬리와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 상장사는 없고 해외에는 쿠팡, 영국 오카도, 일본 오이식스가 있다. 이들의 매출 대비 시총을 평균 내는 방식으로 공모가, 시총을 계산할 전망이다.
미국에 상장한 쿠팡의 작년 매출은 184억달러(24조7000억원), 시가총액은 304억달러(40조8000억원)다.
영국 증시에 상장한 오카도의 2021회계연도 매출은 25억파운드(4조원), 주가는 최근 1년 간 반토막 나 시총은 72억파운드(11조4000억원)다. 일본 증시에 상장한 오이식스의 연 매출은 1135억엔(1조1000억원), 주가는 46% 하락해 시총이 771억엔(7555억원) 이다.
쿠팡의 매출 대비 시총이 1.7배, 오카도는 3배인 반면 오이식스는 시총이 매출에 못 미친다. 매출 대비 시총 배율이 높은 오카도 등 일부 기업만을 비교군으로 제시할 경우 고평가 논란에 휩싸여 오히려 투자 심리에 악재가 될 수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당초 목표 시총 5조~6조원 기준으로 1조원을 공모할 계획이었으나 시총이 기대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조달금액도 2000억~3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 상장 이후가 더 문제... 컬리, 지분율 1% 이상 주주에게도 보호예수 확약
컬리에 2조~4조원 기업가치에 투자한 회사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작년 말 4조원 기업가치에 2500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가 대표적이다. 그보다 앞서 300억원을 투입한 CJ대한통운(000120)은 컬리 기업가치를 2조5000억원으로 평가했다.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상장에 동의한 것은 초기에 투자한 기관을 중심으로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IB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주요 주주 뿐 아니라 1%를 넘게 보유한 주주에게도 상장 후 일정 기간 동안 주식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보호예수를 확약받아 거래소에 제출했다. 상장 후 주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