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몽 드 퐁뜨네 에바종 대표 명의 주소 집. /민영빈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 입구에 ‘트래블 클럽 플랫폼 에바종’이라는 간판이 걸렸지만, 내부는 책상과 의자가 모두 빠진 채 텅 비어 있었다. 관리실 직원은 “건물주가 사무실을 부동산에 내놨는지 오늘 보러 오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주택 앞에는 소시지, 토스트, 오이피클, 코냑, 베이컨, 햄 등 프랑스 음식 재료가 써있는 빈 택배 박스가 나와 있었다.

오후 5시 20분쯤 에드몽 드 퐁뜨네 에바종 대표로 추정되는 외국인 남성이 테슬라 차량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주차하던 남성에게 “에드몽 대표가 맞냐”고 물었지만, 그는 답변하지 않고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집에선 한국인 여성이 출입국 심사과에서 온 우편물을 받으러 나오기도 했다. 이 여성은 에드몽 대표와 어떤 관계인지 묻는 말에 “모르는 사람”이라며 아우디 차량을 운전해 빠져나갔다.

고객들로부터 여행 예약금을 받고 이를 호텔에 지급하지 않은 온라인 호텔 예약업체 에바종의 ‘먹튀 논란’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대문경찰서가 피해자 신고를 접수해 수사에 착수하고, 공정거래위원회도 현장 조사를 벌였지만, 회사 대표는 문제 해결은커녕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에바종은 지난 2일 자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올리고 “고객 환불 및 운영에 많은 불안을 느끼고 계신 점 알고 있다”며 “투자 유치 및 인수 합병 등의 방안을 협의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환불 예정 및 일자를 안내해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해외 호텔엔 ‘파산했다’는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피해자 모임에만 300명...피해자들 “해외여행 앞두고 날벼락”

16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호텔 예약을 중계한 에바종이 호텔 예약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아 고객이 호텔 숙박비를 이중 지불하거나 예약이 취소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관련 피해자는 200명 이상, 피해 금액은 20억원대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계속해서 진정서를 받는 중이라 정확한 피해 규모 및 금액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는 더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에바종 피해자 모임 오픈 채팅방에 모인 사람만 300여 명이다. 이들은 법인 파산이나 대표의 도주를 우려하고 있다.

에바종 홈페이지에서 11일 오전까지 구매가 가능했던 반얀트리 방콕 호텔 상품 사진.

에바종의 먹튀 논란이 공론화된 건 지난달 29일 한 소비자가 인터넷 여행 커뮤니티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다. 이 소비자는 에바종에서 호텔을 예약했다가, 입실을 이틀 앞두고 에바종으로부터 ‘회사 자금상의 이슈로 송금이 불발돼 해당 건의 객실료(1650달러)가 결제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적었다.

이 글이 올라온 후 에바종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예약 최소를 통보 받았다는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태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호텔 예약 취소를 통보 받았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인스타그램에 해명문을 올린 후 사무실을 폐쇄했다.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숙소 예약을 받고 있다.

에바종은 “2일부터 전 직원이 재택근무에 돌입했으나, 이는 사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고객센터 문의 폭주로 인해 회사로 찾아오는 고객이 많은데, 답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응대하다 보면 업무 처리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투자 유치 및 인수 합병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서는 사업한다더니 방콕서는 파산 주장, 4년째 자본잠식

이런 가운데 에바종은 해외 호텔엔 파산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콕 포시즌스 호텔 관계자는 “에바종이 호텔 측에 파산했다고 통보했다”라며 “예약자들의 재예약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 예약 잔금을 대표 개인 계좌로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에바종을 통해 방콕 호텔을 예약했다는 30대 A씨는 “카드 수수료 때문에 예약금 외에 현지 환율을 계산한 수백만원의 잔금을 현금으로 계좌에 입금했는데, 알고 보니 대표의 개인 계좌였다”라며 “에바종으로부터 예약 완료 메일까지 받았는데, 호텔 측에 확인해 보니 대금 지급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에바종은 홍콩 금융업계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인 에드몽 드 퐁뜨네 대표가 2012년 만든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다. 온라인상에서 숙박업소의 예약을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특히 고급 호텔패스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최고 1000만원대 호텔패스를 선구매하면 일정 기간 국내외 고급 호텔을 투숙 횟수 제한 없이 이용하도록 한 상품이다.

그러나 자본잠식 상태였던 이 회사는 소비자들이 선입금한 숙박료를 돌려막으며 회사를 경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생한 호텔 미수금도 돌려막기식 경영의 폐해라는 분석이다.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에바종의 법인인 본보야지는 매출보다 영업 손실액이 더 많은 자본잠식 상태가 5년간 계속됐다. 2019년 매출은 9억6000만원이었지만, 영업손실은 19억원이었다.

그래픽=이은현

◇폰지사기 수법... 외국인 대표 처벌 가능해

피해자들은 에바종 대표의 처벌 및 보상 여부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석근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에바종의 경우 머지포인트 사태처럼 돌려막기 사기 수법인 ‘폰지사기’로 보인다”며 “사기죄 및 채무불이행 적용이 가능해 보이고, 법인 대표가 외국인이라도 국내에서 영업했다면 공정위 조사 대상이나 민사소송의 피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신동미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대표의 국적이 프랑스라도 현재 피해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고 거기에 책임이 있는 회사라면 우리나라 법원에 손해배상이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인이 파산할 경우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진규 파운더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사적으로는 파산하면 피해자들이 돈을 받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대표를 사기죄로 형사 고소하는 게 가장 현실적으로 보인다”며 “기업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신규 가입자 혹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사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호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팀장 역시 “업체 파산 시 법인의 재산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 피해자들이 민사 절차를 통해서 재산을 압류해 채권 회수를 위한 강제집행을 해도 법인에 속한 재산이 없으면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주식회사 본보야지(에바종 법인) 관련 상담은 총 40건으로, 이번 달에만 15건의 불만 건수가 접수됐다. 접수된 건의 대부분(90%)은 계약해제·위약금(21건), 계약불이행(15건) 등 계약 관련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소비자원과 공정위는 에바종 사이트 이용에 신중을 기하고, 해당 사업자의 채무불이행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빙(녹취, 문자, 내용증명 등)을 남겨 분쟁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