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이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NAVER(035420)) 사옥을 찾아가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를 만난 일이 화제였습니다. 두 달 뒤 양사는 2500억원 규모의 지분 맞교환을 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거대 메기 쿠팡에 쫓기는 온·오프라인 상위 사업자 간 연대라며 주목했습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거래액 기준 2020년 이커머스 시장점유율 빅3는 네이버(17%), 쿠팡(13%), 이베이코리아(12%) 입니다.
신세계그룹은 이커머스 시장에선 입지가 약하지만 오프라인 유통업에서 막강한 1위 사업자 입니다. 국민 포털이라 불리는 네이버의 플랫폼 경쟁력과 38만명에 달하는 입점 상인 수, 신세계그룹의 상품 구매 능력과 물류 인프라 등 노하우가 합쳐지면 초(超)대형 유통 공룡이 탄생할 거란 분석에 힘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지분 맞교환으로부터 1년 여가 지난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됩니다. 작년 7월 양사가 지역 명물을 밀키트 화 해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지역명물 챌린지’를 함께 진행한 데 이어 10월 네이버 장보기 서비스에 이마트몰 상품을 입점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지분 교환까지 할 것 없이 양사가 사업 제휴를 맺고도 충분히 진행 가능한 수준의 협업이 이뤄졌습니다.
양사 간 협업이 뒤로 밀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마트의 G마켓·옥션 인수 입니다. 신세계그룹 입장에선 작년 6월 3조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G마켓·옥션과 성공적으로 한 가족이 되는 방안을 찾는 게 최우선순위 입니다. 신세계그룹은 같은 이커머스인 SSG닷컴과 통합 유료 멤버십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IT·물류 등 전방위적인 통합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 합니다.
신세계그룹이 내부 사정으로 바쁘다면 네이버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상황 입니다.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 신세계그룹과 달리 네이버는 커머스(상거래) 이외에도 핀테크, 콘텐츠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유통업계 관계자들이 양사 간 협업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건 신세계그룹이 아닌 네이버 라고 분석 합니다.
국내 이커머스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신세계그룹과 협업을 하려면 커머스 관련 데이터를 일정부분 공유 해야 할텐데 오픈마켓을 가지고 경쟁 중인 G마켓·옥션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며 “네이버에는 이미 많은 유통사가 입점해 있고 배송 관련해선 CJ대한통운(000120)과도 지분 교환을 했기 때문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거나 손해를 보면서까지 신세계그룹과 협업할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와 신세계가 지분 교환 시점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또 다른 이커머스의 관계자는 “미국 이베이가 G마켓·옥션 매각을 공식화 한 게 작년 1월 중순 인 만큼 각 사에서 내부 검토는 이뤄졌을 것”이라며 “다만 이커머스 판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우리끼리는 싸우지 말자는 일종의 ‘상호 불가침 조약’을 지분 교환 형태로 체결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세계와 네이버는 ‘급할 것 없다’는 입장 입니다. 신세계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 두 회사가 협업 방안에 대해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는 작년에 인수한 G마켓·옥션과 SSG닷컴 간 시너지를 내는 게 우선순위 이며 네이버와의 협력은 중장기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