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외부에 전시된 '618' 쇼핑 페스티벌의 징동닷컴 광고. /로이터 연합뉴스

국내 화장품 업계의 대(對)중국 사업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광군제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전자상거래 행사인 중국 618 쇼핑 행사에서 국내 화장품의 입지가 더 좁아지는 모양새다.

‘618 쇼핑 축제’는 중국 2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JD그룹(징동닷컴)이 알리바바의 광군제(11월 11일)를 본떠 만든 대규모 할인 행사로, 중국 사업을 하는 국내 화장품 업체엔 상반기 대목으로 여겨져 왔다.

작년 행사 기간 화장품 거래액은 512억위안(약 9조원)으로, LG생활건강(051900)·아모레퍼시픽(090430)·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 등 주요 업체의 매출도 두 자릿수 증가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중국 대도시 봉쇄로 인한 소비 부진과 공급망 중단으로 현지 유통업체들이 라이브 판매 방송(라방) 등 판촉 행사를 자제한 데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어 예년과 같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앞서 5월 말부터 진행된 618 쇼핑 사전 행사 성과는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디지털 소매 데이터 업체 닌트(Nint)에 따르면 사전 판매 첫날 4시간 동안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선 가전, 미용 스킨케어 등의 카테고리가 높은 실적을 거뒀다.

스킨케어(기초 화장품)의 경우 에스티로더, 로레알, 랑콤 순으로 판매가 좋았고, 중국 브랜드 2개가 10위권에 들었다. 반면 한국 브랜드는 순위에서 빠졌다.

작년 618 쇼핑 축제 기간(6.1~20) 티몰에서 LG생활건강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히스테리 오브 후(이하 후)가 6위를 차지했으나, 올해 사전 판매 행사에서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메이크업·향수 부문에서는 로레알에 인수된 쓰리컨셉아이즈(3CE)가 4위로 작년(2위)보다 2계단 하락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서 618 쇼핑 행사 중인 LG생활건강의 후 판매 페이지. / 티몰 캡처

6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본행사도 비슷한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련 화장품 업체들은 618 행사에 대한 목표치를 낮추고, 광고비 지출을 줄이는 분위기다.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행사 기간 왕홍(網紅·인터넷 스타)과 라방을 하면 한 번에 20억~40억씩 벌어들였는데, 요즘에는 매출 1000만원대를 내기도 어렵다“라며 “예전처럼 ‘대목’이라 불릴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사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태 전 매출 정점을 찍은 후 중국 사업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라며 “코로나가 끝나면 반등할 거란 전망도 있지만, 대도시 봉쇄로 영업이 어려운 데다 국가 간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했다.

실제 엔데믹(풍토병화) 추세에 맞춰 회복 기대감이 감돌았던 화장품 업계는 중국 사업 부진으로 인해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LG생활건강은 1분기 중국 사업 매출액이 32% 떨어지면서 화장품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0%, 7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사업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 줄었다.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 13% 하락했다. 애경산업(018250)도 중국 사업에 차질을 빚으며 화장품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소폭 하락했다.

2분기 전망도 부정적이다. 증권가는 주요 화장품 업체들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애경산업의 주가는 16일 종가 기준 각각 44%, 20%, 18%씩 떨어졌다.

일각에선 브랜드 가치 하락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LG생활건강의 럭셔리 브랜드 후의 경우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4% 감소했다. 중국 내 매출 비중이 75% 이르는 후는 이 회사의 실적을 견인하는 1등 공신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매출 거품이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리츠증권은 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작년 1.6%에서 올해 1.1%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유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은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후 브랜드의 매출 역신장으로 브랜드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다”라며 “618 행사에서 브랜드력 확인이 필요하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