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엔화 약세)가 심화되며 일부 수입 화장품의 한국 면세점 판매가가 일본 백화점보다 비싸졌다. 중국 다음으로 해외 큰손인 일본 관광객의 복귀를 기다리던 국내 면세업계에선 엔저가 여행 수요에 악영향을 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래픽=이은현

10일 조선비즈는 겔랑·랑콤·바비브라운·에스티로더·톰포드뷰티 인기 제품의 일본 이세탄 백화점 온라인 스토어(엔화 표시) 판매가를 미 달러화로 환산해 롯데인터넷면세점 가격(달러화 표시)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 일본 이세탄 백화점 가격이 롯데인터넷면세점보다 저렴했다. 국내 인터넷면세점 판매가는 경쟁사인 신세계, 신라도 동일한 수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창기까지만 해도 일본 백화점 가격이 더 높았지만 엔저가 가속화 되면서 역전됐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2020년 1월 1달러당 102~103엔에서 이달 8일 기준 133.86엔으로 올랐다(엔화 가치 하락). 장중 134엔대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2002년 2월 이후 처음이다.

국내 면세점에서 56달러에 판매되는 랑콤의 뗑 이돌 롱라스팅 파운데이션은 일본 백화점 가격이 6930엔이다. 코로나19 초기 엔화를 달러로 환산한 가격이 68달러였다면 이날 환율 기준으로는 52달러다. 에스티로더 더블웨어 파운데이션, 바비브라운 수딩 클렌징 오일 등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역전됐다.

면세업계는 일본 관광객의 구매력 저하가 여행 수요 감소나 객단가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국내 한 면세점의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은 가격과 쇼핑 혜택을 꼼꼼히 따져 신중하게 구입하는 성향이 있다”며 “중국인이 한국 브랜드 제품을 집중적으로 산다면 일본인은 해외 명품 브랜드 의류, 화장품도 자국보다 저렴하면 한국 면세점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국내 면세점들은 매출 90%를 담당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받는 중국 따이공(국내 면세점에서 한국 제품을 사다가 중국에 파는 보따리상)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데, 일본과 동남아 개인·단체 관광객이 대안이라고 본다. 그중에서도 일본인들이 동남아 관광객보다 1인당 평균 구매액이 높아 면세점에선 한명이라도 더 붙잡아야 하는 고객군이다.

문제는 엔화 약세가 단기간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엔저의 원인인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 확대가 유지될 공산이 커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이는 반면, 일본은행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하면서 금융시장에서 달러 매수, 엔화 매도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인의 한국 관광은 2020년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90일 이내 무비자 입국 제도가 중단된 뒤 뜸했으나 재개될 조짐이다. 이달부터 한국 해외 공관에서 개별 관광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비자 발급을 시작했다. 코로나19 기간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아이돌 BTS 열풍 등이 분 만큼 일본 도쿄 총영사관에는 비자 신청 첫날에만 1000여명이 몰렸다.

또다른 국내 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중국 따이공에게 지급하는 막대한 수수료를 생각하면 매출처 다변화가 절실하다”며 “일본, 동남아 고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K 패션, 화장품 브랜드를 발굴하고 입점시키는 등 대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