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봉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 회장, 박근식 DFD라이프컬처그룹 회장.

두 사람의 공통점은 패션 회사 창업자면서 골프장 사업을 통해 ‘인생 2막’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정재봉, 골프장 매출만 약 800억...박근식, 골프장 토지 가격 1000억

한섬 창업주인 정 회장은 지난 2012년 현대백화점그룹에 지분 34.6%를 약 4200억원에 매각했다. 그는 같은해 말 경남 남해에 골프 리조트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짓기 위해 사우스케이프를 창업하면서 패션계를 떠났다.

정 회장은 지난 2008년부터 한섬의 부동산사업 개발부분을 분리해 한섬피앤디를 설립, 골프장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우스케이프 설립 이후에는 한섬피앤디와 함께 골프장 사업을 추진했고, 지난 2013년 11월 사우스케이프 골프리조트를 열었다. 두 회사는 2017년 말 사우스케이프로 합병했다.

사우스케이프는 골프장을 연 2013년 약 1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795억원으로 9년 만에 67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억원 수준에서 80억원으로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만이 아니다. 사우스케이프는 지난 2013년 골프장 건설을 위해 장부가액 기준 약 480억원의 토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토지의 가격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같은 기준 지난해 해당 토지 가격은 656억원으로 나타났다. 9년새 약 37% 오른 셈이다.

성공적으로 골프장 사업을 운영하던 정 회장은 지난 2020년 8년 만에 패션계로 복귀했다. 한섬 매각 조건에 동종업계 진출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현대백화점 측과 협의해 오프라인 매장 2곳(서울 강남·경남 남해)과 온라인 판매를 허가 받으면서다.

정 회장은 2020년 6월 골프의류 ‘사우스케이프’를 출범하고 서울 강남 도산공원 근처에 ‘사우스케이프 도산파크’도 열었다. 그는 기존의 알록달록한 색상의 골프의류와 달리 무채색에 파스텔과 원색, 꽃무늬 등을 포인트로 내세웠고, 고급 여성복을 만들어온 감각을 잘 반영했다는 평을 받았다.

정 회장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 2020년 36억원을 기록한 의류 분야 매출은 작년 158억원으로 뛰어 올랐다.

코로나19 여파로 골프장 및 골프의류 시장이 성장세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1년 만에 4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 1분기 매출액은 36억원을 기록했다. 골프장 사업과 골프 의류 사업을 병행하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다.

정재봉 회장은 현재 회사 지분 75.29%를 갖고 있다.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하면 모두 84.03%에 이른다. 나머지 14.51%를 한섬이, 0.64%를 소액주주들이 나눠 갖고 있다.

구두 브랜드 ‘소다(SODA)’를 보유한 DFD라이프컬처그룹 박근식 회장은 보다 일찍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7월 경기 양평에 골프장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한창산업개발의 대주주로 지분 24%를 보유했다.

회원권 분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더 스타 휴 골프 앤드 리조트’는 2013년 6월 개장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어 주요 백화점에 구두 납품과 결제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 회장은 골프장 개장 직후인 2014년 자신의 지분을 소다에 넘겼고, 소다는 기타 주주 주식을 추가로 양수해 40%의 지분을 확보했다. 소다는 DFD라이프컬처그룹의 모태 기업으로 박 회장이 40.92%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다.

한창산업개발은 골프장 개장 첫 해인 2013년 매출액 35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오르내림이 있긴 했지만, 지난해 247억원으로 약 7.1배 가량 늘었다.

골프장 조성을 위해 매입한 토지도 지난 2006년 장부가액 기준 186억원이었으나, 지금은 1011억원에 이른다. 약 5.4배 뛰어 오른 것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왼쪽)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전 회장. /조선DB

◇골프장 매각 않은 웅진·코오롱, 자산상 수백억 이익…패션 사업 시너지도

유동성 문제로 ‘골프장 매각설(說)’이 나왔지만, 끝내 팔지 않아 덕을 본 경우도 있다. 이웅열 코오롱(002020)그룹 전 회장과 윤석금 웅진(016880)그룹 회장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 2020년 8월 코로나19와 인보사 사태로 현금흐름 악화를 겪었다. 이에 강원 춘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을 포함해 6000억원 가량의 자산을 매각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라비에벨 컨트리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코오롱글로벌(003070)은 “현재 보유 중인 라비에벨 골프장에 대한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코오롱글로벌은 골프장을 매각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자산가치상 수백억원의 이익을 봤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에 따르면 코오롱글로벌이 소유한 강원 춘천 동산면 조양리 일대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는 매각설이 돌던 지난 2020년 ㎡당 4만5500원이었지만, 올해 4월 29일 기준 이보다 27.4%가량 오른 5만8000원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해당 골프장의 장부가액이 1022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약 280억원 가량 오르는 셈이다.

코오롱그룹은 라비에벨 컨트리클럽 외에도 충남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을 소유하고 있다. 두 골프장 모두 계열사인 그린나래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데, 그린나래는 코오롱글로텍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다. 그린나래는 지난 2006년 2월 코오롱이 골프장 사업을 위해 현물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그린나래가 소유한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의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도 2006년 이후 38% 올랐다. 2006년 ㎡당 4만6000원이던 해당 토지는 지난 2020년 ㎡당 5만4500원, 올해 4월 말 기준 6만3500원으로 공시됐다. 그린나래가 지난해 공시한 해당 토지의 장부가액은 1076억원이다.

애초 코오롱건설 소유였던 그린나래는 지난 2011년 주택 미분양으로 자금난을 겪던 코오롱건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코오롱글로텍에 매각돼 코오롱인더스트리 품에 안기면서 패션 산업과의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그린나래가 코오롱인더스트리 계열사로 포함된 2011년 매출액은 98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린나래 매출은 448억원, 영업이익은 80억원으로 4배가량 늘었다.

지난해 골프웨어 브랜드 ‘왁(WAAC)’은 골프 열풍에 힘입어 3년 만에 회사를 ‘1조 클럽’에 재입성시키는 데 일조했다. 지포어도 지난해 상반기 주요 백화점에서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골프장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경기 여주의 렉스필드 컨트리클럽 매각을 추진했으나, 매각 협상이 결렬된 후 사실상 매각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은 지난 2012년 지주사인 웅진홀딩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을 당시에도 코웨이를 포함한 핵심 계열사를 매각하면서도 골프장을 매각하지는 않았다.

그사이 렉스필드 컨트리클럽의 토지 가격은 16%가 올랐다. 골프장 토지의 개별 공시지가는 2012년 ㎡당 6만8000원에서 올해 8만1000원으로 1만3000원 올랐다. 골프장을 매각하려던 지난해(㎡당 7만6000원)와 비교하면 5000원 오른 것이다.

렉스필드 컨트리클럽의 올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137만3513㎡ 토지를 갖고 있으며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1036억원이다. 렉스필드 컨트리클럽은 27홀 규모의 골프장이다.

매각추진 당시 대중제 골프장과 비교해 현금창출능력이 떨어지는 회원제 골프장이라는 단점을 안고도 거래가격은 홀당 60억원대 후반 정도가 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렉스필드 컨트리클럽은 웅진그룹 지주사인 웅진이 43.2%의 지분을 보유중이다. 극동건설도 43.2%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윤석금 회장의 아들인 윤형덕 웅진투투럽 대표이사, 윤새봄 놀이의발견 대표가 각각 1.9%의 지분을 갖고 있어 최대주주인 상태다.

지난 2월 16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골프용품. /연합뉴스

◇삼성물산·골프존도 골프장 운영…뛰어드는 패션社들

이외에도 다양한 유통 기업이 골프산업 호황에 따른 수혜를 누리고 있다.

삼성물산(028260)은 가평베네스트, 동래베네스트, 레이크사이드, 안양컨트리클럽, 글렌로스, 레이크사이드 등 6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골프 의류 및 장비를 판매하는 골프존(215000)도 골프존 카운티를 통해 전국 17개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올 1분기 패션 매출은 47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7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파크, 골프, 조경 등의 매출이 포함된 리조트 매출도 765억원에서 869억원으로 상승했다.

골프존 역시 골프장 사업을 하는 골프존카운티와 골프 장비 및 의류를 판매하는 골프존커머스 매출이 동반 성장했다.

부동산 자산 상승, 매출 시너지 등 이점으로 많은 패션 업체들이 골프장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LF(093050)는 전남 광양시에, 크리스에프앤씨(110790)는 경기 안성시 일죽면 일대에 골프장 부지를 매입하고 연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쌍방울(102280)그룹도 경기 포천시에 골프장 건립을 위한 부지를 매입하고, 현재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