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가 2024년 선보이는 브이엘(VL) 오시리아 조감도. /호텔롯데

롯데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시니어 사업’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호텔롯데는 오는 2024년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선보이는 시니어 타운 ‘브이엘(VL)’의 사전청약 경쟁률이 25대 1로 집계됐다고 16일 밝혔다. 당초 회사 측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브이엘은 국내 호텔업계 첫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로, 상업시설·한방병원·메디컬센터를 포함해 지하 4층, 지상 18층 574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지난 5~6일 이틀간 사전청약을 진행했다.

브이엘은 60대 이상의 활기찬 노년,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해 5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24시간 컨시어지(접객 담당자)가 응대하고, 주 2회 청소·빨래를 해주는 ‘하우스 키핑’ 서비스를 운영한다.

의료기관과 연계한 맞춤 헬스케어와 호텔 셰프가 만든 맞춤 건강식도 내놓는다. 레지던스 단지 안에 도서관·사우나·운동시설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하고 인문학·미술·운동 강좌, 프리미엄 요트 투어도 선보인다.

2025년에는 서울 마곡에도 782가구 규모의 시니어 타운을 조성할 예정이다. 입주 자격은 만 60세부터다. 입주비는 평형에 따라 보증금 7억~8억원, 관리비는 월 300만~500만원으로 책정됐다.

◇호텔롯데가 주축, 시니어 사업 육성

롯데그룹은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고령 친화 사업을 그룹의 핵심 먹거리로 정하고, 2013년부터 실버케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왔다. 이는 한일 롯데 총수를 역임하며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실버산업 성장을 지켜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주문이다.

보바스기념병원 전경. /롯데의료재단

호텔롯데는 2017년 법정관리 매물로 나온 경기도 분당의 노인 요양 전문병원 보바스기념병원의 회생절차 참여를 시작으로 시니어 사업에 발을 디뎠다. 호텔롯데가 이사 추천권을 확보하는 대신 재단에 600억원을 무상 출연하고 2300억원을 대여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병원 운영 주체가 늘푸른의료재단에서 롯데의료재단으로 바뀌었고, 현재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가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이에 업계에선 롯데가 시니어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병원에 투자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병원이) 비영리 공익법인인 만큼 재단에 기금을 내는 방식으로 이사회 구성권 일부를 얻었을 뿐 영리 사업은 하지 않는다”라며 사회공헌 활동 차원의 투자였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인 요양병원 재단의 이사진으로 참여하며 해당 사업의 이해를 높이는 계기는 됐을 것”이라고 했다.

보바스기념병원은 평소 대기 환자가 400~5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롯데의료재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수익은 4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다. 의료이익은 11억원에서 34억원으로, 당기순이익은 11억원에서 55억원으로 늘었다.

◇헬스케어·푸드·바이오 등 전 계열사 협력

호텔롯데가 그룹 신사업의 중심이 된 이유는 호스피탈리티(접객) 서비스에 일가견이 있는 호텔롯데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호텔롯데의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제고해 상장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많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총수 일가→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계열사로 이어진다. 일본 롯데 지주사인 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호텔롯데가 롯데지주(004990), 롯데쇼핑(023530), 롯데물산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한 만큼, 호텔 상장을 통해 일본 측 지분율을 희석하고 롯데지주 중심의 단일 지배구조를 완성한다는 게 롯데그룹의 계획이다.

그래픽=손민균

신동빈 회장은 전 계열사의 역량을 활용해 시니어 사업을 키우라는 주문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호텔과 롯데푸드가 맞춤형 식단을 개발하고, 롯데헬스케어가 건강기능식품과 운동 프로그램을, 롯데JTB(여행사)가 프리미엄 요트 투어 등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달 말 신설하는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시니어 사업과 연계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지난 13일 바이오의약품 사업에 향후 10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자, 글로벌 ‘톱10′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인구·소비의 미래’에서 “베이비부머의 맏형인 1955년생이 2025년부터 70세에 진입한다”며 ‘간병사회’의 도래를 예고한 바 있다.

그는 “전대미문의 간병사회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거대 노년 집단의 다양한 욕구는 한국의 내수산업을 주도할 유력 후보”라고 진단했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랐던 일본의 경우 201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6%를 넘어서면서 그해 60세 이상 고령자의 소비 규모가 100조엔(약 995억원)을 넘어섰다. 2030년에는 일본 전체 소비의 절반을 시니어 세대가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한국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0년 25%, 2050년 4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49조원으로, 10년 전(44조원)과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