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을 깨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유통업계 여성 리더들이 주목받고 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맥도날드는 다음 달 1일 자로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김기원(48) 상무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한국맥도날드가 한국인 여성 CEO를 발탁한 것은 2016년 조주연 전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

김 신임 대표는 P&G, SBS미디어홀딩스, 코카콜라 등을 거쳐 2020년 4월부터 한국맥도날드 CMO를 맡아왔다.

K팝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을 모델로 한 비티에스(The BTS) 세트, 한국의 맛(Taste of Korea), 베스트 버거, 맥카페 등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그래픽=이은현

한국P&G는 6월 1일 자로 이지영(44) 한국P&G 마케팅 총괄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한다. 역대 한국인 대표 중 최연소다.

이 신임 대표는 2000년 한국P&G 마케팅 브랜드 매니저로 입사해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브랜드 전략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특히 10년 넘게 아시아 태평양 지역 섬유 홈케어 사업부 리더로 근무하며 다우니, 페브리즈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푸마코리아는 이달 20일 이나영(50)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리복과 아디다스의 국내 및 글로벌 지사를 거쳐 2020년 푸마코리아에 합류해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했다.

2019년부터 한국코카콜라를 이끄는 최수정(47) 대표도 한국코카콜라의 첫 여성 CEO다. 대학 졸업 후 삼성 미국 법인과 한국마즈 브랜드 매니저를 거쳐 2006년 환타·스프라이트 브랜드 매니저로 한국코카콜라에 합류했고, 2013년부터 마케팅 상무로 근무했다.

탄산음료 중심이던 한국코카콜라의 상품 포트폴리오를 커피, 차 등으로 다각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유통업계에 1970년대에 출생한 여성 리더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소비시장의 가장 큰 손인 X세대(1965~1979년생)로, 해당 세대는 물론 자식 세대인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다.

특히 소비재 시장의 최종 소비자(엔드 유저)가 여성인 만큼,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조사 업체 월드데이터랩에 따르면 여성이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금액은 약 32조달러(약 4경656조원)에 달한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미국 여성 소비자가 전체 구매 결정의 70~80%를 담당하고 있다고 봤다.

‘소비 시장의 큰 손’인 여성의 마음은 여성 대표가 가장 잘 안다는 것. 국내 온라인 장보기 새벽배송 시장을 연 마켓컬리의 경우 여성인 김슬아(39) 대표가 32세던 2015년 창업했고, 10~20대 여성 패션 쇼핑몰 스타일쉐어도 윤자영(34) 대표가 대학생이던 2011년 창업했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다양성 추구가 필수가 된 것도 여성 리더의 약진을 이끌었다. 미국 경제 매체 포천에 따르면 미국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2000년만 해도 2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41명으로 늘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상장 기업 이사진에 성별·인종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지난해 승인했다.

국내도 여성 임원이 증가세를 보인다. 특히 오는 8월 상장법인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이 독식하지 않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유통업계의 여성 사외이사 선임이 부쩍 늘었다.

롯데지주(004990), 신세계(004170), 현대백화점(069960), CJ(001040), LG생활건강(051900) 등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성 CEO를 임명하는 것 자체가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며 “기업의 이사회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만큼 향후 여성 CEO 및 임원들의 활약이 더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