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이마트 구로점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장난감을 보고 있다. /이슬기 기자

어린이날을 10여일 앞둔 지난 23일 저녁. ‘어린이날 100주년’ 할인 행사 중인 서울 이마트 구로점 2층 토이킹덤은 어린 자녀와 장난감을 고르는 젊은 부모들로 북적였다. 7살 딸을 데리고 마트를 찾은 박해연(39)씨 부부는 매장 맨 앞에 전시된 ‘레고 프렌즈’를 둘러봤다.

‘추천 상품’ 코너에 위치한 제품 가격은 1만원대부터 10만원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딸은 14만9900원짜리 레고 프렌즈 쇼핑몰 세트를 골랐다. 박 씨는 “아이가 레고를 워낙 좋아해서 집에 이미 많다”면서도 “외동이고 맞벌이 부부라 10만원대 선에서 아이가 원하는 건 웬만하면 사준다”고 했다.

5살 아들과 함께 온 나현우(37)씨는 ‘캐치! 티니핑’ 마카롱 가게와 ‘말하는 피규어’를 9만원에 샀다. 남편인 안모(37)씨는 “어린이날에는 밖에 나갈 계획이라 오늘 여유 있게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 왔다”며 “어린이집에서 티니핑이 인기라 집에 스티커부터 색칠공부, 피규어까지 넘쳐나지만,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라 그냥 사주려 한다”고 했다.

4살 조카, 친언니와 방문한 정은애(34)씨도 레고 코너 앞에 한참 머물렀다. 조카가 3만9000원짜리 움직이는 공룡 모형을 집어 들자 그는 “더 좋은 걸 사주고 싶다”며 진열대 위쪽에 있는 고가의 상품으로 눈을 돌렸다. 대부분 10만원이 훌쩍 넘는 상품이었다. 정 씨는 조카가 고른 공룡 장난감에 더해 10만3900원짜리 레고 듀플로 소방차 시리즈를 카트에 올렸다.

21일 오후 서울 이마트 성수점에서 한 어린이가 장난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생)가 구매하는 어린 자녀의 장난감이 비싸졌다. 자신에게 아낌 없이 투자하며 명품 소비에도 익숙한 이들의 성향이 자녀를 위한 소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물가 자체가 오르기도 했지만, 저출산 분위기 속에 어린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사주려는 젊은 부모가 늘면서 인기 완구의 가격대도 눈에 띄게 오르고 있다.

◇ ‘레고’ 상위 10위 중 절반이 10만원 이상 고가...비싼 장난감 늘어

25일 이마트에 따르면 블록완구 중 대표적인 고가 상품인 레고의 경우, 2020년 기준 매출 상위 10위권 상품 가운데 10만원 이상 상품은 2개, 최고가는 12만9900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4월 기준 상위 10위권 중 10만원 이상 상품은 5개로 늘었다. 최고가는 14만9900원이었다. 어린 자녀에게 가장 많이 사준 레고 가운데 절반이 10만원을 넘는다는 뜻이다.

카드 혜택 등 할인율이 높은 온라인 매장에선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했다. SSG닷컴의 완구 인기 상품 자료를 분석한 결과, 판매 1순위 레고의 가격은 2020년 7만4900원이었지만, 올해에는 10만4900원으로 올랐다.

인기 상품 5위권 가격대도 같은 기간 7만4900~12만9500원에서 7만4900~14만4900원으로 상승했다. 판매 2~3위 상품의 평균 가격대는 지난해 8만원에서 올해 12만원대로 훌쩍 뛰었다.

여아 인기 완구인 ‘캐치! 티니핑’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가장 많이 판매된 상품은 모두 6만원대 ‘티니하트윙 마법컴팩트’와 ‘티니핑 하우스’였지만, 올해에는 8만원이 넘는 ‘반짝반짝 티니핑 스쿨’과 10만원대 ‘티니핑 쥬얼하트윙폰 캐치티니핑 시즌2 스캔’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그 외 ‘헬로카봇’과 ‘메카드볼’ 등 남아 인기완구를 포함한 판매 10위권 상품의 최고가도 지난해 10만4900원에서 올해는 11만9900원이 됐다.

이마트 관계자는 “20대에서 40대 초반까지 MZ세대 부모들은 외동 자녀를 둔 경우가 많고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는 것에도 익숙하다”며 “이전 세대에 비해 자녀에게 고가의 장난감을 사주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물가 전체가 오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사주려고 설정한 장난감 가격대 자체가 올라갔다”고 했다.

온라인 중고 장터 게시글 캡처

일부 부모들은 중고 구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것 외에 ‘단종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 중고 플랫폼 검색까지 나선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상품들은 이른바 프리미엄이 붙어 부르는 게 가격이다. 보통 10만원대를 가볍게 넘나들지만, 이조차 없어서 못 사는 수준이다.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나 번개장터, 당근마켓 등에는 ‘레고 0000(번호) 삽니다’ 라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대부분 어린 자녀에게 단종 모델을 구해주려는 부모들이 작성한 것이다.

최근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11만원에 ‘레고 시티 60076′을 구입한 직장인 김태훈(37)씨는 “6살 자녀에게 단종 레고를 구해 주려고 서울 집에서 경기도 일산 등 다른 지역까지 직거래를 다녀온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외동 자녀를 둔 그는 “아이가 레고 중장비 시리즈를 너무 좋아한다”며 “오래 전 단종된 모델일수록 더 비싸고 중고 카페를 한참 뒤져야 하지만, 아이가 잘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좀 비싸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 부모의 애착 심리 이용, 일그러진 ‘과소비 마케팅’ 전락 우려도

일각에선 천정부지로 치솟는 ‘키즈 플렉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저출산 시대와 MZ세대의 특징이 결합한 행태라지만, 자칫 어린이가 과소비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외동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애착 심리를 겨냥한 ‘고가 마케팅’이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태훈 씨는 “아이가 원하면 어떻게든 사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이제 5만원으로는 아이 선물 하나 사기도 빠듯할 만큼 모든 게 다 비싸졌다”며 “올해 둘째가 태어나는데, 장난감부터 옷값까지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솔직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 장난감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고 경제력 격차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마트에서 만난 80년대생 나 씨도 “내가 어릴 때와 비교하면, 우리 아이를 비롯해 요새 자녀들은 장난감 귀한 줄 모르고 뭐든 많이 사주는 것 같다”면서도 “TV광고를 보거나 마트에만 가도 고가의 장난감을 쉽게 접하다 보니 우리 아이만 안 사주기도 미안해서 결국 돈을 쓰게 된다”고 했다.

신현두 한국소비자협회(KCA) 대표는 “어린이 무상급식, 청소년 무상교복 등 어린이 복지가 시대적 화두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역설적으로 어린이가 과소비의 마케팅 대상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동 자녀에 대한 젊은 부부의 심리를 타깃으로 업체들이 비싼 완구를 전면에 내놓거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경제적 격차를 확대해 아동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 스스로도 이러한 상술을 경계하고 합리적 소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