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경기 남양주의 한 무인 문구점에서 초등학생 2명이 장기간에 걸쳐 수백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친 사실이 드러났다. 사건은 지난해 12월 발생했다. 피해 매장 점주는 매장에 행동이 수상한 아이들이 있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매장 CCTV를 확인했다.
CCTV엔 가방을 들고 다니며 진열된 물건들을 쓸어담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김씨는 과거 CCTV도 찾아봤고, 같은 아이들이 3개월에 걸쳐 30차례 이상의 절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 도난 피해 추산 금액은 약 600만원에 이르렀다. 사회적으로 초등학생 부모들의 무책임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미성년자 처벌법(촉법소년법) 개정에 대한 여론을 형성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무인매장의 보안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코로나19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무인 매장 출점이 빨라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폐쇄회로(CC)TV에 의존하는 보안 모델로는 절도 사건 발생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없고 후속 대응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인 매장 체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도난 방지 등 범죄 예방 기술 개발도 따라 와야 한다. 최근 유통업계 리테일테크(Retailtech, 소매 유통 사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산업) 화두다.
신세계(004170) 그룹의 리테일테크 개발을 맡고 있는 김은경 신세계I&C R&D 담당 상무는 “무인 문구점 초등학생 절도 사건을 보면 비정상 구매 행위에 대한 자동 감지 기능을 통해 도난 사고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렸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신세계I&C는 신세계그룹의 IT서비스 개발 계열사다. 완전 스마트 매장으로 운영하는 ‘이마트24 스마트코엑스점’과 1300여개 유무인 복합(하이브리드) 운영 매장 등의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고 있다.
완전 스마트 매장의 대표 사례는 세계 1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운영하는 ‘아마존고’다. 아마존은 2016년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 건물 ‘데이원’에서 세계 최초의 무인 점포를 연 뒤, 2018년 1월 일반 고객에 공개했다.
아마존고는 인공지능(AI)과 센서,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폰을 들고 매장에 들어간 뒤 물건을 들고 나오면 자동으로 결제까지 이뤄지는 무인 점포의 표준이 됐다. 그냥 들고 나가면 된다는 뜻에서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이라고 불린다. 뉴욕 8개, 시애틀 7개, 시카고 5개, 샌프란시스코 4개 등 총 2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마트24는 작년 9월 한국형 ‘아마존고’를 표방하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스타필드에 ‘이마트24 스마트코엑스점’을 열었다. 이 매장은 입장 시 신용카드 인증을 하고, 구매하고 싶은 상품을 들고 매장을 나가면 입장 때 인증한 카드로 자동 결제되는 ‘Pick & Go’ 형태의 매장이다. 아마존 고와 입장·구매·결제까지 이뤄지는 체계는 닮았지만, 취급 품목 수나 동시 입장 최대 허용 인원 등 세부적인 부분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트24 스마트코엑스점은 출점 후 현재까지 약 6개월 동안 2만5000명 이상이 방문했다. 이용객들의 구매 정보가 쌓이면서 AI의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다고 김 상무는 설명했다. 작년 11월부터는 그동안 무인매장에서 팔 수 없었던 담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간편 본인 확인 시스템(PASS)으로 성인 인증을 한 고객이 선반 문을 열고 제품을 꺼낸 뒤 문을 닫으면 상품과 가격 정보를 인식해 자동 결제하는 ‘스파로스 스마트 선반’을 도입한 결과다. 이마트24는 오는 2023년까지 스마트코엑스점을 운영하고, 실증 경험을 토대로 한국형 완전 스마트 매장 기술을 표준화할 계획이다. 다음은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연초 발생한 무인 문구점 도난 사건으로 무인 매장의 보안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다.
“최근 문제가 된 무인 문구점 초등학생 절도 사건을 막기 위해 우리는 도난, 기물파손, 응급 상황에 대한 AI 기반 자동감지 기술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또 스캔(Scan) 기반 셀프 계산대에서 ‘치팅’ 등의 비정상적 구매 행동을 감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 중이다.”
무인 매장 운영에 있어서 보안은 핵심 가치일텐데.
“그렇다. 낮에는 유인, 밤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매장의 핵심적인 요소 중 첫번째가 보안이다. 보안 관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관리자 부재 시 도난 문제를 완벽히 차단하기 어렵다.”
무인 매장의 형태에 따른 보안 시스템 구축 비용은 얼마나 소요되나?
“무인 매장은 크게 ‘양심가게’(최소한의 CCTV와 계산대를 보유한 매장), 하이브리드 매장, 완전 스마트 매장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보안 시스템 구축 비용은 매장 형태나 어떤 보안·관제 시스템을 도입하는지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에 비용 차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관련 시스템과 기술이 보편화되고, 대중화되면 비용 차이는 크게 좁혀질 것으로 생각한다.”
신세계가 추구하는 ‘완전 스마트 매장’은 어떤 형태인가?
“고객이 최소한의 절차로 입장해, 자유롭게 쇼핑하고 매장을 나서는 순간 자동 결제가 되는 매장이다. 입장 과정에서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인증과 결제 정보를 연결시켜야 한다. 향후 범용적인 모바일 앱이나 생체인증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또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해 동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외부의 불법적인 침입이나 도난, 매장 내 응급환자 발생 등 이상 상황에 대한 대처도 가능해야 한다. 좀 더 발전된 매장에서는 수요를 예측해 상품 발주를 자동화하는 기술, 비전 시스템을 통해 결품 상태를 자동적으로 인지하는 기술이 도입될 것이다.”
현재 이마트24 스마트코엑스점의 기술 수준은 목표치의 어느 정도까지 왔나?
“현재 완전 스마트 매장의 기술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마트 매장의 80%에 근접했다고 본다. 고객의 구매 행동을 추적하는 트레킹, 상품 인식, 구매 인식률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다만 저변 확대를 위해선 추가적인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 기술에도 ‘파레토 법칙’이 적용된다. 향후 부족한 20%를 채우기 위해서는 이전 80%를 채운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매장 구성의 경제성, 대상 상품군의 확대 등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고려를 해야 한다.”
☞파레토 법칙 : ‘80 대 20 법칙’ 또는 ‘2 대 8 법칙’이라고 한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 만큼을 쇼핑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도입 비용도 문제다. 완전 스마트 매장을 여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나?
“구체적인 비용은 매장 규모나 내부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실증 단계에 있는 현 시점에선 공개가 어렵다. 최종적으로는 효율적인 장비 개발과 기술 고도화를 통해 개인 자영업자도 완전 스마트 매장을 도입할 수 있도록 구축 비용을 낮추는 게 목표다.”
자영업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하이브리드 매장을 선호할 것 같은데, 방해요인이 있나
“앞서 말했듯이 보안 문제가 있고, 두번째는 편의점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담배, 주류 등 성인인증 제품을 무인 시간대에 판매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해 자동 판매기가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승인 허가를 받아 성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스마트 선반을 통해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하이브리드 매장이 더 빨리 확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정보 저장과 유출에 대한 개인 소비자의 불안감도 있다.
“완전 스마트 매장에서 영상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는 크게 AI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다. 먼저 AI 카메라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최대한 사람의 얼굴이 찍히지 않도록 촬영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촬영된 영상은 스켈레톤 모션 등을 획득한 후 바로 폐기한다. 성별이나 나이 등 어떠한 정보도 저장하지 않는다. 라이다 센서의 경우 수많은 점의 집합체로 표현되는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로 데이터를 생성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다. 라이다 센서로 고객 추적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쇼핑 컨시어지 기능을 제공하려면 개인의 구매 정보를 저장하게 되지 않나?
“향후 상품 추천이나 타깃 광고 등 온라인 환경의 서비스를 오프라인에서 제공하기 위해선 구매 정보가 꼭 필요한 데이터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정보는 개인 정보 보호법에 따른 엄격한 기준에 의해 관리돼야 한다. 이런 전제 아래 가명정보 변환 등 보다 안전하게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