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산한 서울의 한 쇼핑몰. /연합뉴스

유통업계가 제 20대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대형 유통 업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10일 목소리를 냈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표심을 위해 골목 상권과 전통 시장을 보호한다며 대형 유통 기업을 규제했지만,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 흐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오프라인 상점을 규제해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16일 유세에서 광주광역시 복합쇼핑몰을 유치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광주는 인구가 144만명이지만, 광역시 중 유일하게 복합쇼핑몰이나 창고형 할인 매장이 없다.

유통 기업들은 광주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지역 정가와 시민단체는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며 반대해왔다. 광주신세계와 광주시가 지난 2015년 복합쇼핑몰과 호텔을 세우려 했지만 지역 정가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통 업계에서는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논의와 함께 대형 유통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로 온라인 소비가 부상한 가운데 대형 유통 기업을 규제한다고 사람들이 골목 상권이나 전통 시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20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무 휴업 등으로 대형마트에 못 갈 경우 전통 시장을 방문한다’는 소비자는 8.3%에 그쳤다. ‘대형마트 영업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소비자는 28.1%였다.

역대 정권은 그동안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대형 유통 기업을 규제해왔다. 근거는 유통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과 소비자 보호,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1997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2010년 들어 골목 상권과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 유통 기업을 규제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2010년 전통 상업 보존 구역을 만들고 전통 시장 반경 500m 내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입점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2011년 이 범위를 전통 시장 반경 1km로 확대했다.

2012년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의 24시간 영업을 규제하고 월 1~2회는 의무 휴일로 쉬도록 만들었다. 2013년 의무 휴업일을 월 2회로 지정하고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했다.

2020년에는 월 2회 의무 휴업 대상을 대형마트 등에서 복합쇼핑몰과 면세점으로 확대하고 전통 상업 보존 구역을 1km에서 20km 확대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는 4월부터는 지역상권법이 시행해 임대료가 급등하는 상권에서 지역 상인들이 반대할 경우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직영점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유통 업계에서는 “불황이 계속되는데 선거철마다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권에서 유통 규제를 강화했다”며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해외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오프라인 유통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미국은 월마트 등 대형 업체와 소매 업체가 자유롭게 경쟁하며 가격을 인하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고 있으며, 프랑스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유통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게 전경련 측 설명이다.

대형 유통 기업과 전통 시장·골목 상권의 동반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복합 쇼핑몰에 영세 소상공인이나 지역 전통 맛집이 입점하는 경우도 있다”며 “유통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갈라치지 말고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전경련 측은 “유통 규제를 논의하기 전에 기존의 유통 규제가 변화하는 환경에 적합한지 분석이 필요하다”면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유통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글로벌 추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