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밝힌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으로 증시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한국거래소가 특례기업 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고, 컬리도 4조원이 넘는 몸값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상장 시기를 신중하게 저울질 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컬리는 상장 예비 심사를 아직 청구하지 않았다. 통상 기업이 상장 예심을 청구한 후 실제 상장하기까지 평균 4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아무리 늦어도 2월 중에는 거래소 심사가 들어가야 6월 내 상장이 가능하다.
컬리는 “상반기 상장 계획엔 변동이 없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국거래소의 패스트트랙 제도(상장 간소화 제도)를 통해 짧게는 석달 만에 상장한 사례도 있지만 ▲자기자본 4000억원 이상 ▲매출 7000억원 ▲세전 이익 300억원 이상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 컬리는 설립 이래 줄곧 적자를 내고 있다.
◇ 증시 변동성 확대에 거래소, 상장심사 보수적으로
컬리의 상장이 예정보다 늦어지는 건 최근 전세계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른바 K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사)을 바라보는 거래소의 시선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지난해 쿠팡이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한 이후 적자 유니콘 홀대론이 나오자,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이고 미래 성장성이 유망하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요건을 신설했다. 그동안 코스닥시장에는 기술, 바이오 기업이 특례상장 할 수 있었지만 유가증권시장 입성은 불가능했다.
거래소는 상장 예심 청구 전 사전 협의에서 재무 건전성과 관련해 컬리에 보완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심을 통과하려면 거래소의 질적심사기준을 통과해야 하는데 컬리의 경우 현재 왜 적자를 내고 있는지, 향후 어떻게 해소 가능한 지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컬리의 적자가 단기간에 해소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컬리의 영업손실은 2017년 124억원에서 2020년 1163억원으로 늘었다. 매출 증가에 비례해 물류·IT·인력 투자, 마케팅 비용을 확대면서 적자 폭이 확대됐다.
◇ “식품 폐기율 어떻게 낮추나” 컬리의 고민...초록마을 인수 검토
문제는 앞으로 적자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이냐다. 국내 증시에 특례 상장하는 기술, 바이오 기업은 대규모 수주 계약을 토대로 향후 매출,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컬리 같은 이커머스 기업은 온전히 자신의 수익모델 만 가지고 흑자 시점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입증이 쉽지 않다.
컬리에 입점한 한 중소 식품업체의 관계자는 “컬리는 상품 판매 뿐 아니라 마케팅 채널로서 역할도 하기 때문에 판매 수수료율이 다른 이커머스 대비 높은 편”이라며 “그런데도 적자가 저렇게 크게 난다는 건 식품 폐기율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며 이는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컬리가 최근 대상홀딩스(084690)의 유기농 제품 매장인 초록마을 인수를 검토한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이다. 초록마을은 2020년 기준 매출 1927억원, 영업손실 33억원으로 실적은 부진하지만 전국에 470여개의 오프라인 점포를 가지고 있다. 초록마을 인수가는 1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된다.
컬리는 축적된 온라인 주문 데이터를 활용해 각 지역의 상품 판매를 예측, 인근 물류센터에 가져다두고 배송하는 방식을 쓴다.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이 신선식품인 만큼 데이터 예측이 틀려 안 팔리면 폐기해야 하고 손실로 잡힌다. 오프라인 매장이 생기면 여기서 재고를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어 수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초록마을 오프라인 점포 약 80%가 가맹점이어서 전국 점포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본사에서 제품과 서비스 가격, 품질을 일률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직영점과 달리 가맹점은 점주들의 권한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경쟁사인 오아시스마켓은 작년 말 기준 50여개인 점포를 100%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 이커머스 투자심리 악화...오아시스·SSG·올리브영도 예의주시
최근 이커머스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좋지 않은 점도 컬리에겐 악재다.
올해부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 되며 소비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커머스는 대표적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혜주였던 만큼 엔데믹(endemic·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풍토병)으로 전환될 경우 성장 속도가 더뎌질 가능성이 높다.
컬리의 목표 시가총액은 5조~6조원 수준이다. 작년 12월 홍콩계 사모펀드 앵쿼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로부터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유치하며 4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 받은 만큼 상장으로 그 이상의 몸값을 인정 받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컬리는 최근 초록마을을 포함해 기업가치를 높일 만한 신규 투자처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컬리와 주요 고객층이 겹치는 여성 교육 서비스 스타트업 헤이조이스를 인수했다. 거래가액이 수십억원 수준에 그치지만, 상장 직전에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올해 상장 예정인 오아시스마켓, 신세계(004170)그룹의 SSG닷컴, 작년 말 대표주관사를 선정하며 상장 작업을 본격화 한 CJ(001040)그룹의 CJ올리브영도 컬리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상반기 상장을 공언한 컬리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최근 증시 상황을 보면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기에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추정 기업가치는 오아시스마켓은 1조~2조원, SSG닷컴은 10조원, CJ올리브영은 3조~4조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