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로수길이 2~3년 새 급증한 공실로 신음하는 사이, 골목 구석 구석에 10~30대가 열광하는 감각적인 브랜드가 하나 둘 둥지를 트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맛집에 성지순례 하듯 다녀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로수길 이면도로에 세로수길(가로-세로), 나로수길(가나다라 순)이란 별칭이 생겼다.

CNP(컬처 앤 피플)라는 생소한 이름의 회사가 유통업계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가로수길 이면도로에 낸 도산분식, 아우어베이커리가 SNS 인증샷 명소로 소문나며 연일 사람들이 줄을 섰다.

도산분식은 세련된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쓰던 연두색 플라스틱 그릇, 투명 유리병에 식음료를 내주고 돈까스샌드, 감태주먹밥 등 이색 메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회사의 대표 브랜드였던 아우어베이커리는 겉에 초코가루가 듬뿍 묻혀진 뺑오쇼콜라(초콜릿 크루아상)인 더티초코를 SNS를 통해 꾸준히 노출시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경우다.

빵 모양도 특이했을 뿐더러 입과 손에 초코가루를 듬뿍 묻히고 먹는 인증샷이 연신 공유되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고 기본에 충실한 빨미까레, 까눌레가 덩달아 인기를 끌며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나이스웨더 마켓' 내부. 가운데 있는 건 DJ부스다. / 이현승 기자

주로 외식업 브랜드를 선보였던 이 회사가 2020년 가로수길에 ‘나이스웨더’란 이름으로 새로운 유통업태를 선보였다. 나이스웨더는 10~30대 취향에 맞게 선별한 먹거리와 패션·리빙 소품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편집매장이다.

이탈리아 마비스치약, 스웨덴 오엘비 치즈볼, 포르투갈 정어리통조림 등 그 나라에 방문하면 꼭 구입하는 필수템과 직접 기획한 의류·식품, 자체 브랜드 올드페리 도넛 등을 판매한다.

신개념 편의점이란 컨셉을 붙인 가로수길 매장이 히트를 쳤고 작년 2월 서울 여의도에 문연 더현대서울에도 입점했다.

더현대서울 매장에서 물건을 산 사람 80%가 2030세대이고 대부분 현대백화점(069960)에서 구매 경험이 없었다. 나이스웨더 입점이 신규 고객 유치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현대백화점(069960)은 작년 나이스웨더에 3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했다.

지난달부터는 가로수길 매장 면적을 확장해 신개념 백화점 컨셉의 나이스웨더 마켓으로 새로 문 열었다. 회사 측은 “문화적 소비를 지향하는 플랫폼을 꿈꾼다”고 설명했다.

22일 찾은 나이스웨더 마켓 문을 열자 인도산 인센스 스틱 나그참파 향이 느껴졌다. 입구엔 비건(vegan·채식주의) 음식과 생활용품을 모아둔 퓨처 비건 클럽이란 공간이, 그 옆엔 스트릿 문화를 연구하는 기업 휴먼트리 대표 제이야스(jayass)가 기획한 작은 상점에서 스케이트보드, 피규어, 장난감을 전시했다

조선비즈와 서면 인터뷰에 응한 노승훈 CNP컴퍼니 대표는 본인이 1985년생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소개했다.

현재 회사는 노 대표를 포함한 창업 멤버 5명이 이끌고 있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표 브랜드인 아우어베이커리는 매출 120억원 브랜드로 키운 뒤 2020년 11월 타 기업에 매각했다. 매각 상대방과 거래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올드페리도넛, 땡스피자, 튀김이바사사삭, 스몰디쉬빅쇼, 더블트러블유니온, 신사치킨클럽 등 한식·일식·퓨전을 망라한 23개 브랜드를 운영중이다. 다음은 노 대표와의 일문일답.

노승훈 CNP컴퍼니 대표.

외식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적인 이유로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심이 생긴 순간 오늘 일해서 오늘 현금을 만질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그게 외식업 창업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외식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고, 폐업도 많이 한다. 다른 외식업 브랜드와 차별화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원래 관심사가 패션, 서브 컬처(비주류·하위 문화), 음악, 인테리어 등 전반적으로 디자인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기획과 브랜딩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그때 배운 것을 외식업에 적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CNP컴퍼니란 회사를 처음 알리게 된 브랜드가 2014년 창업한 그릴 치즈 샌드위치 전문점 ‘더블 트러블’이다. (지금은 ‘더블 트러블 유니온’이라는 이름의 아시안 퓨전 음식점으로 다시 문 열었다.)

요즘은 흔하지만 당시엔 외식에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더블 트러블은 미국 음식점을 콘셉트로 인테리어, 로고 디자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를 직접 했다. 패션 브랜드나 서브컬처에서 행하던 브랜딩 방식을 외식업에 도입한 덕분에 흥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0~30대 젊은층이 열광하는 콘셉트를 잘 찾는 것 같다. CNP컴퍼니의 타깃 고객층은 누구이며 어떤 특징이 있나.

“그 시대에 가장 활발히 생산과 소비에 관여하는 계층이다. 단순히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포함해 말한 이유는 생산자가 트렌드를 만들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생산자에게 받은 것을 향유하며 문화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연령층이 1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 꽤 두터워진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아날로그, 디지털 세대를 모두 경험한 30대 고객층은 뚜렷한 취향이 생겨서 장기간 생산과 소비 주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多) 브랜드 회사다. 창업 아이템은 어떻게 결정하나.

“일반 외식업 기업처럼 메뉴 아이템을 중심으로 브랜드 기획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공간(부동산)을 봤을 때 ‘공간과 에너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에 집중해서 브랜드를 만든다. 지금까지는 외식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의 형태라서 외식업 중심의 기획을 했을 뿐이다.

오픈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건 평소 라이프스타일을 적어두는 습관이다. 메모를 정말 많이 하고 사진 자료를 수년 간 지우지 않고 모으는 편이다. 이렇게 10년 넘게 모은 자료들이 늘 핸드폰에 있다. 좋은 공간을 보고→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그 공간과 어울리는 네이밍, 아이템 등을 저장해둔 메모와 사진을 열어 적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름을 정하고 공간 구성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많은 팀들이 브랜드 빌드업(build-up·쌓아올리는 것) 과정에서 뿌리를 찾는 절차를 건너 뛰는 것 같다. 이 매장에는 왜 이런 색을 써야 하는지, 이 거리에서는 왜 대중적인 것을 해야 하는지(임차하려는 지역의 과거 사례 조사), 이런 음식에는 어떤 마감재가 어울리는지 등 매번 판단이 필요한데 기준이 되는 것이 역사에 대한 공부인 것 같다.

음식의 역사일 수도 있고 팔려는 아이템이 생겨난 국가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담아내는 그릇의 탄생배경을 조사해볼 수도 있다. 그후에 요즘 트렌드를 조사해서 조화를 따져본다. 그래야 이유있는 선택이 될 것이고 어울림과 자연스러움으로 표출된다.”

입지를 결정할 때 신경쓰는 요소가 있나.

“그 부동산 주변 브랜드는 무엇인지, 그 거리의 과거 모습은 어땠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특히 주변 브랜드가 우리가 생각했을 때 멋있는 것들인지, 우리 브랜드와 어울리는지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창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브랜드를 런칭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하루 만에 나온 브랜드도 많다. 그게 아우어베이커리처럼 흥행한 브랜드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특이사례이고 보통 2~4주 정도 걸린다. 동시에 메뉴와 아이템 개발을 진행한다. 다만 한달 만에 나오게 하기 위해 10년 간 아카이브(archive·자료 등을 디지털화해 모아둔 것)를 쌓고 내재화 했다.”

잘된 브랜드가 많은데, 반대로 생각보다 저조했던 경우도 있나.

“생각보다 저조한게 아니라 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매장은 치치앤쉬(치킨과 새우를 함께 판매하던 매장)다.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구성원을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이다. 외식업 특성상 현장에서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성공한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의 구성원과 분위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회사 설립 3년 간 매출 추이는.

“2019년 180억원, 2020년 195억원, 작년은 매각한 아우어베이커리 매출이 제외돼 109억원이다. 아우어베이커리 단독 매출은 2020년 기준 120억원이다. ”

올해 목표는.

“국내에선 나이스웨더, 푸딘코(맛집 지도 애플리케이션), 올드페리(도넛)에 집중하는 게 목표다. 나이스웨더는 온라인 스토어를 문 열 예정이고 푸딘코 앱은 현재 80만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더욱 대중화 하려고 한다. 올드페리는 국내 가맹점을 확장하고 미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