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루이비통 매장에서 감귤 초콜렛이나 한라봉 같은 기념품을 팔게 생겼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국내 한 면세점의 관계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가 집중된 샤넬,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잇따라 철수하기로 하면서 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평일 낮,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내부가 텅 비어있는 모습. / 이현승 기자

9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다음달 말 롯데면세점 부산점, 신라면세점 제주점에서 운영하던 패션 매장 영업을 중단한다. 이로써 비(非)수도권 시내 면세점에서 샤넬이 전부 철수하게 된다.

샤넬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 안정성을 고려해 3월 31일 자로 부산과 제주 시내 면세점 패션 부티크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며 “서울 시내와 공항 면세사업에 영업을 집중해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서 가치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루이비통도 다음달부터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전부 철수한다. 자유여행객이 많은 공항 면세점에 집중한다는 입장이다. 샤넬, 루이비통과 함께 3대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는 롯데면세점 부산, 신라면세점 제주에 입점해 있는데 현재 철수 계획이 없다.

국내 한 면세점의 관계자는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관광업에 타격을 주는 대외변수가 있었던 시기에도 입점해있던 명품 브랜드가 이렇게 연쇄적으로 빠지는 건 처음”이라며 “일방적으로 철수하겠다고 통보해 와 적극적으로 협상을 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영국 면세 전문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는 국내외 여행객이 주를 이루는 해외 시내면세점과 달리 한국은 지나치게 보따리상(다이궁, 화장품 등을 대량 구매해 현지에 파는 사람)에 의존해 명품업체들이 입점해봐야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면세점은 중국 여행사가 다이궁을 모아오면 알선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요율이 코로나19 이전 20% 안팎에서 최근 30%~40%까지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알선수수료는 면세점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한다.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이후 다이궁 의존도가 계속 심화됐다.

중국 다이궁은 구매단가가 높은 의류나 잡화가 아니라 화장품을 주로 구매하기 때문에 매출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으면서 애초 제품을 보유하지 않고 되파는 것을 목적으로 해 명품업체들이 반기지 않는 소비자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들은 다이궁 의존은 명분일 뿐 코로나19를 거치며 명품 브랜드가 갑(甲)을 넘어 슈퍼갑(甲)이 된 상황이 시내면세점 철수 사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금 철수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입점이 가능한 만큼 매출이 안 나오는 매장을 정리하고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가격이 계속 오르자 재테크에 활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샤넬은 지난 2019년 말부터 2년 간 주요 제품 가격을 60% 올렸다.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백화점 오픈런(매장 개장 전에 대기했다가 문을 열자마자 매장으로 질주하는 것)을 해서 가방을 산 뒤 100~200만원을 올려 파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면세점 업계는 당장 샤넬과 루이비통이 빠진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부터 고민이다.

국내 또다른 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샤넬, 루이비통이 빠지면 다른 브랜드와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며 “정부가 다음달부터 5000달러(600만원)로 묶인 구매한도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명품 매출 증가를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 큰 매장을 어떤 브랜드로 채워야 할지가 당장 문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