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위 전자상거래 기업인 11번가가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연간 영업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8년 국민연금 등에서 투자를 유치하며 내건 ‘2023년 기업공개(IPO)’ 목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그래픽=이은현

7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이달중 SK텔레콤(017670)SK스퀘어(402340) 등 아직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계열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공개할 예정이다. SK스퀘어는 지난해 11월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된 회사로 SK하이닉스(000660), 11번가, 원스토어, SK쉴더스 등의 모회사다. SK스퀘어 실적 발표 때 11번가의 작년 영업 성과도 공개될 전망이다.

11번가는 작년 1~3분기 누적으로 약 37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0년 3분기에 1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후 적자가 계속 됐다. 적자 폭은 2020년 4분기 14억원에서 작년 1분기 40억원, 2분기 140억원, 3분기 189억원으로 확대됐다. 2020년 98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작년에도 연간으로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측의 한 관계자는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방역 대응을 하는 데 비용이 들어갔다”며 “작년에도 확산세가 계속됐고 8월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선보이면서 관련 마케팅 비용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당장 내년으로 예정된 상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번가는 지난 2018년 SK플래닛에서 분사할 때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H&Q코리아에서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5년 내 IPO를 하기로 했다.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을 매각해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11번가가 투자자와 약속한 IPO 기한이 내년 9월 30일이다. 내년 초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양측 간 계약에는 ▲상장 전까지 주식 발행금액의 6%를 우선 배당 하고 ▲상장을 통해선 최소 3.5%의 연간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해야 하며 ▲상장에 실패하면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을 활용해 대주주인 SK텔레콤 지분 80%까지 함께 매각하거나 SK그룹 계열사가 투자자 지분을 되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기관들이 11번가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에 참여하긴 했지만 원금 손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상당히 까다로운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며 “최악의 경우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투자자 측이 최소한 3.5%의 수익률을 건질 수 있도록 구조가 설계됐다”고 전했다.

상장이 무산될 경우 투자자가 드래그얼롱을 행사해 경영권 매각을 추진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11번가와 비슷하게 기업이 투자 유치를 하면서 IPO를 조건으로 내걸었던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중국법인(DICC)의 경우 IPO를 하지 않아 투자자가 2015년 매매대금 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6년 만인 지난해 대법원이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측이 투자자 지분을 3080억원에 되사기로 했지만 투자금액(3800억원)을 밑돌아 결과적으로 손실을 봤다.

SK그룹이 투자자 지분을 되사준다고 해도 최소 보장 수익률인 3.5%는 국민연금의 연간 기금 운용 수익률에 한참 못 미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18~2020년 연평균 수익률은 6.89%이고 작년에는 8.19%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애초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하고 11번가 투자에 참여한 만큼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압박은 커질 전망이다.

11번가는 아마존 해외직구 상품을 자사 홈페이지와 앱에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해외직구 거래액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적자 폭이 확대되긴 했지만 거래액 증가를 통한 외형 성장이라는 성과는 이뤘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서비스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작년 만 20세 이상 개인이 11번가에서 결제한 금액은 14조원으로 전년도 11조원에서 27%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증가율이 배달의민족(90%), 쿠팡(54%), 네이버(33%) 다음으로 높다.

다만 올해 이후 국내 이커머스의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가장 큰 위협요인이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12월 온라인 침투율(전체 소비지출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39.2%로 통계 발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올해와 내년에 시장 성장률이 둔화될 수 밖에 없어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