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각 층 매장과 매장 사이 공간에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매장 입구에 김홍주 작가의 판화 작품, 박서보 작가의 단색화 작품 등이 눈에 띄었다.
남성 의류 매장 사이에는 명품 브랜드 샤넬과 디올 로고가 그려진 스니커즈 그림이 전시돼 있었고, 전시된 작품 옆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판매 가격이 적혀있었다. 20~30대 남성 고객이 스니커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식한듯한 배치였다. 전시된 작품 중 적게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1억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었다.
이정민 롯데백화점 큐레이터는 “2030 젊은 세대 중에서는 박서보 작가와 같은 유명작가의 작품을 찾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코로나로 인해 집 인테리어 관심도 높아지고, RM과 지드래곤과 같은 스타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작품을 올리면서 작품을 수집하는 젊은 고객들이 늘었다”고 했다.
◇2030의 미술품 구매, 감상 목적 더불어 재테크·SNS 노출 수단으로 활용
백화점과 아트테크 업계에 2030 ‘큰 손’ 미술품 구매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단순 관람객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을 구매해 차익을 얻을 수 있는 미술품 비즈니스 사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관람객(4만3677명) 중 20~30대는 79%에 달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한 범민 작가의 그림을 산 2030 미술품 구매자 비중은 44.4%였다. 구매자 27명 중에 12명이 20~30대 소비자인 셈이다. 범민 작가는 가수 지드래곤, 현대카드 등과 협업한 그래피티 작가로 알려지며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작년 9월 열린 글로벌 국제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은 지난해 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9년보다 2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2030 관람객이 51%였고, 작품을 구매한 미술품 구매자 비율 역시 2030이 39.3%로 절반에 가까웠다.
김동현 키아프 팀장은 “혼자서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예전 중장년층 미술품 구매자들과 달리 요즘 젊은 미술품 구매자들은 작품을 ‘노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 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한된 만큼 집이나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통해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30 세대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많이 찾는 ‘조각 투자’ 등 아트테크(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 업계도 젊은 ‘큰 손’ 투자자에 주목하고 있다.
미술품 조각 투자 업체 서울옥션블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누적 기준 가장 많이 미술품에 투자한 세대는 30대(1만5488명·37.5%)였다.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테사’ 역시 지난해 12월 누적 기준 가장 많이 투자한 세대가 30대(30%)였다. 20대(17%)와 합하면 미술품 조각 투자자 절반가량이 2030 세대다.
전시 기획 전문가인 나도연 네모파트너즈 SCG 상무는 “5년 전까지는 미술품 구매자들 주 연령대가 5060 장년층이었는데 요즘처럼 2030 미술품 구매자들이 많아진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했다.
그는 “전시회에서 전시를 보는 관람객층은 젊은 세대가 많았지만, 요즘은 작품 구매까지 이어지며 다양한 미술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30 큰손 모셔라” 발 빠르게 움직이는 백화점업계
미술품에 대한 2030 세대의 관심이 높아지자 백화점은 앞다퉈 미술품 전시 및 판매에 나서고 있다. 최근 백화점 VVIP 고객으로 떠오른 MZ세대를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우수고객(MVG, VIP 포함) 중 2030세대 매출은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우수고객 중에서도 2030 고객들은 미술품 구매가 많은 편이다. 이는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8월 ‘아트비즈실’을 만든 계기가 됐다.
롯데백화점의 미술품 판매는 월평균 145%의 신장률을 기록중이다. 전체 매출의 25%가량이 2030세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030 소비자의 경우 300만~500만원대 판화 제품 문의가 가장 많다”고 했다.
신세계(004170)백화점은 지난 13일부터 부산 센텀시티점에서 BTS가 소속된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하이브 소속 뮤지션들의 음악과 함께 꾸민 전시관으로 아트 굿즈 팝업스토어(임시매장)도 열었다.
현대백화점(069960)은 미술품에 관심이 많은 젊은 고객들을 위해 오는 29일부터 4월 24일까지 더현대 서울 6층 복합문화공간 알트원(ALT.1)에서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Springtime Delight’를 개최한다.
테레사 프레이타스는 디올·클로에·몽블랑·넷플릭스 등 유명 브랜드와도 협업해 아트 컬렉터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다. 현대백화점 측은 “젊은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올해도 다양한 예술·문화 행사를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