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배달대행업체를 운영중인 40대 윤모씨는 작년 말 배달대행 플랫폼 A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4억원을 줄테니 배달대행 사업과 관련한 영업권 일체를 양도하라는 내용이었다.

윤모씨는 현재 다른 배달대행 플랫폼 회사인 B사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데, 식당과 라이더를 그대로 데리고 거래업체를 A사로 바꾸고 업체 관리는 지금처럼 윤모씨가 하는 조건이었다.

윤모씨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경업(競業·영업상 경쟁) 금지’ 조항으로 자칫 큰 돈을 물어내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따르면 윤모씨 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비속, 4촌 이내 친족도 계약일로부터 5년 간 국내 다른 배달대행 플랫폼에 취업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하우도 알려줘선 안된다. 이런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금 2배를 물어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그래픽=이은현

배달시장을 선점하려는 플랫폼 기업 간 경쟁이 쩐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신생 플랫폼 업체는 배달이 많이 들어오는 가맹점과 유능한 라이더를 다수 보유한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수억원을 제시하며 계약 변경, 경업 금지를 유도하고 있다.

현행 상법은 영업양수도 계약에서 경업 금지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넓게 설정하거나 위약금을 높게 불러 공정한 경쟁을 제한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1强 없는 배달대행 업계…웃돈 주고 가맹점·라이더 사고 판다

배달대행 플랫폼은 배달의민족(배민), 요기요, 쿠팡이츠를 대신해 소비자와 배달 라이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배민 앱으로 주문을 하면 배민은 음식점에 주문을 전달하고 음식점은 배달대행 플랫폼을 통해 지역 배달대행업체에 고용된 배달 라이더를 공급한다.

현재 플랫폼사는 막강한 1위 사업자 없이 바로고, 생각대로, 만나플러스(공유다·제트콜 등 7개 배달대행 연합), 부릉, 소규모 중소 사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배달대행 플랫폼의 경쟁력은 배달건수에 달려있는데, 숙련된 배달 라이더를 많이 보유한 배달대행업체와 얼마나 계약을 맺고 있느냐가 좌우한다.

12월 18일 서울 동대문종합시장의 퀵서비스 기사들의 모습. / 연합뉴스

플랫폼사가 공급하는 음식 배달용 프로그램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이것만으로는 경쟁사와 차별화 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배달 라이더를 확보하기 위해 중개 수수료를 낮추거나 ▲오토바이 같은 배달 장비 렌탈 ▲보험 지원 ▲자금 대여 등 기타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배달업계가 급성장하자, 웃돈을 주고 지역 배달대행업체의 영업권을 인수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정 상권에서 새로 배달대행업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 영업에 나서는 대신 그 동네에서 잘 자리잡은 배달대행 업체를 통으로 인수하는 방식이다.

국내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관계자는 “향후 배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배달대행업체가 몇개 없는 경기도 김포, 인천 송도 등 신도시에서 최근 신생 배달대행 플랫폼이 업체 1개당 4~5억원을 제시하며 공격적으로 인수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상당수 업체가 플랫폼을 변경하겠다고 알려와 그 지역 배달건수가 확 줄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같은 출혈적인 영업방식이 성행하는 건 상당수 배달대행 플랫폼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영업이익을 내기가 어려워 투자자들이 ‘3년 안에 연간 배달건수 2000만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투자금을 회수한다’ 같은 조건을 내건다.시장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하려는 목적이다.

◇ 5년 간 친인척까지 경업금지·2배 위약금…공정위 “문제없다”

조선비즈가 입수한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영업양수도 계약서를 보면, 경업금지 요건이 폭넓게 설정돼 있다.

계약을 맺는 순간 5년 간 대한민국에서 경업을 할 수 없는데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비속, 4촌 이내 친족도 안된다. 배달대행업과 관련한 노하우를 알려줘서도 안된다. 경업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금의 2배를 물어내야 한다.

현행 상법은 영업양수도 계약에서 경업금지를 허용하고 있다. 상법 41조는 “영업을 양도한 경우에 다른 약정이 없으면 양도인은 10년 간 동일한 특별시·광역시·시군과 인접한 특별시·광역시·시군에서 동종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매도인이 보유한 노하우, 영업비밀, 고객관계 등 무형자산을 이용해 매수인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상법에서도 경업금지 기간을 10년이라고 보고 있어 5년을 과도한 제한이라고 일방적으로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며 “영업양수도 계약 과정에서 거래를 안하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의 지위 남용 행위가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계약이 상법상 허용 범위를 초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점규제법에서 금지하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봤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도인이 새로이 경쟁업체를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한다는 차원에서 경쟁 가능성을 줄인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상법이 양수인의 정당한 경제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다만 경업금지의무 위반 간주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돼 상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문제될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문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상 허용하는 ‘영업 양도’와 ‘영업권 양도’는 엄격히 구분돼야 할 개념”이라며 “1997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영업권은 거래선, 영업비결, 명성 등 재산적 가치가 있는 사실관계이고 여기에 유·무형 재산을 합한 것이 영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계약서상 영업권만 양도한 것이라면 상법상 영업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상법상 경업금지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공정위가 이러한 영업권 양수도 계약에 상법 41조 경업금지 규정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은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