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롯데그룹 인사에서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성공한 이갑 롯데면세점 대표가 매출 6조원을 회복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 매출 80% 이상을 책임지는 주력 사업부다. 신동빈 그룹 회장의 숙원인 호텔롯데 상장이 성공하려면 면세사업부 실적이 회복돼야 한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롯데그룹이 발표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했다. 유통 비즈니스유닛(BU)을 이끌어 온 강희태 부회장을 비롯해 그룹 유통담당 고위 임원들이 실적 부진으로 교체된 터라 이 대표의 연임은 뜻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의 연임은 호텔롯데 상장과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면세점이 호텔롯데 매출의 80% 이상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2015년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롯데호텔에 대해 일본 계열 회사들의 지분 비율을 축소할 것"이라며 "주주 구성이 다양해 질 수 있도록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종합적으로 개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1962년생인 이 대표는 롯데백화점으로 입사해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정책본부를 거쳐 2016년 대홍기획 대표를 맡은 뒤 2019년 롯데면세점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전임자인 장선욱 전 대표의 임기가 3년이었던 데 반해 이 대표는 1년 더 신임을 받게 됐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롯데면세점 실적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9년 매출은 6조103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나 작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48% 감소해 3조1493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2019년 3504억원 흑자에서 작년 220억원 적자로 전환했다. 해외 입출국자가 급감하며 국내외 20개 시내·공항 면세점의 정상 운영이 불가능했다.
올해 1~3분기 롯데면세점 매출은 2조5651억원으로 전년 대비 11.6% 증가했다. 최근 명품 구매가 온라인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점을 감안해 지난달 온라인 명품관 '소공 1번지'를 선보였다.
롯데면세점의 내년 매출 목표는 5조9347억원이다. 작년 본점 면세점 특허를 갱신하기 위해 관세청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1차연도(2020년 12월 23일~2021년 12월 22일)에 매출 5조6427억원을 달성한 뒤 2차연도(2021년 12월 23일~2022년 12월 22일)에 5조9347억원, 그다음해 6조원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국내 사업만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된 3분기 말부터 일본 간사이국제공항에 명품 매장을 문열고 싱가포르 창이공항 공사를 재개하는 등 해외 프로젝트에 재시동을 걸었다.
롯데그룹은 2016년 금융위원회에 호텔롯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 절차에 돌입했으나 한달 만에 이를 철회하고 무기한 연기했다.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롯데면세점 입점을 대가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혐의가 제기되며 검찰이 롯데호텔과 신 이사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뒤였다.
이후 2016년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루 등으로 롯데그룹은 '잃어버린 5년'을 겪었다.
호텔롯데 상장에 대한 신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번 정기 임원인사에서 호텔 부문 총괄대표에 컨설턴트 출신 안세진 전 놀부 대표이사를 앉힌 것에서도 상장 재추진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달부터 출근중인 안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커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LG화학(051910) 마케팅·전략 담당 상무, LS(006260)그룹 전략본부장을 거쳐 2018년부터 사모펀드 모건스탠리PE에서 오퍼레이션 조직을 총괄하며 놀부 대표이사를 지냈다. 놀부 매출은 2018년 867억원에서 716억원으로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14억원 적자에서 1억1639만원 흑자로 돌아섰다. 다만 작년엔 매출도 줄고 적자 전환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세진 대표는 전략·신사업 분야 전문가이고 경영 효율화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의 롯데그룹엔 비(非)롯데맨 출신의 새로운 시각이 절실하다. 그래야 업황이 좋아지는 시점에 기업가치를 높여 IPO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롯데지주(004990)와 호텔롯데를 두 축으로 한다. 롯데지주가 롯데쇼핑(023530), 롯데케미칼(011170), 롯데제과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호텔롯데는 롯데지주(11.1%), 롯데쇼핑(8.86%), 롯데물산(32.83%) 등 핵심 계열사의 주요 주주다. 문제는 지배구조의 한 축인 호텔롯데의 지분 99%를 일본 롯데홀딩스 등 일본계가 가지고 있어서 '롯데는 일본 기업'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신주 발행과 구주 매출을 통해 일본계 지분율을 낮출 수 있다. 상장회사가 되면 경영정보가 공개돼 일반 주주들의 감시도 받을 수 있어 투명성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호텔롯데가 상장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일본계 지분을 매입할 여력도 생긴다. 이후 신 회장이 최대주주인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를 합병하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고 기업의 일본 이미지도 뺄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변종인 오미크론이 전세계적으로 재확산하고 있다는 점은 면세점 사업에 예상치 못한 리스크 요인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면세점 매출은 1조 7000억원대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다음달 전월 대비 8.1% 줄었다.
지난 10월 면세점 내국인 매출액은 40% 증가했으나 외국인 매출액은 9.8% 감소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공항에 도입한 매출 연동 임대료 방식을 내년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선임 연구원은 "지난 5월 롯데월드 타워·몰 관련 부동산을 매각해 5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으나 부채비율은 2020년 말 175.7%에서 올해 6월 말 174.6%로 재무구조 개선효과는 미미하다"며 "상장이 지연되고 있어 과거 대비 안좋아진 재무구조가 지속될 것이고 핵심 사업에서의 이익 창출력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