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 연합뉴스

신세계그룹 대형마트 이마트(139480)가 고품질 식료품 판매 전문점으로 야심차게 선보였던 ‘PK마켓’ 사업을 접기로 했다. 이마트 최대주주인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 주도로 2016년 첫 점포를 개점한 이후 5년 만이다. 부츠, 삐에로쇼핑에 이어 PK마켓까지 정 부회장이 점찍은 사업이 잇따라 철수 수순에 들면서 정용진식 전문점 확장이 한계에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이마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경기도 스타필드 하남과 스타필드 고양에서 각각 입점해 있는 PK마켓 영업을 이달 말을 끝으로 종료, 사업에서 철수한다. 스타필드시티 위례점에 입점했던 PK마켓은 지난 3월 이미 폐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발길이 줄면서 폐점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PK마켓을 향한 시장의 관심은 처음부터 차가웠다. PK마켓은 정 부회장이 기획 단계부터 직접 주도, 고품질의 식료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전문점으로 문을 열었지만, 코스트코와 같은 창고형 매장이 속속 문을 열면서 소비자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형마트보다 비싸지만, 창고형 매장보다 저렴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식료품 구매마저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유통 채널 다양화를 위해 추진했던 헬스앤뷰티(H&B) 스토어와 화장품 매장도 정 부회장이 고배를 마신 사업이다. 이마트는 2012년 경기도 의정부에 ‘분스’(BOONS)라는 이름의 미용·건강식품·약품을 취급하는 드럭스토어 형태의 매장을 열었다. 해외 브랜드를 입점 시키며 차별화를 노렸지만 1위인 올리브영에 밀려 고전했다. 2015년 이마트는 결국 분스 사업을 접었다.

그래픽=이은현

정 부회장의 전문점 확장이 한계를 맞았다는 분석이다. 오프라인 매장을 늘려 고객 발길을 끌어당기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해 잇따라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문을 연 가정간편식(HMR) 전문점 PK피코크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HMR 자체 브랜드 상품을 모은 전문점이었지만 가성비를 내세워 선보인 PB 전문점 노브랜드와 차별화하지 못했다.

정 부회장이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선보인 ‘삐에로쇼핑’도 2018년 사업 시작 2년 만에 철수했다. B급 감성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를 겨냥했지만 일반 소비자에겐 너무나 생경한 형태의 매장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미 강자가 명확한 시장에 진출하거나 포지션이 애매한 전문점들을 내면서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마트는 최근 정용진 부회장이 추진했던 전문점을 더욱 과감하게 접고 나섰다. 소비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관련 상품만 모은 전문점, 특히 오프라인 전문점을 찾는 발길이 줄면서다. 이마트 관계자는 “전문점을 늘려왔지만, 이마트로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전문점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가 보유한 전문점은 이제 노브랜드, 일렉트로마트, SSG푸드마켓, 베이비써클, 토이킹덤, 몰리스펫샵 등 6개로 줄게 됐다. 잇따른 전문점 확대로 2019년 이전까지 11개 전문점을 갖췄던 것과 대조된다. 이마트는 최근 일렉트로마트 위례점, 부천점, 김포점 등 3개 매장도 폐점했다. 일렉트로마트 역시 정 부회장이 쇼핑을 꺼리는 남성을 위한 매장으로 선보였다.

스타필드 고양에 입점한 PK마켓/ 이마트 제공

정용진 부회장은 전문점들의 잇따른 철수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평소 성공과 실패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내성을 키우며 위기를 견딜 수 있는 체질을 만들자”면서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라고도 말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사업 실패를 정 부회장의 경영 성적표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마트는 부진한 전문점은 과감히 접고 일부 사업성이 있는 전문점은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른바 점내 점포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문점을 찾는 사람은 줄고, 임대료 등 고정비만 늘자 이른바 ‘뭉치기 전략’을 펴는 것”이라면서 “전문점의 내부 유치는 상품군 다양화를 통해 집객 효과를 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노브랜드와 일렉트로마트 등 특성이 명확한 전문점을 점내 점포로 다시 열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일렉트로마트 전체 지점 수는 2019년 44개점에서 2021년 현재 55개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남 스타필드시티나 가두점 등 이마트 밖에 위치했던 점포가 10개점에서 4개점으로 줄어드는 사이 점내 점포가 34개점에서 51개점으로 17개점 증가했다.

이마트의 뭉치기 전략은 일부 효과를 내고 있다. 외부로 빠졌던 임대료 등 고정비가 줄면서 실적도 개선됐다. 2019년 전문점 운영에서 865억 적자를 냈던 이마트는 지난해 346억원으로 전문점 부문 적자 규모를 줄었다. 올해 들어선 상반기까지 6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뭉치기가 새로운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