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제주점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김은영 기자

제주 동쪽 중산간 마을의 한 건물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함께 사진을 찍는 건 돌하르방도, 자연경관도 아닌 파란 병 모양의 로고가 들어간 블루보틀 카페의 간판.

지난 7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문을 연 블루보틀이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에서도 관광지와 동떨어진 외딴 마을에 있지만,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만큼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산에서 왔다는 한 30대 여성은 “블루보틀에 가보고 싶어서 일부러 제주 동쪽에 숙소를 구했다”며 블루보틀 제주점에서만 파는 푸딩과 로고가 들어간 컵과 앞치마 등을 구매했다.

유통업계가 제주에 체험형 공간을 잇달아 개설하고 있다. 스타벅스, 파리바게뜨 등 일부 식음료 업체들이 제주 관광지에 매장을 열고 지역색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였다면, 최근에는 명품, 자동차 등 글로벌 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이달 11일부터 한 달간 서귀포시 안덕면 방주교회 인근에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제주’라는 명칭의 초대형 쇼룸을 연다. 말 그대로 제품은 팔지 않는 체험형 전시 공간이다. 외관에 거울을 부착해 제주의 자연을 투영하고, 내부엔 버버리의 외투와 미디어 아트, 증강현실 체험 공간 등을 전시해 브랜드를 경험하도록 했다.

지난 11일 버버리가 제주도 서귀포시에 문 연 '이메진드 랜드스케이프'. /버버리코리아

버버리 창업자인 토마스 버버리의 이름을 딴 ‘토마스 카페’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이 쇼룸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는데, 벌써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반응이 뜨겁다. 버버리코리아 관계자는 “제주의 아름다운 환경을 배경으로 자연과 기술, 내부와 외부 세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버버리의 정신을 담은 몰입형 공간”이라고 말했다.

샤넬은 지난 3월 19일부터 3개월간 제주 신라호텔에서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 ‘샤넬 인 제주’를 운영했다. 일부 제품은 서울 시내 백화점보다 먼저 선보였는데, 이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서울 백화점에서나 보던 줄서기 현상인 ‘오픈런’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럭 덮개로 가방을 만드는 스위스 업사이클(새활용) 브랜드 프라이탁, 호주 화장품 이솝도 제주시 탑동에 매장을 냈다. 이들 브랜드는 웬만해선 백화점에 입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자동차(현대차(005380))는 콘셉트카 ‘제네시스 엑스’의 전시를 제주 동쪽의 한 바닷가 카페에서 10월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진행했다. 제네시스의 핵심 디자인 요소인 ‘두 줄’을 모티브로 전기차 모델의 디자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전시를 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의 고급스럽고 특별한 이미지를 고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대중적인 공간이 아닌 바닷가에 인접한 공간에서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샤넬이 제주 신라호텔에서 운영한 팝업 부티크. /샤넬코리아

유통업계가 제주에 체험형 매장을 개설하는 이유는 브랜드 몰입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MZ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중심으로 소유보다 경험, 체험 등에 가치를 두고 이를 전파하는 소비 행태가 확산하자, 체험형 소비인 여행과 결합해 브랜드 경험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

최근 유통업체들이 내세우는 친환경 및 지역 친화 활동 등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제주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꼽힌다. 블루보틀은 제주 매장을 열며 제주 푸딩 브랜드 우무와 커피 푸딩을 개발하고, 제주에 근간을 둔 제주맥주와 커피 골든 에일을 선보였다. 또 제주에서 수거한 재활용 원단으로 티셔츠와 앞치마를 제작했다.

버버리는 쇼룸을 열면서 비영리 기관인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5년간 파트너십을 맺고 후원한다고 밝혔다. 버버리는 국내에서 지난해(2021회계연도 기준, 2020년 4월~2021년 3월) 24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지만, 기부금이 13만원에 불과해 사회 환원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온라인 중심의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는 가운데,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인 소통에 대한 니즈는 더 커지고 있다”며 “특히 도심과 대변되는 특색을 지닌 로컬 공간에서는 체험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 온라인의 편리함과 오프라인의 즐거움을 잘 결합한다면 브랜드 가치가 더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