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생산에 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대신 벌금으로 때워 온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최근 재활용 이행 체계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플라스틱 배출량이 급증하며 벌금도 덩달아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재활용 이행 체계에 가입하면 정보를 더 확실히 공개해야 해 (쿠팡이)회피했지만, 벌금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은 안 된다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 7월 5일 국내 기업들의 플라스틱 재활용을 대행하는 기관인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포장재조합)에 가입 신청서를 내고 회원사에 이름을 올렸다. 포장재조합은 플라스틱 배출 기업으로부터 분담금을 받아 플라스틱 재활용 업무를 처리하는 환경부 위탁 기관이다.
현재 환경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페트병이나 비닐 등 플라스틱을 사용한 기업이 직접 플라스틱을 회수·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100만큼의 플라스틱을 사용했다면 종류에 따라 30~80%는 직접 회수해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때 기업은 포장재조합에 분담금을 내는 방식으로 의무 이행을 대신한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페트병 100㎏을 배출하면 A기업은 환경부가 정한 페트병 회수·처리 의무율 71%에 따라 71㎏을 직접 회수해야 한다. 다만 A기업이 포장재조합에 가입했다면 조합이 정한 1㎏당 141원이란 페트병 회수 단가에 맞춰 1만11원(71㎏ × 141원)을 지급하면 끝난다. 포장재조합은 기업에서 받은 1만11원을 재활용 업체 지원금으로 쓴다.
쿠팡은 그동안 포장재조합 회원사가 아니었다. 법에서 정한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온 셈이다. 쿠팡은 대신 벌금을 냈다. 환경부는 포장재조합을 축으로 한 국내 재활용 체계 미가입 업체에 대해 벌금인 부과금을 부여하는데 쿠팡은 부과금을 납부해 왔다. 포장재조합 관계자는 “배출량을 신고하고 그에 맞춰 벌금을 내면 돼 부과금을 내지 않는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포장재조합은 한국환경공단을 통해 각 기업의 플라스틱 출고량 세부 내역을 받고 있다. 재활용 의무율과 단가를 종합해 분담금을 받기 위해서이지만, 자라리테일, 에르메스 등 해외 기업들은 세부 내역 공개를 미루고 신고 후 벌금으로 대체하고 있다. 환경부는 예산과 인력 부족을 이유로 5년에 한번 임의로 일부 업체를 선정해 플라스틱 배출량을 점검한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 소장은 “조합 분담금은 환경부 부과금의 40% 수준인데도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으려) 벌금을 낸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쿠팡의 플라스틱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벌금도 늘자 재활용 체계에 편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쿠팡이 배출한 페트병, 합성수지 등 플라스틱 총량은 1만2526톤으로 전년 4383톤과 비교해 3배로 증가했다. 덩달아 벌금은 3억4000만원 수준에서 약 51억원으로 뛰었다.
쿠팡이 수익성 강화를 위해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강화했는데, 이 제품 때문에 벌금이 늘었다. PB 상품은 직접 기획해 생산하는 제품으로 유통 마진이 낮아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플라스틱 신고 품목에 잡힌다. 특히 쿠팡의 PB 생수인 탐사수를 담는 무색 단일 재질 페트병 배출량은 지난해 5972톤으로 전년 대비 2배로 증가했다.
재활용 미이행 벌금 51억원은 쿠팡의 PB 상품 유통판매 자회사 씨피엘비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1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재활용 의무량에 회수 단가를 곱해 계산하는 분담금과 달리 벌금은 회수 단가의 약 95% 수준인 기준 비용에 재활용 의무량과 미이행 가산율(30%) 등을 함께 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쿠팡은 2019년에 생수 페트병 배출로 1억6900만원의 벌금을 내면 됐지만, 지난해에는 생수 페트병 단일 품목에서만 13억원이 부과됐다. 배출량의 71%로 잡히는 재활용 의무량이 2019년 2357톤에서 지난해 4240톤으로 늘었고, 또 곱해졌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배출량이 3배로 증가한 사이 벌금이 15배로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다.
업계에선 쿠팡이 포장재조합 가입으로 분담금을 낼 경우 지난해 기준 최대 32억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쿠팡의 플라스틱 배출 총량을 분담금으로 전환할 경우 18억6000만원이 나오는 것으로 집계했다. 포장재조합 관계자는 “쿠팡은 지난해 플라스틱 배출량 상위 10위권 기업에 올랐다”면서 “유일한 재활용 미이행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쿠팡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벌금 규모가 커지기 전엔 재활용 체계에 편입하지 않다가 벌금이 늘어나자 포장재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의 가장 큰 수혜자인 쿠팡은 플라스틱 감축 노력 등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이 증가했고, 판매량이 늘면서 배출량도 늘어난 영향이 크다”며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제도를 내부적으로 수행하는 등 포장재 변경 및 개선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