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음식 배달을 넘어 음식점 식자재 배달 앱으로 변신하고 있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GS리테일(007070)은 음식점에 식자재 등을 납품하는 ‘기업 간 거래’(B2B) 서비스 연내 출시를 예고했다. 국내 2위 배달 앱 요기요 인수 1개월여 만인 지난 9월 23일 통계청에 ‘GS비즈클럽’이란 상표등록출원서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고기나 채소 같은 식자재는 물론 장사에 필요한 부자재를 주문받아 배송하는 사업자 전용몰을 꾸린다는 계획이다.
배달 앱 쿠팡이츠를 운영하는 쿠팡도 지난 4월 사업자 대상 B2B 서비스인 ‘쿠팡이츠딜’을 정식 출범했다. 쿠팡이츠딜은 쿠팡이츠 가맹 음식점 중 높은 평점을 받거나 빠른 배달을 수행한 매장에 신선식품과 식자재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서비스다. 이달 들어선 음식점 등 개인사업자에 식자재를 넘어 사무 용품까지 납품하는 ‘쿠팡비즈’ 서비스도 본격 시행하고 나섰다.
배달 앱이 B2B 사업에 진출해 수익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중개수수료 할인 등으로 배달 시장에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쿠팡이츠는 당초 단건 배달에 중개수수료로 15%를 책정했지만, 건당 중개수수료 1000원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이 중개수수료 1000원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쿠팡이츠의 경우 평균 주문액 2만5000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개수수료 15%를 적용하면 매 주문마다 3750원을 받을 수 있는데 2750원을 덜 받는 셈이다. 배달의민족도 최초 12% 중개수수료를 예고했었다. 배달의민족 단건 배달 월 주문 규모가 1000만건인 것을 고려하면 배달 중개에서만 월 200억원을 덜 받는 것이다.
반면 사업자 대상 B2B 서비스는 사업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식점주들은 특정 업체와 대규모 구매 계약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거래를 성사시키기만 한다면 장기간 계약을 이어갈 수 있고,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만큼 가격도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B2B 식자재 유통이 수익 개선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음식점주 대상 식자재 유통 서비스 시장에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약 30조원의 시장이 형성돼 있는 식자재 등 B2B 유통 시장에서 아이마켓코리아·서브원 등 주요 업체의 점유율은 5~10%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식자재 유통 대표 기업인 CJ프레시웨이(051500)나 신세계푸드(031440), 현대그린푸드(453340) 등은 배달 앱 내 소규모 음식점주보다는 프랜차이즈 외식업체와 같은 대규모 사업자와 거래한다.
배달 앱 시장 1위 배달의민족은 2017년 4월 이미 식자재 전문 쇼핑몰 ‘배민상회’를 출범해 수익화 전략을 펴고 있다. 현재 8만개에 달하는 가맹 음식점에 식자재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식자재는 물론 장사에 필요한 모든 부자재를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배송해주고 있다”면서 “수익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B2B 식자재 시장은 성장 전망도 좋다. 한국무역협회는 오는 2027년 글로벌 B2B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가 20조9000억 달러(약 2경4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9년과 비교해 71% 성장한 수치다. 한국무역협회는 “사업자 등 기업 유통 시장에서도 온라인 배송 편의성이 주목받고 있다”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선 음식점주 대상 B2B 시장에서도 배달 앱 간 출혈 경쟁은 계속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음식점주 대부분이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을 모두 쓰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해서다. 배달의민족은 물품이나 광고 구매 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비즈포인트’ 제도를 내놨고, 쿠팡은 쿠팡비즈 이용 시 1% 캐시백을 제공한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지난 9월 7일 중소유통상인협회와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 등은 ‘쿠팡 시장침탈 저지 전국 자영업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 배달 앱의 식자재 유통 진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홍성길 한국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쿠팡 등의 식자재 진출은 명백한 골목상권 침해”라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