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자와 꼭 닮은 투박한 모양에 이름마저 ‘감자빵’인 주먹만 한 디저트 하나가 지난달 문 연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타임빌라스의 최고 히트상품이 됐다. 감자빵을 판매하는 카페 더밭(The BATT)은 월 매출 4억6000만원을 올리면서 식음료 매장을 통틀어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롯데쇼핑(023530)의 한 관계자는 “판매단가가 높은 명절 선물세트도 아니고 디저트 매장이 이 정도 매출을 기록한 건 백화점·아웃렛을 통틀어 전무후무하다”고 전했다.
감자빵은 밀가루 없이 쌀가루로 만든 쫄깃한 빵 피에 단맛이 강한 품종인 로즈홍감자와 버터로 달콤하고 포근한 맛을 낸 게 특징이다. 30대 청년 농부인 이미소·최동녘 부부가 강원도산 감자로 만들어 춘천 카페(카페 감자밭)에서 작년부터 팔았다. 감자를 캐릭터로 만들어 포장지에 입히고 카페엔 꽃밭, 오두막, 피크닉 존을 조성해 가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흔한 작물에 요즘 감성을 더한 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고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 기념품으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았다.
경기도 의왕 타임빌라스 더밭에서 만난 이미소 농업회사법인 밭 대표는 ‘감자 종자의 다양성’과 ‘식량 주권’을 거듭 강조하는 감자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였다. 빵이 좋아서, 혹은 요즘 디저트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업계에 뛰어든 게 아니라 감자 품종을 다양화 함으로써 감자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나아가 식량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진지한 고민거리를 안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진지하지만 재밌어야 한다’는 게 회사의 철학이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속이 빨갛거나 보라색인 특이 품종 감자를 농사지었는데, 2015년쯤 서울 가락시장에 감자를 팔러갔더니 흰색 감자 가격의 반도 안 쳐주는 것을 보고 택배 상·하차 비용을 전부 지불하고 감자를 가져와 땅에 묻어버렸다”며 “당시 회사에 다니던 내게 전화를 걸어 감자를 좀 팔아보라고 한 게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 1~2년은 감자 원물을 팔아봤지만 대형사와 가격 경쟁이 안 됐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감자가 들어간 다양한 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감자빵은 200번 넘는 시행착오 끝에 개발했다. 이 대표는 “닭갈비 감자 파이, 고구마 감자 마늘 빵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팔았고 반응이 나쁘진 않았지만 여러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감자의 이야기를 전달할 순 없었다”라며 “다양한 감자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계약 재배 물량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 끝에 감자빵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감자빵은 내용물의 70%가 감자다. 강원도에서 개발한 속이 붉은 로즈홍감자를 비롯해 특이 품종 여럿이 들어간다.
이 대표는 감자빵을 강원도 춘천의 명물로 만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매장을 낼 생각이 없었다. 그를 설득해 타임빌라스에 입점시킨 건 양현모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F&B팀 치프 바이어다. 양 바이어는 “SNS에서 워낙 화제였고 대표를 만나보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며 “최동녘 대표는 10년간 농사를 지었고 2000개가 넘는 감자 종자에 대한 이해도도 풍부했다. 치고 빠지는 식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사회생활을 하다 농업에 뛰어든 경우라면 남편인 최동녘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 채소학과를 졸업한 전문 농업인이다.
거듭 거절하던 두 대표에게 양 바이어는 “감자빵 단품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시즌 2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대표를 찾아가 카페 감자밭의 SWOT 분석(강점, 약점, 기회 요인, 위험요인 등을 분석하는 것) 자료까지 내밀었다. 타임빌라스 카페명이 ‘감자밭’이 아니라 ‘더밭’이 된 것도 양 바이어의 의견이 반영됐다. 감자에서 출발했지만 다양한 지역 특산물로 판매품목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도 옥수수빵, 레몬빵을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양 바이어를 “나보다 우리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며 “우리의 고민을 같이 생각해주고 방향성까지 제시해주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타임빌라스 매장 콘셉트를 정할 때도 양 바이어의 의견이 반영됐다. 그는 ‘농부의 작업장’이라는 개념을 제안했고 최동녘 대표가 ‘새로운 시대의 농부(New generation farmer)’로 구체화 했다. 요즘 농부들의 작업 환경을 엿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매장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커피를 만드는 공간 위에 오두막이 눈에 띈다. 한쪽에는 다양한 농작물의 씨앗을 전시해놓았는데 이 대표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고 할 만큼 씨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카페 곳곳에는 볏짚을 쌓아서 만든 의자도 있다.
2015년부터 F&B팀 바이어로 근무중인 양 바이어는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선)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준다면 충분히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바이어는 타임빌라스에 더밭을 비롯해 부산의 유명 돈까스 전문점 수수하지만굉장해, 미슐랭 가이드에 5년 연속 등재된 만두 전문점 구복만두를 최초 입점 시켰다. 올해 개관한 롯데백화점 동탄점에 ▲방콕 음식점 꽝씨푸드 ▲대만 비건 누들 식당 베지크릭 ▲인스타그램 60만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인 콩콩도시락의 도시락 전문 브랜드 콩콩샵의 오프라인 매장도 첫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