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 동탄점 '#16' 매장에선 제품을 착용해 보고 모바일 앱으로 주문할 수 있다. /하고엘앤에프

지난 8월 경기도 화성시에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 3층에는 유난히 젊은 고객이 몰리는 매장이 있다. 마뗑킴, 로아주, 메종마레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한 ‘#16′이다. 평범한 의류 매장 같지만, 이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은 모두 ‘빈손’으로 매장을 나선다. 매장 안에 재고가 없기 때문이다.

#16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 하고엘앤에프와 롯데백화점이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선보인 O4O(Online for Offline·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 매장이다. 330㎡(100평) 규모에 의류, 가방, 주얼리 등 16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을 구성한 쇼룸형 매장으로, 각 브랜드의 제품이 사이즈별로 1개씩 진열됐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옷을 입어보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주문·결제한 뒤 집으로 돌아가 1~2일 뒤에 제품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옷을 바로 받아보는 빠른 배송의 시대에 느린 쇼핑이 통할까 싶지만, 이 매장은 개장 한 달간 약 5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동탄점 여성복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14일 만난 홍정우 하고엘앤에프 대표는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겨냥해 온·오프라인 쇼핑의 장점을 결합한 것이 통한 것 같다”며 “대부분의 패션 플랫폼이 빠른 속도에 초점을 두지만, 우리는 온라인 상품을 입어보고 싶어하는 고객의 수요를 공략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3층 '#16' 매장 전경. /하고엘앤에프

그동안 백화점들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브랜드를 자사 공간에 들인 경우는 많았지만, 온라인 결제 시스템까지 도입한 건 #16이 처음이다. 생소한 구매 방식에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젊은 고객들은 거리낌 없이 앱을 깔고 주문을 넣었다. O4O 쇼핑을 구상한 홍 대표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홍 대표는 #16이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유통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유통사들이 인기 온라인 기반 브랜드를 유치해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오프라인의 문법대로 접근해서라는 게 홍 대표의 지적이다.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브랜드는 체질부터 다르다”라며 “오프라인 브랜드가 연간 생산하는 상품 수가 1000개인데, 온라인 브랜드는 80개에 불과하다. 온라인의 인기를 기반으로 덜컥 단독 매장을 냈다가는 수수료 부담에 못 이겨 가격을 올리거나 브랜드 정체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16에 입점한 브랜드들이 기존 백화점 브랜드보다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재고 없는 빈손 쇼핑’ 시스템 덕분이다. 백화점 브랜드의 마크업(mark up·원가 대비 판매가 비율)은 5배가 넘지만, #16 브랜드들은 마크업이 2~3배 수준이다.

롯데백화점 동탄점 '#16' 매장에서 한 고객이 QR코드를 통해 주문을 하고 있다. /하고엘앤에프

SK네트웍스(001740) 전략마케팅 팀장 출신인 홍 대표는 2017년부터 온라인 패션 큐레이션 쇼핑몰 ‘하고(HAGO)’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국내 패션 플랫폼으로는 처음으로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 제품을 선별해 펀딩(Funding·생산자금 모금)으로 판매했다. 미리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존 쇼핑몰과 달리, 선주문을 받아 펀딩에 성공하면 이후 생산해 배송하는 형태다. 제품을 늦게 받아보는 대신 가격 거품을 낮췄는데, 대표 제품인 ‘하고 백’의 경우 펀딩이 80회 넘게 진행될 만큼 호응을 얻었다.

홍 대표가 플랫폼에 펀딩을 도입한 이유는 후발주자로서 ‘차별화’를 위해서였다. 소비자들은 취향과 가성비를 충족할 수 있고, 입점 업체들은 재고 부담 없이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어 양측 모두 만족감이 컸다.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쇼핑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에 새로운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게 온·오프라인 쇼핑을 결합한 #16이다. 이를 통해 하고는 올해 거래액 5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16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하고엘앤에프는 현재까지 9개 업체, 20개 패션 브랜드에 투자했고, 이 중 14개 브랜드를 #16에 입점시켰다. #16은 향후 2년 내 롯데백화점에 20개 이상의 매장을 낼 예정이다. 입점 브랜드 중 역량이 있는 브랜드는 단독 매장 운영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다.

최근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패션 쇼핑몰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홍 대표는 이에 회의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는 “과거엔 쇼핑몰마다 특색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플랫폼이 비슷한 콘텐츠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실속 없이 거래액만 키우는 양상”이라며 “역량 있는 디자이너에 투자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시켜 궁극적으로 브랜드와 플랫폼 모두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