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사업주의 책임·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법의 시행령이 지난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기준이 여전히 불명확해 계약 관계가 복잡한 배달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배달라이더 직고용 비중이 낮은 배달업계는 대표적인 그레이존(gray zone·어느 영역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중간지대)이다.
중대재해법은 당장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데 배달업계는 본인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지, 안되는지조차 모른다. 대형 법무법인도 “법이 시행되고 처벌 사례가 쌓여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법 5조에 따르면 기업은 제3자와 도급·용역·위탁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취해야 한다. 기존에 산업현장에서 근로자 보호 의무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면, 중대재해법은 다른 회사를 통해 도급·용역·위탁 계약을 맺은 경우에도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배민), GS리테일(007070)과 사모펀드가 인수 작업을 추진중인 요기요, 쿠팡의 쿠팡이츠 모두 배달라이더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게 된다. 3사는 직고용한 배달라이더도 있지만, 대부분 바로고·생각대로·부릉(운영사 메쉬코리아) 등 배달대행업체를 통해 중개만 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배달업계는 본인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지 안되는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5조는 도급·용역·위탁 계약을 맺은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면서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고 했다. 여기서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다고 보는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는 산안법에 규정된 ‘지배·관리’에서 더욱 확대된 개념인데, 산안법 규정을 두고도 고용부에서 사안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똑같은 도급·용역·위탁 계약 관계라고 해도 배달업체에 따라 라이더의 운행경로에 세세하게 개입하는 회사도 있고, 플랫폼을 제공하고 중개만 하는 회사도 있다”며 “현 시점에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할 수는 없으며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배달대행업체는 고용부 판단에 따라 아예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가령 바로고는 배달라이더와 직접 계약하지 않고 전국 지사(지역 배달대행 업체)와 계약한다. 이 지사는 작게는 구(區), 동(洞) 단위로 쪼개져 있어 상시근로자가 5인 미만인 곳이 많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은 중대재해법상 적용범위에서 제외된다.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사업주가 배달라이더를 관리감독·통제했는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가령 라이더가 여러개 업체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엔 사업주의 통제가 약하다고 볼 수 있고 직고용 라이더라면 (통제 정도가) 매우 강한 것이기 때문에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가 갈릴 수 있다. 지금은 해석론일 뿐이고 법이 적용되면서 사례가 쌓여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 제조업 기업들이 안전·보건 조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를 고심하고 있다면 배달업체들은 ‘우리가 처벌 대상이냐’부터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국내 한 배달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국회에서 논의된 시점부터 배달업계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외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만 법 제정 과정에서 플랫폼 기업이나 근로자 등 현장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