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부터 페이스북, 넷플릭스,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 대기업들이 법무, 대관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규제 동향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 연합뉴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기업법무 업무를 전담할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를 채용중이다. 자격요건은 경력 최소 5년 이상인 국내 변호사로 기업집단과 관련한 대응, 물류 관련 규제 및 계약 검토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

쿠팡의 사내 변호사와 행정보조 인력을 포함한 법무팀 인력은 이미 지난해 50명이 넘었다. 국내 1위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의 법무팀이 30~40명 수준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다. 규제 환경이 급변하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모바일 배달 주문 애플리케이션(앱), 핀테크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작년 10월 판사 출신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강한승 경영관리 총괄사장을 영입한 데 이어 2월 △인사(HR) △EHS(환경·안전·보건) △핀테크 △지적재산권(IP) △이커머스 법무 △공정거래 분야 사내 변호사를 대거 채용했다.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도 법조인 모시기에 한창이다. 페이스북은 이달 아시아 태평양(APAC) 법무팀 내 한국 담당 변호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개인정보 및 소비자 보호, 이커머스, 독점금지법 등 한국 규제 이슈에 대응하는 게 주 업무로 미국, 영국, 한국 대형 로펌에서 최소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을 찾는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한국이나 일본, 인도 중 최소 한곳에서 실무 경험을 한 상거래법, 계약법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를 찾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전임자 퇴사 때문이 아니라 사업 확장에 따른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연합뉴스

정부와 국회 규제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할 대관 인력 확충에 나서는 플랫폼 기업도 있다.

구글과 유튜브는 정부나 싱크탱크, 비영리기관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대관 업무 담당자를 채용하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달 과학기술정부통신부 출신 손지윤 상무 영입을 계기로 정부 정책 동향을 분석하는 정책전략 태스크포스(TF) 직원을 뽑고 있다.

이 기업들이 위기대응 역량을 좌우하는 법무·대관 인력 확충에 나선 건 최근 국회와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동향을 긴밀하게 파악해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과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2일 입법예고한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작업자가 1명 이상 사망한 경우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거나 같은 유해 요인으로 질병자가 3명 이상 나온 경우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쿠팡은 지난달 발생한 경기도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사고를 계기로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전국에 로켓배송 서비스를 하는 쿠팡은 물류센터가 170여곳에 이르고 관련 인력은 3만명이 넘는다. 물류센터는 종이 등 가연성 물질을 많이 보관하고 있고 불특정 다수가 수시로 출입해 일반 공장보다 화재에 취약하다.

온플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월 말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거래를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입점업체 대상 갑질을 할 수 없도록 계약서를 쓰고 불공정거래 행위를 구체화 하며 정부가 분쟁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쿠팡 같은 오픈마켓에 입점한 상인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작년 12월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은 법안명대로 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더 폭넓게 정의한 점도 다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플랫폼 뿐 아니라 이용자 간 의사소통 및 정보교환, 디지털콘텐츠 거래를 매개하는 서비스 사업자를 포괄했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법조계에선 변호사들이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향이 플랫폼 기업의 등장을 계기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 과거엔 로펌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변호사들이 대기업 오너 관련 사건이나 대형 인수합병(M&A)을 전담하기 위해 기업 사내 변호사로 이직했다면, 최근에는 우수 인력으로 분류되는 20~30대 젊은 변호사들이 기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완근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은 “현존하는 규제가 아니라 앞으로 생길 규제는 대응속도가 상당히 중요한데, 기업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외부 로펌보단 사내 변호사를 뽑아 업(嶪)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기업들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법조시장 규모가 정체된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젊은 변호사들이 기업으로 이직하고, 거기서 승진해 임원이 되는 보텀업(Bottom-up, 상향식) 케이스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