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뽕’에 취한 한국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 덕분에 랄프로렌코리아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두자릿수 증가했다. 글로벌 매출이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진 랄뽕은 ‘랄프로렌 뽕에 취한다’의 줄임말로 랄프로렌의 멋에 도취된다는 뜻이다.

폴로 랄프 로렌의 대표 제품을 착장하고 있는 모델들 모습. / 랄프로렌코리아 제공

18일 랄프로렌코리아가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공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1회계연도(2020년 4월 1일~2021년 3월 31일) 매출은 2749억6115만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6% 증가한 651억7008만원이다.

랄프로렌코리아가 지난 2006년 설립된 이후 감사보고서를 통해 국내 실적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한회사라서 그동안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11월 외부감사법 개정안에 따라 새롭게 공시 의무가 생겼다.

같은 기간 랄프로렌의 전세계 매출은 44억달러(5조원)로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북미와 유럽 매출이 각각 37%, 29% 줄었다. 아시아 매출은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0회계연도엔 영업흑자를 냈으나 지난해에는 4360만달러(약 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세계적인 매장 폐쇄, 외출 자제 조치가 확산된 영향이다.

한국 매출이 전세계 주요국과 견줘 독보적으로 성장하면서, 아시아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서 23%로 확대 됐다. 지난해 북미, 유럽에 비해 국내 코로나19 확산 정도가 심하지 않아 백화점 영업 중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MZ 세대의 뉴트로(새로운 복고) 열풍도 랄프로렌엔 호재였다. 1990년대를 휩쓴 타미힐피거, 라코스테 등 미국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급 의류라는 이미지를 가진 브랜드가 2~3년새 재조명 받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에서 랄뽕을 태그한 게시물 수는 20만개를 넘었다. / 인스타그램 캡처

랄프로렌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 중 20~30대 비중이 58%로 지난해 44%에 비해 14%포인트 상승했다. 랄프로렌의 인기는 소셜미디어에서도 확인된다. 인스타그램에서 랄뽕을 태그한 게시물은 20만개를 넘어 랄프로렌을 태그한 게시물 수(25만8000개)와 거의 비슷하다.

유통업계에선 MZ세대가 랄프로렌을 현재 40~50대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정체성의 브랜드로 인식한다고 분석한다. 40~50대는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때 그 추억의 브랜드로 기억하는 반면 MZ세대들은 연예인이나 SNS 인플루언서가 입은 것을 접하고 젊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BTS가 다이너마이트, 퍼미션 투 댄스 등 최신 뮤직비디오과 무대에 랄프 로렌 상의와 벨트 등을 착용하고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랄프로렌코리아도 2030 맞춤 마케팅을 강화했다. 재활용 플라스틱 병에서 추출한 원단으로 만든 친환경 셔츠를 온라인에 이어 지난 4월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했다. 온라인에선 10~30대 남성 고객층이 많은 무신사에 입점한 뒤 협업 모자를 내놓기도 했다.

고재욱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치프바이어(선임상품기획자)는 “뉴트로 열풍에 미디어 노출이 많은 유명 연예인이 랄프로렌 제품을 많이 입고, 회사 측도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강화한 게 주효한 것 같다”며 “제품가를 할인하지 않는 가격 정책을 고수하면서 가품 우려도 많이 사라졌고 고객층 신뢰가 두터워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